[고견을 듣는다] "`ESG적 밸류업`돼야 명실상부한 진짜 밸류업 완성"
밸류업은 '프라이스 업' 넘어 기업가치가 뛰는 것… ESG와 추구 목표 같아
ESG 경영의 핵심은 롱터미즘… 글로벌 산업재편기 '게임 체인저' 역할 할 것
국내 기업들 ESG·밸류업 수준 이머징마켓 못미쳐… 이사회 역할 강화 필요
기업의 무형자산 활용이 핵심… ESG와 밸류업은 지속가능 성장 쌍두마차
[]에게 고견을 듣는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과 밸류업은 기업의 지속가능 성장을 이끄는 쌍두마차입니다."
지난 11일 서울 서대문 디지털타임스 회의실에서 만난 류영재(64) 서스틴베스트 CEO(최고경영자)는 "ESG경영과 밸류업에 대한 오해가 적지 않다"며 "ESG는 경영이라는 제약속에 적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ESG가 탄소 감축, 노동, 인권 등 NGO(비정부기구) 운동이 아니라 새로운 환경속에서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가능케 하는 하나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는 "ESG경영은 글로벌 산업의 판이 바뀌는 현재 기업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드라이버(핵심요소)"라며 "무형자산을 잘 관리 활용해 기업가치 향상의 도구로 쓰는 것이 핵심이며 반드시 긴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역설했다.
밸류업(Value up)에 대해선 "단순히 주가를 올리는 프라이스 업(Price up)과 동일시해선 안된다"며 "ESG는 밸류업을 위한 기본적인 프레임워크, 밸류업의 기반으로 'ESG적 밸류업'이 완벽한 밸류업"이라고 강조했다.
류 대표는 "우리나라의 ESG경영이나 밸류업 수준은 이머징 마켓보다도 뒤진다"며 "일본처럼 정부가 기업의 ESG경영 및 밸류업 전환을 돕고, 주식 수요 기반을 확충시키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기업들도 이사회의 역할 강화 등 거버넌스를 선진화할 필요가 있다며 이사회가 밸류업에 기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류 대표는 중앙고와 한양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를 취득했다. 10여년 간 국내 증권사에서 일했으며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국부펀드 한국투자공사 운영위원,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2004년 영국 애쉬리지(Ashridge) 경영대학원에서 MBA (재무)를 취득했다. 런던에서 사회책임투자(SRI), ESG 등을 공부한 뒤 2006년 서스틴베스트를 설립했다. 서스틴베스트는 지속가능한(sustainable) 투자(invest)를 합친 말로, 회사의 지향점을 담고 있다. 서스틴베스트는 국내 첫 사회책임투자(ESG) 전문 리서치 회사로 출발해 기업 간 인수합병(M&A), 이사 선임, 임원 보수, 정관 변경 등 기업 의사결정과 관련해 기관투자가들에게 리서치 자료를 제공하고 전략과 투자의견을 권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대담 = 강현철 논설실장
- 최근 우리 기업들의 화두는 'ESG경영'과 '밸류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SG경영과 밸류업은 간단하게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달리 표현이 됐지만 거의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ESG경영은 환경(E)·사회(S)·지배구조(G)에 경영이라는 말이 합성된 겁니다. '스쿨 버스'는 버스지 스쿨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ESG경영 또한 경영인데 ESG가 너무 강조돼 있습니다. ESG 담론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주로 환경, 기후변화, 인권, 소비자 운동 등 NGO(비정부기구)에서 일했던 까닭입니다. 하지만 이 분들은 기업 현장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기업은 무조건 탄소를 줄여야 되고 소비자를 보호해야 되고 노동, 인권, 산재 이런 것만 해야 된다고 하는 것이죠. 그러나 이런 담론이 대의 명분이 있다해도 기업이 생존하지 못하면 그걸 펼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ESG는 경영이라는 제약 속에 적용돼야 되는 겁니다. 제한된 리소스(자원)를 최적으로 배치하는 기업 경영에는 ESG만 있는 게 아니라 HR(인적자원관리)도 있고, 마케팅도 있고, R&D(연구개발)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기업이 상황에 따라 때로 R&D에, 때론 영업이나 홍보 등에 집중할 수 있죠. 그런데 ESG만 외치는 분들은 기업 현금흐름이 악화되건 말건 ESG만 얘기하고 있습니다. 환경이나 여건이 바뀌면 그에 적응해 나가는 게 곧 경영입니다. 환경 변화에 적응한 기업만이 살아남았죠. 그런 것처럼 이제 ESG경영이라는 새로운 환경이 만들어진 겁니다. 예컨대 50년전으로 돌아가보면 그때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게 문제가 안됐습니다. 오히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할수록 생산활동을 왕성히 하는 까닭에 박수를 받았죠. 그런데 그 과정에서 외부효과로 인해 지구 온난화를 야기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규제가 생겼습니다. 이런 규제를 고려하면서 계속 성장해 나가는 게 곧 ESG경영입니다."
- 밸류업은 어떻습니까.
"밸류업과 프라이스 업(Price up·주가 상승)을 종종 혼동합니다. 주가가 올라가는 것이 밸류업과 무관한 건 아닙니다. 주가는 이론적으로 기업가치를 반영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주가가 오른다고 기업이 밸류업되는 건 아니죠. 밸류업의 결과로 프라이스 업이 나타나는 거지 프라이스 업을 한다고 밸류업이 되는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프라이스 업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배당을 늘리고 자사주를 사서 소각하고, 주주환원을 많이 하라고 합니다. 이게 제대로 된 밸류업은 아닌 거죠. 제대로 된 밸류업은 기업이 지속가능하게 또 장기적 관점에서 꾸준히 성장하는 겁니다. 이렇게 보면 ESG경영과 같은 걸 추구하는 거죠. 기업이 지속가능하게 성장해 나가는 게 ESG경영이고 밸류업입니다."
- ESG경영은 기업의 새로운 가치 창출의 도구로 불립니다. ESG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ESG경영의 핵심은 '롱터미즘'(longtermism·장기주의)입니다. 산업의 패러다임, 산업의 판이 바뀌고 있습니다. '게임 체인지'가 일어나고 있거든요. 유럽 일본 북미 기업들이 온실가스를 대폭 줄이겠다고 선언하고 그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기업 경영은 '쿼터리(quarterly ) 캐피탈리즘'(분기 자본주의)였습니다. 분기 이익이 시장 컨센서스에 부합하느냐가 최대 관심사죠. 이러니 경영진이 차기 아니면 차차기 분기 밖에 못보게 됩니다. ESG경영과 밸류업은 '롱 타임, 롱 허라이즌' (long time, long horizon) 즉 장기적 시계에서 보자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기업가치를 창출하는, 즉 '밸류 크리에이션'의 동력(드라이버)이 바뀝니다. 과거 밸류 크리에이션은 '텐저블 애셋'(tangible asset), 즉 유형자산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4차 산업혁명, 지식산업의 시대엔 그 동력이 '인텐저블 애셋' 즉 무형자산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오션 토모라는 리서치 기관이 S&P500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시가총액을 100으로 봤을 때 1975년엔 대차대조표상 유형자산 비중이 80% 가량이었습니다. 시총이 100원이라면 유형자산의 합이 80원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2020년을 보게 되면 유형자산 비중은 10원밖에 안되고, 90은 무형자산이 차지합니다. 예를 들어 CEO(최고경영자)의 역량이 무형자산의 10에서 14% 정도 차지합니다.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후 애플 경영이 악화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남양유업도 오너 리스크로 인해 2013년 117만원까지 갔던 주가가 25만원까지 빠졌죠. 미국의 경우 무형자산이 기업가치의 90%를 차지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코스닥은 무형자산 비중이 50% 정도 됩니다. 우리도 이 무형적인 부문을 어떻게 잘 관리하고 활용해 기업가치 창출의 도구로 쓰느냐가 중요합니다. 그게 바로 ESG경영인 겁니다. ESG가 기업 무형 부문의 생산성을 나타내는 하나의 지표로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ESG의 핵심은 기업 가치 창출의 드라이버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탄소배출의 경우 기업의 캐시플로에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우리 기업의 경우 아무리 재무제표를 찾아봐도 탄소를 얼마에 배출하는지가 안 나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투자자들이 ESG 데이터를 찾게 되는 겁니다."
- E(환경), S(사회) G(지배구조) 세 부문에서 각 부문을 평가할 수 있는 핵심지표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2006년 저희 회사가 'ESG 밸류 평가 프레임워크'라는 ESG 평가지표를 국내 처음 만들었습니다. '환경'의 경우 환경성 개선 측면, 생산공정에서 환경 사고에 대한 예방과 대응, 공정관리, 온실가스 관리 등을 봅니다. 공급망은 친환경 공급망 관리를 하고 있는지가 지표입니다. '안전'에서는 근로조건이나 고용상 형평성과 포용성, 성 다양성을 잘 하고 있는지, 노사 관계가 협조적인지를 평가합니다. 산재, 하도급 거래에 있어서의 공정거래나 동반성장, 고객관리에 있어서 고객정보 보호, 제품 안전성과 고객만족 지표도 포함됩니다. '거버넌스'에선 주주권리가 잘 보호되고 있는지, 정보가 투명한지, 이사회 구성 활동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이사회 보수는 어떻게 책정되는지, 지속가능한 인프라는 어떻게 돼있는지가 핵심지표입니다."
- 최근 ESG경영이 다소 주춤하는 듯 보입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 ESG를 수많은 경영 트렌드 중 하나로 보십니까 아니면 지속가능한 테마로 보십니까?
"지속 가능한 테마라고 확신합니다. 다만 하나의 담론이 메인 스트림화(주류화)되는 건 직진 우상향 과정이 아닙니다. 역사는 정반합으로 발전한다는 말처럼 나선형으로 발전한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에선 지난 3~4년동안 오버슈팅(과열)한 측면이 있습니다. 지금은 템포를 조절하는 국면입니다. 미국 뉴저지의 킨(Kean) 대학엔 ESG 학과가 있습니다. 거기 한국인 교수는 기후변화협약 탈퇴를 공언하는 트럼프가 미 대통령이 될 경우 ESG가 퇴조하는 것 아닌가라고 물었더니 두가지 이유 때문에 계속 갈 것으로 본다고 말씀하더군요. 첫째는 미 주요 기업들중 이미 ESG경영을 선언한 곳이 많다는 겁니다. 코카콜라,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기업들이 회원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이 기업 목적을 40년만에 바꿨습니다. 40년 전 기업의 목적은 주주이익의 극대화라고 했던 것을 2019년 기업은 이해관계자들의 이익도 고려하면서 주주 이익을 추구한다고 변경한 것입니다.그 배경에는 연기금 국부펀드 대학펀드 등 큰손 투자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책임투자'(responsible investment) 원칙으로 투자기준을 바꿨습니다. 투자할 때도, 채권을 인수할 때도 기업의 ESG 수준을 고려하는 것이죠. 이게 기업의 자본비용(캐피탈 코스트)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미국 기업은 이사회 중심 경영을 합니다. 이사 선임권이 큰손들에 있는데 그들이 바뀌었다는 겁니다. 또 하나는 국제회계 기준을 정하는국제회계기준(IFRS) 위원회 산하에 ISSB가 있습니다. ESG 공시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기구죠. 2021년 발족해 공시 가이드라인을 내놨습니다. 세계적으로 2025~2026년 사이에 ESG 정보를 공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시기를 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공시는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금융위가 '밸류업 가이드라인'을 내놨습니다. 주요 내용은 무엇이고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기업, 거래소 등 정부기관, 투자자에게 각각 다른 걸 요구했습니다. 기업에겐 중장기적 자본 효율성, 성장전략, 기업가치 제고 방안, 이사회 역할 강화 등을 주문했습니다. 정부에게는 세제 지원, 밸류업 지수를 요구하고 투자자들에겐 주가만 보지 말고 기업을 모니터링하면서 ESG와 관련돼 사건 사고를 일으키거나 리스크 요인이 불거지면 기업과 대화하라고 요청했습니다. 금융위가 이를 발표한 배경은 생산성이 계속 하락한다는 겁니다. 총요소생산성은 1990년대 2.1% 정도였는데 지금은 0.6%로 급락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초고령화로 가는 사회다 보니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미중 패권 전쟁 속 공급망도 재편되니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이냐라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죠. 기업이 프라이스 업 아닌 지속 가능한 밸류업을 하도록 해야겠다고 내놓은 게 밸류업이죠. 또다른 측면에선 이른 바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가 있습니다. PBR(주가순자산비율)이나 PER(주가수익비율), ROE(자기자본이익률) 지표의 지난 10년 평균을 보면 우리나라가 이머징 마켓 평균보다도 뒤쳐집니다. 예컨대 ROE는 우리가 7.98% 수준인데 이머징 마켓 평균은 11%죠. PBR도 1.04인데 신흥국 평균이 1.58입니다. PER은 14.16배인데 이머징 마켓은 14.31배입니다. TSR(총주주수익률)을 보더라도 일본은 지난 10년동안 270% 정도가 창출됐어요. 우리나라는 60% 밖에 안됩니다. 이런 것들을 높여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밸류업이 만들어진 겁니다."
-ESG와 밸류업은 서로 다른 주제인듯 하면서도 사실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밸류업 혁명의 핵심은 ESG"라는 얘기도 있고, '동전의 양면' 또는 '두바퀴의 자전거'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이 두 이슈는 어떻게 관련이 됩니까?
"기업이 밸류업된다는 얘기는 지속가능하게 성장해 나간다는 것이고, 그러려면 두가지 팩터가 필요합니다. 먼저 자본이나 보유자산 등 유형적 요소를 잘 활용하는 겁니다. 말씀드렸던 것처럼 기업가치의 90%는 무형부문입니다. 그러니까 'ESG적 밸류업'이 돼야 명실상부한 완벽한 밸류업이 되는 거죠."
- ESG와 밸류업으로 경영혁신을 이룬 국내외 사례를 들려주십시오.
"일본의 사례가 바로 ESG적 철학을 담고 있는 밸류업입니다. 일본이 밸류업을 스타트한 건 2012년 아베가 집권하면서입니다. 아베 전 총리는 완화적 통화 정책, 확대 재정, 산업 구조개편 등 '세가지 화살'을 들고 나옵니다. 그리고 그 하위(서브) 정책으로 자본시장 발전을 선정했습니다. 자본시장을 발전시키려면 외국인 투자자들을 되돌아오게 해야 하는데 대장성 조사 결과 일본 기업들의 후진적 거버넌스가 걸림돌이었습니다. 그래서 거버넌스 개혁을 위해 거래소를 앞세워 거버넌스 코드를 만들었죠. 그다음 스튜어십 코드(stewardship code·연기금 의결권 행사지침)를 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도입합니다. 이어 운용자금이 2000조원이 넘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후생연금(GPIF)을 앞세워 ESG를 기준으로 투자하게 만들었습니다. 2022년 6월 기시다 전 총리는 '뉴 포머 캐피탈리즘'(새로운 자본주의)을 내걸고 바통 터치했습니다. 정책적으로 기업이 사용 에너지를 전환할 수 있게 하고 ESG경영에 신경쓰도록 지원해준 겁니다. 둘째 스타트업 정신, 기업가정신의 고양입니다. 스타트업 정신에 투자하도록 한 겁니다. 마지막으로 DX와 GX, 즉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와 그린 트랜스포메이션 투자를 강화했습니다. 이게 모두 ESG와 맥락이 닿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지수(인덱스) 제정이나 세제 지원 수준에 그치는 듯 싶습니다. 기업이 정말 밸류업을, 대전환을 할 수 있게끔 그런 정책적 지원이나 재정 확충, R&D 지원으로 가야 하는데 기업한테만 부담을 주는 측면이 있습니다. 일본처럼 전폭적으로 밸류업을 할 수 있게끔 여건을 해줘야 하는 데 조금 부족합니다. 일본은 또 ESG적 관점에서 판을 깔아줬는데 이 부문도 뒤떨어진 것 아닌가 합니다."
- ESG경영과 밸류업 성공을 위한 핵심 기업전략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우선 모든 기업에 통용될 수 있는 전략 내지 접근법으로는 기업의 자산이 효율적으로 배치돼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자산들이 미래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는 그런 자산인지, 본업과 연관돼 있고 적어도 시너지가 낼 수 있는 그런 자산인지에 대한 점검을 해야 합니다. 불요불급한 자산 매각 등 자본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해야 합니다. 그다음 제품이나 서비스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R&D와 개선 노력이 필요하며, 주주환원율도 높여야 합니다. 통계에 따라 좀 다르긴 한데 우리의 주주환원율은 28~29% 수준입니다. 이머징 마켓 평균은 40%가 넘습니다. 주주환원이라는 건 배당을 늘리고 자사주를 매입 소각하는 겁니다. 이해관계자 관계 관리를 더 강화하는 것도 시급합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에너지를 많이 쓰는 중후장대형 제조업이 중심입니다. 탄소를 감축하기 굉장히 어렵습니다. 유럽 등은 '넷 제로'를 통해 산업의 판을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탄소 감축을 전략화하는 겁니다. 탄소 중립은 어렵지만 가야 할 길입니다."
- 세계적으로 비교해볼때 국내 기업의 ESG와 밸류업 경영은 어느 수준일까요?
"굉장히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머징 마켓보다 낮은 PBR이 우리나라의 ESG와 밸류업 수준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거시적인 정책이 백업돼야 하고, 또 기업이 거기에 맞춰 그런 방향으로 가야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아울러 수요 기반을 확충한 일본을 벤치마크해야 합니다. 일본은 지난 10년 동안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일본 주식 ETF(상장지수펀드)에 투자, 현재 70조엔 정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1년에 평균 3조~4조엔, 우리 돈으로 70조원 가량을 산 겁니다. 그게 지금 35조엔 정도 평가이익이 났습니다. 게다가 후생연금도 2010년 일본 국내 주식을 11.5% 정도 보유했는데 2023년 24.7%로 114% 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국민연금은 역행하고 있습니다. 2020년 21%를 보유했던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 비중을 2025년 14.9%로 줄이고 2029년에는 13%까지 낮출 계획입니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을 안 사는데 해외 투자자에게 우리 주식을 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밸류업이 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려면 사주는 주체가 있어야 됩니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전체적으로 보면 장기 펀드들이 빠져나가는 추세입니다. 포스코의 경우 작년 초 외국인 지분율이 51%였는데 지금은 25%로 줄었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반이나 이탈해 나갔다는 것은 의미있는 시그널입니다. 포스코가 온실가스 감축 등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게 이유입니다. 이는 포스코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도 많이 개선됐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아시아 12개국의 거버넌스를 평가하는 ACGA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07년 6위까지 올라간 적이 있었지만 2020년 9위, 2022년 8위에 그쳤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가 '주주 자본주의'가 아니라 '지배주주 자본주의'이기 때문입니다. 대기업들의 패밀리 경영을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전문 경영인과 능력이 비슷한 인물이라면 오너가 경영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경영 역량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 오너 3세, 4세라는 이유로 경영을 맡는 것은 모두가 불행한 일입니다."
-지배구조 개선엔 이사회 역할이 중요합니다. 역할 강화를 위해선 어떤 게 필요합니까?
"이사회 구성원이 누구인가가 가장 중요합니다.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재무 HR 전략 ESG 등 이사회 멤버의 '다이버서티'(다양성)가 필요합니다. 우리 기업들은 교수 35%, 전직 관료 35%, 법조인 15% 정도 됩니다. 필드나 기업 경영 경험이 있는 사람들로 이사회를 구성해 밸류업에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외환위기 이후 지난 20여년동안 지배구조가 나쁘다고 해서 사외이사를 임명해 견제와 균형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사회의 목적은 결코 견제와 균형이 아닙니다. 견제와 균형을 통해 기업을 한 발 앞으로 나가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견제와 균형만 외치다 보니 교수들만 앉아 있는 거예요. 교수님들 중에서도 훌륭하신 분들이 많이 계시겠지만 필드 경험, 이론과 실제는 큰 갭이 있습니다. 나스닥이나 미국 기업의 사외이사들을 보면 기업 경영에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주류입니다. CFO 분들을 만나고 보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가 기업인 출신 사외이사들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얘기를 많이 해준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은 분들은 뜬구름 잡는 얘기나 책 보면 나올 수 있는 정도 얘기를 해준다는 거죠. 전문성을 갖고 모르면 독립성도 확보할 수가 없습니다. 전문성과 독립성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까지 확대함으로써 이사회가 주주 이익을 더욱 고려하도록 하는 상법 개정을 둘러싼 논란이 거셉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현행 법상 이사들은 회사에 대해서만 충실의무를 다하면 되는 걸로 돼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배주주와 비지배주주 간 이해가 상충하는, 자본거래나 합병분할 같은 경우 비지배주주에게 손해를 끼쳐도 충실의무에 저촉되는 게 아닙니다. 회사뿐만 아니라 비지배주주에 대해서도 충실의무하자라는 게 개정안 내용이죠. 제가 보기엔 상법 개정론자들은 철저히 주주 중심의 자본주의에 입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진정한 주주 자본주의 경험이 없어 개정론의 필요성은 공감합니다. 다만 영미에서도 주주 자본주의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했다며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오해하기 쉬운데 사회주의가 아닙니다. 몸통은 자본주의인 겁니다. 주주 이익을 추구하되 이해관계자들을 고려하자는 것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입니다. 저는 주주 자본주의를 거쳐 다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갈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법은 미래를 담는 그릇이 돼야 합니다. ESG 자본주의로 가는 와중에 상법 개정안은 자칫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기초한 ESG 경영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회사와 단기 플레이하는 주주가 한편이 되고, 이해관계자들이 또 한편이 돼 상충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단서 조항으로 이해관계자에 대한 배려, ESG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영국도 2006년 상법을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되지만 단 이해관계자들도 배려해야 된다고 개정했습니다."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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