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카프카"… 국내외 휩쓴 `한강 신드롬`

김나인 2024. 10. 13.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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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온라인서점 트래픽 다운
伊, 채식주의자 연극 공연 예정
"현대산문의 혁신가" 외신 집중
노벨상 홈페이지 갈무리.
주영한국문화원이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며 11일 영국 런던 포일즈 채링크로스 본점 언어 부분에 '한강 특별 코너'를 설치했다. 연합뉴스

'어디 있니. 너에게 말을 붙이려고 왔어. 내 목소리 들리니. 인생 말고 마음, 마음을 걸려고 왔어. 저녁이 내릴 때마다 겨울의 나무들은 희고 시린 뼈들을 꼿꼿이 펴는 것처럼 보여. 알고 있니. 모든 가혹함은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가혹해.'(시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中 '몇 개의 이야기6')

소설가 한강(53·사진)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국내외에서 숏폼과 소셜미디어에 밀려 멀어졌던 시와 소설, 문학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의 작품은 최고의 문학적 업적 중 하나지만, 고통스러운 역사와 가부장적인 문화로 점철된 한국 문화에 대한 저항의 산물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국 사회의 '가혹함'을 정면으로 응시한 한강의 작품은 전세계를 매료시켰다. 노벨위원회가 평했듯 한강은 기존 통념에 맞선 획기적인 작품들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로 인정받으면서 K문학의 지평을 넓힐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의 젊은 여성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놀라운 일", "예상을 뒤엎었다"는 평을 받으며 전세계의 시선을 한국 문화 전반으로 향하게 하고 있다. 미국의 정론지로 꼽히는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도 한국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NYT는 "한강 작가를 비롯해 한국 여성 작가들이 보여주는 작품은 여전히 매우 가부장적이고 때론 여성 혐오적인 한국 문화에 대한 저항의 한 형태"라고 진단했다. 이 매체는 여성들이 정치, 경제, 뉴스 미디어에서 차별 받는 한국에서 문학은 여성이 자신의 힘을 표현하는 창구라고 분석했다. 실제 한국문학번역원에 따르면, 최근 8년간 노벨상을 비롯한 국제 문학상을 받은 한국 작가 중 3분의 2가 여성인 것으로 집계됐다.

노벨문학상 수상이 한국 문학의 저력을 확인한 사건이지만,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은 이미 런던 등 유럽 등지에서도 커지고 있었다. 특히 지난 2016년 '채식주의자'로 한강에게 부커상의 국제 부문인 맨부커 인터내셔널(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안긴 런던은 각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다. 한강은 그해 한국인 최초로 부커상을 받고, 2018년 소설 '흰'이 최종 후보에 올랐다. 12일(현지시간) 오후 영국 런던 도심의 대형 서점 포일스 채링크로스 본점에 한국어 원서 재고를 진열한 '한강 특별 코너'가 마련됐는데, 하루 만에 동난 것으로 전해졌다. AP통신은 "수상 소식이 타전되자마자 일부 온라인 서점들은 몰려드는 트래픽에 다운되는 사태를 겪기도 했다"며 "SNS는 한강의 수상을 자랑스러워하는 메시지로 도배됐고, 일부는 특유의 가부장제 문화 속에서 여성 작가가 이룬 쾌거를 부각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K팝과 '오징어 게임'이 대표했던 K-컬처에서 문학의 비중이 커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크다. 이탈리아에서는 이전부터 준비했던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원작으로 한 연극을 상영할 예정이다.

AFP통신은 "오스카에 이어 TV 드라마와 K팝 스타들이 세계 시장을 점령했고, 이제는 노벨문학상마저 가져갔다"며 "한국 전쟁 이후 격동의 근대사를 거치며 한국의 고유한 문화적 토양이 마련됐다"고 보도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강 작가는 '한국의 카프카'라고 불린다"며 "한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최근 몇 년간 아카데미 작품상과 넷플릭스 히트작, 인기 밴드에 이어 한국 문화의 또 다른 보석"이라고 전했다.

문학뿐 아니라 가요계도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때 아닌 역주행 돌풍이 불고 있다. 이날 국내 음원 플랫폼 멜론에 따르면, 악동뮤지션의 노래인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알려진 10일부터 일간 차트에서 역주행을 시작했다.

한강이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초고 작성 당시 이 노래를 인상 깊게 들었다고 이야기하는 영상이 퍼지면서 입소문을 탔다. 방탄소년단 멤버들도 축하 인사를 전했다. RM이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과거 SNS를 통해 후기를 남긴 영상도 공유됐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이 숏폼 등 영상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 '잘파세대'들을 책 앞으로 다시 불러오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기대도 크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 성인 10명 중 6명은 1년간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10월 4일부터 11월 10일까지 만 19세 이상 성인 5000명과 초등학교 4학년생 이상 학생 2400명을 대상으로 연간 종합독서율을 조사(기준 2022년 9월 1일~2023년 8월 31일)한 결과를 내놨다.

이에 따르면 초·중·고 학생은 직전 조사 대비 4.4%포인트(p) 증가한 95.8%를 기록했지만, 성인은 4.5%p 하락한 43.0%에 그쳤다. 독서량 기준으로 학생은 36.0권, 성인은 3.9권으로, 2년 전 대비 학생은 1.6권 증가했고 성인은 0.6권 줄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저서를 구매하기 위해 서점에서 보기 드문 '오픈런'이 이어지고, 온·오프라인 서점에서는 반나절 만에 품절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교보문고 집계에 따르면,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 10~12일 3일간의 판매량은 7~9일 대비 910배 늘었다. 누적 판매 순위는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순이다. e북 순위도 동일했다. 매진되면 살 수 없는 종이책의 단점을 보완하는 e북에 대한 관심도도 커졌다. 젊은 세대에게 친숙한 스마트폰, 태블릿 단말기를 활용한 e북의 유용성과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김나인기자 silkni@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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