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도 가세한 ‘산업은행 부산 이전’···언제까지 논쟁만 하나요?[경제뭔데]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들이 쓰는 [경제뭔데] 코너입니다. 한 주간 일어난 경제 관련 뉴스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서 전해드립니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 논란, 2009년부터
‘본점 소재지 서울’ 명시한 법 개정해야
여당 강력 추진, 야당 ‘침묵’
이전 효과 분석 보고서도 제각각
“산업은행, XX은행 둘 중 뭐냐고? 당연히 후자지. 연고 없는 부산 내려가서 기러기 부장들이랑 매일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저녁을 함께한다고 생각해봐라.”
산업은행과 다른 선택지를 놓고 고민하는 한 취업준비생 사이트 글에 달린 댓글입니다.
산은의 부산 이전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습니다. 이 안은 이행도 폐기도 되지 않은 채 오래 뜸만 들이고 있습니다. 내부에선 불안이 깊어지고, 외부에선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 해 30∼40명대였던 퇴사자가 부산 이전 논의가 시작된 후인 2022년 이후 97명, 지난해 87명으로 2배 이상 급증했다고 합니다.
일단 배경 설명부터 해보겠습니다. 금융 공공기관들의 부산 이동이 시작된 건 2008년 이명박 정부입니다. 이때 정부는 2008년 ‘금융중심지 조성과 발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부산을 파생금융 특화 금융중심지로 지정하면서 차례차례 금융기관을 내려보냈습니다. 현재 부산 남구 부산국제금융센터에는 기술보증기금, 한국은행 부산본부, BNK부산은행, 한국거래소, 한국자산관리공사 등 35개 기관이 입주한 상태죠.
산은의 부산 이전 논의는 사실 오래됐습니다. 갑자기 튀어나온 논의는 아닙니다. 2009년 산은에서 분리됐던 정책금융공사(정금공)를 부산으로 이전시키는 안으로 말이죠. 하지만 산업은행과 정금공이 재통합되면서 자연스럽게 부산 이전 논의가 사라졌습니다. 그 뒤에 산은 내 선박금융 관련 부서만 따로 빼서 부산에 이전하는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실제로 이 구상은 실현됐습니다.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산업은행 3개 기관의 해양 금융 기능이 모여 부산에 해양금융종합센터가 설립됐습니다.
그렇다면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이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철학을 계승했던 문재인 정부에선 어땠을까요.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산은의 부산 이전 논의가 제기된 적은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 본격 추진되진 않았습니다. 2019년 당시 이동걸 산은 회장은 일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총선용 선거 공약으로 산업은행의 이전을 언급하자 “쓸데없는 논의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공개 비판한 적도 있습니다. 이 회장은 퇴임 후에도 금융기관의 서울 ‘집적 효과’ 등을 들어 산은의 부산 이전을 강력히 비판하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산은의 부산 이전이 본격적 화두가 된 건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공약을 내고 2022년 5월 국정과제로 채택하면서입니다.
국토교통부는 산업은행의 모든 기능을 100% 이전하는 것으로 결론을 낸 뒤 이전 공공기관으로 지정·고시했습니다. 사실상 행정절차는 마무리했고 이제 남은 건 산업은행법 개정뿐입니다. 산업은행의 본점 소재지를 ‘서울특별시’로 규정한 법을 고쳐야만 이전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10일 국정감사에서 “법이 개정돼야 (산은의 부산 이전을) 완성할 수 있다”며 “국회와의 적극적인 협조 노력을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민주당, 보궐선거 앞두고 ‘침묵’
한동훈 등 국민의힘, 강력 추진 쟁점화
오세훈 시장 “서울에 존치가 맞다” 반론
하지만 여소야대 22대 국회에서 산은법 개정안이 통과될지는 의문입니다. 부산남구를 지역구로 둔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22대 국회에서 다시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 논의를 시작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국회 의석 지형을 보면, 부산의 18개구 중 17곳이 국민의힘 의원 지역구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부산에 딱 한 석 있습니다. 민주당이 국민의힘에 협조할 여지가 적은 셈이지만 차기 총선 민심을 고려하면 대놓고 반대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민주당 측 한 인사는 “산은이 부산에 가면 지역 균형발전 되나”라며 “대통령 공약이었다는 것 외에 무슨 명분이 있는 안인지 모르겠다. 노무현 정부 때도 서울에서 역할이 큰 은행은 안 내려보냈다”고 말합니다.
특히 보궐선거를 앞둔 현시점에서 산은의 부산 이전을 공개 반대하는 야권 인사를 찾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실제로 지난 10일 국감에서 산은 이전 언급을 한 야당 의원은 조승래 의원(대전 유성구갑) 단 한 명에 불과했습니다. 이마저도 “오세훈 서울시장이 반대를 아주 강력하게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오세훈 서울시장 설득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는 애매한 발언에 그쳤습니다. 이는 선거를 앞두고 부산지역 민심을 무시하지 못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관련한 언급을 피하고 있습니다.
여당은 여당대로 입장이 갈립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달 부산 금정구청장 보궐선거 지원 유세에서 “우리는 산업은행을 부산에 이전할 것”이라며 끈질기게 부산의 발전을 위해서 챙기고 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강하게 추진 의사를 밝힌 셈이죠. 그러나 또 다른 여권 차기 대선 주자로 꼽히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8월 서울시의회에서 “산업은행은 서울에 계속 존치하는게 맞다”며 “첫째는 산업은행 고객의 대부분은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아시아의 금융 허브로 가장 적격한 요건을 가진 곳이 서울이기 때문”이라고 조목조목 반대 입장을 냈습니다. 산은 노조는 여기에 환영했고요.
산은 이전해야할까?···객관적 타당성 보고서는 없는 상황
배경 설명이 길었습니다. 핵심은 산은은 부산으로 가야할까 입니다. 이 부분은 사실 명쾌한 답을 내기가 현재로선 어렵습니다. 부산 이전을 놓고서 나온 보고서는 두 가지인데 모두 객관성을 공격받고 있습니다.
2022년 4월 부산시 산하 부산연구원이 만든 보고서에는 2025년 산은 본사 근무 인원 절반이 내려올 때 부산·울산·경남 생산 유발 효과는 총 2조4076억원, 부가가치 유발 효과는 1조5118억원, 취업 유발 효과는 3만6863명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산은 노조가 한국재무학회에 의뢰해 나온 보고서에는 산은 이전으로 거래처의 이탈률이 늘고 직원들의 퇴사율도 심화하면서 향후 10년간 산업은행 수익이 6조5337억원 감소할 것으로 봤습니다.
산은 내부에선 이럴 바엔 노사가 공동 참여하는 타당성 검토를 해서 취소든 이행이든 신속히 이 문제가 정리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노조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UAE를 다녀오고 투자유치를 위한 별도 부서가 생기고, 반도체산업을 지원하라고 해서 관련 상품이 만들어지는 등 서울에서 할 수밖에 없는 업무가 계속 더해지고 있다”면서 “동시에 부산으로 이전을 하라는 지시를 거두지 않으니 현장은 혼란스러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찬성론자들은 신속한 이행을 촉구합니다.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0일 국감에서 “제20대 21대 국회에서 여야 지역구를 가지지 않고 80여 명이 넘는 국회의원이 산업은행 본점의 지방 이전에 찬성을 했다”며 “우선적으로 임직원들이 우려하고 있는 정주여건과 같은 지원 시책 사항들을 잘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기관 이전은 정말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는 주제입니다. 이해관계가 걸려 있으니까요. 어떤 방향으로 결론이 나든 여야, 정부 모두 피하지 말고 합의를 이루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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