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결과 재발의 ‘무한 핑퐁 게임’…특검법을 어찌할꼬
민주당 상설특검 카드는 한계 뚜렷…여당 결집 흔들리며 귀추 주목
[주간경향] ‘3전4기.’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을 가리키는 말이다. 3번이나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도 역시 3번이나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로 입법이 막힌 채 상병 특검법이 또다시 재발의를 앞두고 있다. 지난해 9월, 그리고 올해 5월과 9월에 각각 발의됐던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이 사실상 ‘재재재발의’를 천명했기 때문이다. 세 번의 실패를 딛고 네 번째는 특검을 성사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건희 여사 관련 특검법은 ‘2전3기’에 해당한다. 지난해 3월과 올해 9월 발의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은 ‘본회의 통과→대통령 거부권 행사→본회의 재표결 부결’이라는 도돌이표 운명을 겪었다.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과 같은 코스를 밟았다. 야당은 김 여사 특검법 역시 재발의를 벼르고 있다.
정쟁 속 협치 뒷전…지루한 표대결만
21대 국회와 22대 국회에서 연달아 야당은 과반을, 여당은 100석 이상을 차지하면서 생긴 무한 도돌이표다. 여야 정쟁 속에 협치와 협상은 뒷전이고 지루한 표 대결만 벌어졌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다. 지난 10월 4일 국회 본회의에서 ‘쌍특검법안’(채 상병 특검법·김건희 특검법)의 재의안이 부결된 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10월 7일부터 10월 9일까지 실시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잘못한 결정’이라고 한 응답자는 60%에 달했다. ‘잘한 결정’은 22%에 불과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쌍특검 재의안 부결에 ‘잘한 결정’이라고 답한 22%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 지지율 20%대와 비슷하다”고 해석했다. 쌍특검법안 부결에 대한 부정적인 답변율은 조금씩 내려가고 있다는 것이 엄 소장의 시각이다. 엄 소장은 “이를 용산 대통령실에서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는 것으로 오판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하지만 이것은 무한 반복되는 특검안 부결에 대해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되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야당의 특검 도전과 정부·여당의 특검 무력화라는 도돌이표는 무한 반복될 것인가.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전 의원)는 “대통령제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 것”이라면서 “국회의 다수결이 만능이 아니며, 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거부권에 대해 시비를 걸 수 없어서 대통령제에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무한 핑퐁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돌파구를 찾기 위해 민주당은 곧바로 상설특검 카드를 꺼냈다. 지난 10월 8일 민주당은 국회 의안과에 김건희 여사 의혹 진상규명 상설특검 특별검사 수사 요구안을 제출했다. 기존 특검법이 주요 수사대상으로 삼은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연루 의혹은 제외한 채 인천세관 마약 밀반입 사건 수사외압 의혹, 삼부토건 주가 조작 의혹 등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사실상 ‘플랜 B’를 가동한 것이다. 상설특검의 경우 이미 실행되고 있는 법이므로, 윤 대통령의 거부권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서 지난 7월부터 민주당 의원 사이에 새로운 아이디어로 제시됐다. 하지만 민주당은 지금까지 개별 특검만 밀어붙여 왔다.
의혹 제기 계속 땐 특검 갈 수밖에 없어
상설특검법은 2014년 박근혜 정부에서 통과됐다. 특검 추천위원회의 위원 7명 중 정부·여당 쪽 인사가 4명을 차지한다. 국회 몫은 4명인데 제1~2 교섭단체가 2명씩 추천한다. 민주당은 대통령과 그 가족이 연루된 사안의 경우 여당이 추천위 구성에 참여할 수 없도록 국회규칙을 개정하려 한다. 정지웅 변호사(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는 “이렇게 되면 야당 우위의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특검을 만들 수가 있긴 하나 상설특검의 한계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상설특검은 수사기간이 60일로 짧고 파견 검사도 5명에 불과하다. 윤 대통령이 추천위가 추천한 특검 후보를 특검으로 임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정 변호사는 “임명하지 않게 되면 법률 위반이기 때문에 탄핵 사유가 추가된다”고 말했다. 엄 소장은 “야당의 상설특검 추진은 개별 특검안을 압박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 야당의 해법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계속된 쌍특검법안 거부에 대한 여당 내부의 반발도 심상치 않다. 지난 10월 4일 쌍특검법에 대한 재의안 표결에서 반대표는 104표에 불과했다. 국민의힘이 108석인 것을 고려하면 ‘반란표’가 4표나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윤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간 갈등이 ‘반란’의 징표가 될 수 있다. 한 대표는 김 여사 의혹에 대해 지난 10월 10일 “검찰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당 내부에서는 윤·한 갈등 속에서 일단 한 대표가 특검법안을 지렛대로 사용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그 때문에 쉽사리 야당의 특검법안을 수용하는 변화를 선택할 수는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한 대표는 지난 10월 4일 재의안 표결을 앞두고 특검법 반대를 강조했다. 엄 소장은 “한 대표의 태도를 보면 대통령실이 올해까지는 특검법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내년은 장담할 수 없다”고 예견했다. 엄 소장은 ‘여당 의원의 이탈’에 더해 ‘새로운 의혹의 부각’이 이런 상황을 만들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여의도에서는 명태균씨와 윤 대통령 부부가 특수한 관계란 의혹이 점차 불거지고 있다. 대통령실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명씨 사건이 부각하자 전전긍긍하고 있다. 정 변호사는 “지금은 겨울철 얼어붙은 수도를 불로 계속 녹이고 있는 형국인데, 아무런 물도 나오지 않는다”며 “하지만 쌍특검과 상설특검이 계속 온도를 높여 얼음을 녹이고 있는 과정이기 때문에 어느 순간 물이 터져 나올 수 있다”고 비유했다. 김 여사에 대한 의혹 제기가 계속되는 한 야당이 추진하는 특검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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