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 알고 있어, 여기 개발된대" 땅 샀더니…평당 1만원에도 안 팔렸다
[편집자주] 국민들의 '살 권리'가 위협받는다. 전세사기 같은 불법거래는 대부분 관계당국의 관리·감독 사각지대에서 벌어진다. 국내 부동산시장 거래의 절반 정도는 직거래, 이 중 상당수는 무늬만 직거래인 '불법·무자격 중개'다. 규모에 비해 미성숙한 부동산 시장의 민낯이다.
#.40대 전문직 A씨 가족은 5~6년 전 충청도 지역 땅 1650㎡(약 500평)를 샀다. 3.3㎡당 가격은 600만원. A씨의 어머니가 지인 모임에서 대규모 개발 호재가 있다는 '고급정보'를 듣고 와서 땅을 사자고 가족들을 설득했다. A씨 가족은 몇 년이 지나서야 기획부동산에 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평당 시세는 1만원에도 거래가 안 됐다. 그 지역을 잘 안다길래 웃돈까지 챙겨줬던 중개업자는 미등록 무자격자로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주택 거래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관청에 등록된 개업공인중개사를 통하지 않고 직거래 된 국내 주택(아파트, 연립·다세대, 단독·다가구, 오피스텔, 분양권)은 10만채가 넘는다. 관리·감독 사각지대에 놓인 매수인들은 전세사기는 물론 초과보수, 떴다방 등 불법거래의 '먹잇감'이 된다.
12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최근 국토부가 실시한 전세사기 특별단속 결과, 적발된 전세 사기 의심자 중 30%가 공인중개사로 밝혀졌다. 공인중개사지만 정식 중개거래가 아닌 직거래 형식을 악용해 편익을 취한 것이다.
정부는 네 차례에 걸친 기획조사를 통해 사기의심 거래 4137건을 적발하고, 관련자 1414명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이 가운데 488명이 공인중개사로, 직거래를 가장해 법정 한도를 초과한 중개보수를 챙기는 등 불법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
◇ 직거래로 위장한 중개거래, 분양업자와 '떴다방'까지…불법중개 만연
해당 공인중개사들은 실제로는 중개거래지만, 이를 직거래로 '거짓 신고'해 법정 중개보수 최고요율을 초과하는 수수료를 받아냈다. 특히 임차인들은 이들이 공인중개사라는 점을 믿고 거래에 응하고, 부당한 수수료까지 지불해 금전적 손실을 입었다.
사기의심 거래 4137건 중 무등록 중개는 계약서를 보관하지 않거나 직거래로 신고해 증거를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수사망을 피해왔다. 무등록 중개업자들은 이 같은 방식으로 공인중개사법을 위반하고도 단속의 사각지대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분양권' 거래도 다르지 않다. 분양업자들이 직거래를 가장해 높은 수수료를 챙기는 불법거래 사례도 잦다.
최근 강남 '로또청약' 현장에서는 분양업자들이 분양권을 직접 사고 팔며, 법정 한도를 초과하는 중개 수수료를 챙기는 거래가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부동산시장에 만연했던 '이동식 중개업자'(일명 떴다방)도 다시 등장했다. 청약 당첨자를 대상으로 불법 중개를 시도해 법정 한도를 넘는 중개보수를 요구하면서도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강남 로또청약 현장에서 활동하는 떴다방은 주로 자금 조달 부담을 느끼는 청약 당첨자들을 노린다. 서울 서초구 '디에이치방배'의 경우 최근 일반공급 청약에 나온 650가구 중 86가구(13%)가 잔여 가구로 풀렸다. 이 아파트 특별공급에서는 당첨자 594가구 중 156가구(26%)가 당첨이 취소되거나 계약을 포기했다. 대부분 서류 제출 후 부적격 당첨자로 판정됐다.
청약에 당첨되더라도 자금 마련이 어려운 이들은 시세차익을 포기하고 빠르게 분양권을 처분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노린 '떴다방'은 불법적인 직거래를 유도해 중개 수수료를 챙기는 식이다. 공인중개업계 관계자는 "불법 떴다방 거래가 다시 등장한 것은 청약제도, 부동산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로또 같은 큰 시세차익과 제도적 허점이 개선되지 않는 한 불법 거래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지역은 그 지역업자한테 물어보면 바로 답 나옵니다."
정부가 감시하기 어려운 불법·무등록 중개업자의 일탈행위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믿을 수 있는' 지역 공인중개사들의 자체 연결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공인중개사협회를 이전처럼 '법정단체'로 지정해 지도점검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다만 일부에서는 협회의 권한·기능 강화가 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2일 국회와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2020년~2024년 7월 부동산거래질서교란행위 신고 현황' 분석 결과, 최근 5년간 집값 띄우기 및 담합, 허위매물, 무등록 중개 등 부동산거래질서교란행위 신고 건수는 6274건으로 집계됐다.
신고 건수는 2020년 2221건에서 이듬해 1574건, 2022년 536건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다가 지난해 전년보다 86% 늘어난 998건을 기록, 증가세로 돌아섰다. 올해는 1월부터 7월까지 신고된 건수는 945건으로 이미 지난해 수준에 근접했다. 최근 시장 분위기를 감안하면 1000건을 훌쩍 넘을 것으로 우려된다.
무등록 중개 등 시장교란 행위를 막기 위한 자구책도 나오고 있다. 일부 서울 자치구에서는 소비자가 공인중개사 정보를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도입·시행하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는 지난달부터 '개업공인중개사 정보표시제(FACE ON)'를 도입했다. 동대문구 내 932개 공인중개사무소 중 400여곳이 참여했다. 개업공인중개사 정보표시제는 중개사무소의 등록 정보를 부동산 외관의 유리벽에 부착해 공개하는 제도다. 대표자와 중개보조원 간의 혼동을 방지하고, 무자격자나 무등록자의 중개 행위를 차단하는 것이 목적이다.
공인중개사협회는 공인중개사 윤리교육부터 시세모니터링 강화 등 여러 자구방안을 시행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무등록 중개와 불법 중개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공인중개사협회와 정부의 협력이 필요하다"며 "현장 단속과 관리가 허술한 만큼, 지역 내 공인중개사들의 정보와 협조를 통한 자발적 감시 체계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이어 "법적 제재를 강화하고 불법 행위에 대한 신속한 수사와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효율적으로 불법 중개를 막기 위해서는 협회가 지도점검 권한을 부여받은 법정단체로 지정돼야 한다는 게 공인중개사협회의 입장이다. 다만 협회의 법정단체 지정을 두고는 공인중개사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엇갈린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협회 권한이 강화되면) 사실상 공인중개사 생사여탈권이 주어지는 것"이라며 "개별 중개업자들의 시장 교란행위를 막으려다가 자칫 더 큰 시장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불법 피해를 막기 위한 '체크리스트' 따져봐야
집을 사기 전에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몇 가지 감별법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우선 계약 전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방문해 등록증을 확인하고, 국토교통부의 공인중개사 자격증명서 조회 시스템을 이용해 중개사 자격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중개보수가 법정 한도를 초과하지 않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주택 임대차 시 법정 수수료는 매매나 전세 금액에 따라 요율이 정해져 있으며, 이를 넘는 요구는 불법이다. 또 공인중개사 사무실 외부나 간판에 '중개'라는 글자가 없다면 정상적인 등록 중개사무소가 아니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이민하 기자 minhari@mt.co.kr 김평화 기자 peac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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