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와 軍 반대 뚫고 탄생했다, 아이언돔 개발 뒤엔 ‘강철 장군’
적 미사일 무용지물 만든 이스라엘 아이언돔 개발 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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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불붙은 ‘이스라엘 대(對) 하마스·헤즈볼라·후티·이란’ 전쟁은 ‘휴전’ 상태인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은 중동(또는 서아시아) 지역에서 사실상 유일한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서 한국과 공유하는 가치가 많습니다.
적대국으로 둘러싸인 지정학적 환경, 건국하자마자 전쟁을 치르고 여전히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한 처지, 나라 잃은 서러움이 뭐고 내 나라 조국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이 나라를 왜 지켜야 하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역사적 서사를 지녔다는 점도 한국과 이스라엘의 공통분모입니다.
현대 전쟁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무기 중 하나는 미사일입니다. 북한의 도발과 위협 수단도 최근 오물 풍선이 새롭게 등장했지만 주된 것은 미사일입니다.
제가 국방부 출입을 하던 2022년의 경우 북한은 새해 벽두부터 극초음속 미사일을 쏴 한반도의 긴장감을 끌어올렸습니다. 이들은 그해 12월 23일 대남 타격용 단거리탄도미사일(SRBM)까지 1년간 총 40회에 걸쳐 65발의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한 달 평균 5.4발을 쏜 것입니다. 연말에 집중됐는데, 거의 이틀에 한 번꼴 도발이었습니다.
중동의 하늘에서도 미사일이 정신없이 오갑니다. 이스라엘은 수십년 전부터 적의 소형 로켓 미사일부터 탄도 및 순항 미사일 공격에 노출돼 곤욕을 치렀습니다. 이스라엘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무기와 기술이 이란·시리아에 전수되는 정황을 포착하고 이를 차단하고자 북한과 협상을 시도한 적도 있습니다. 그만큼 절박했던 것이죠.
적의 미사일에 휘둘리다 자신감을 갖게 된 건 2014년 가자(Gaza) 전쟁 때입니다. 자체 개발한 단거리 미사일 방어시스템 아이언돔(Iron Dome)을 실전 배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쟁을 치르게 됐는데, 여기서 하마스의 미사일 공격을 거의 완벽하게 막아내 그 실효성을 입증했기 때문입니다.
◇태어나지 못할 뻔한 무기
그런데 이렇게 국민의 일상을 지켜주는 이른바 ‘강철 지붕’ 아이언돔은 많은 반대를 뚫고 간신히 탄생한 무기입니다. 개발비가 너무 비싸다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그럴 돈과 시간이 있으면 딴 데 투자하고, 필요한 무기는 손쉽게 미국산을 사들이면 안 되느냐는 꽤나 합리적인 비판이 빗발쳤습니다.
내부적 여론도 거셌지만, 최우방 미국까지도 노골적으로 ‘그러지마, 그냥 우리 거 써’ ‘우리가 지켜줄게’라며 포기시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노(No)”라며 “안 돼”를 외칠 때 “아니야, 우린 할 수 있어, 해야만 해”라며 “예스, 위 캔(Yes, We can)” 정신을 잃지 않고 행동으로 옮긴 군 장교 한 명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공군의 다니엘 골드 준장이었습니다. 아이언돔 개발 비사는 그가 국방부 조사개발국 국장으로 발령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발칙한 무기 개발 계획
2004년 나라 안팎이 흉흉할 때 골드는 국방부 조사개발국장으로 임명됐습니다. 2000년 캠프 데이비드 협상 실패, 2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 대봉기)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긴장감이 4년이 지나서도 고조된 상황이었습니다. 하마스의 미사일 공격, 자살 폭탄 테러는 계속됐습니다.
툭하면 날아오는 미사일에 시민의 일상은 무너졌습니다. 골드는 당장 필요한 무기가 있다면 바로 미사일방어시스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부모는 헝가리에서 나치 독일에 학살될 뻔하다가 이스라엘로 이주한 홀로코스트 생존자였습니다. 누구보다 ‘나라의 소중함’을 잘 알았습니다.
그는 사무실에 틀어박혀 단거리미사일방어시스템 개발계획안을 짰습니다. 아이언돔의 청사진을 그린 것입니다. 골드는 테크니온 공과대 출신이었습니다. 2005년 3월 그는 이스라엘 방산업체 라파엘의 최고책임자 일란 비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비란, 단거리 미사일방어시스템을 같이 만듭시다. 계획안은 짜놓았습니다. 다음 단계는 라파엘이 맡아주십시오. 초기 개발 자금으로 우리 쪽에서 500~600만 달러를 대겠습니다.”
비란은 당황했습니다. 무기 개발 제안을 조사개발국장으로부터 직접 받는 건 낯설었습니다. 국방부 장관과 총리 결재가 필요한 사안이었습니다. 골드는 정해진 결제 라인을 건너뛰고 방산업체에 개별 접촉했던 것입니다.
골드 준장은 비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알다시피 국방부 내 누구도 미사일방어시스템을 자체 개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든다면서 다들 미국 걸 수입해 쓰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합니다. 결제와 검토를 다 받다 보면 될 것도 안 됩니다. 일단 일을 진행하면서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어요.”
비란은 조용히 라파엘 핵심 기술자들을 불렀습니다. 기술자들은 의욕을 보였습니다. 비란은 골드와 ‘공범’이 되기로 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 5개월이 지난 2006년 8월, 골드는 국방부 장관에게 단거리 미사일방어시스템의 개발 보고를 했습니다. 7월 14일에 발발한 레바논전쟁이 8월 14일에 끝난 직후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로켓 공격에 44명이 사망하는 피해를 당하였습니다.
로켓 공격을 막을 대책이 시급하다는 여론이 확산했습니다. 골드는 프로젝트의 가치를 인정받을 기회가 찾아왔다고 봤던 것입니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 아미르 페레츠인 점도 행운이었습니다. 페레츠는 가자지구 바로 옆 도시 스데롯 출신이었습니다. 스데롯은 하마스의 로켓 공격을 많이 받는 곳입니다.
페레츠는 골드의 보고를 받고는 “당장 총리에게 보고해 최종 승인을 받아내자”고 했습니다. 골드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계획안을 짜놓고 퇴짜를 맞을까 봐 상관에게 보고할 엄두도 못 내고, 규정 위반 소지가 있는 걸 알면서도 라파엘과 비공식적으로 추진했던 건을 장관으로부터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총리를 설득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너무 비싸다, 개발 오래 걸린다, 그냥 미국산 후딱 들여오자”
얼마 뒤 총리와 군 관계자, 무기전문가들을 상대로 개발안에 대해 발표하는 기회가 골드에게 찾아왔습니다. 부푼 기대감으로 회의장에 들어서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설명했습니다. “완성만 되면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로켓 미사일 걱정은 안 해도 될 겁니다.”
하지만 회의장 분위기는 싸늘했습니다. 발표가 끝나자 곳곳에서 한숨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매서운 평가와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개발비가 너무 비쌉니다”, “완성하는 데 10년 넘게 걸릴지도 모릅니다”, “미국산 무기를 들여오면 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고, 비용도 덜 들지 않습니까?”, “우리가 굳이 자체 개발을 해야 하는 이유가 뭔가요?”
국방부 장관인 페레츠가 군 전문가들을 따로 불러 달래도 보고, 다시 생각해줄 것도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페레츠의 말은 잘 먹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스데롯 시장을 역임한 노동운동가 출신의 정치인이었습니다. 군사 분야에 대한 경험이 부족해 군 내부에서 지지도가 낮았습니다.
골드의 열정 넘치는 발표와 페레츠 장관의 적극적인 지지에도 개발계획은 총리의 결재 라인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사실상 개발을 그만두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골드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석 달 뒤인 11월 라파엘에 연락해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런 지시를 할 권한은 그에게 없었습니다. 라파엘도 이를 따를 이유도 필요도 없었습니다. 사실 위험했습니다. 하지만 라파엘도 방어망 구축의 필요성을 절감했기에 골드의 뜻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페레츠도 골드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했습니다. 페레츠는 2007년 초에 국방부의 재정을 털어 1000만 달러의 개발비를 지원했습니다. 개발이 간신히 유지될 정도의 자금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페레츠는 사절단을 미국에 급파했습니다. 이스라엘과 더없이 돈독한 부시 대통령 측에 접촉해 개발비 지원을 따낼 요량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무기 개발 마음에 들지 않은 미국
현실은 예상과 달랐습니다. 미국은 이스라엘 사절단을 찬밥 취급했습니다. 환영은커녕 지극히 의례적인 수준의 말만 툭툭 던졌다고 합니다.
다만 CIA 출신의 미 국방부 차관보 메리 베스 롱은 조금 달랐습니다. 그는 CIA 근무 시절 중동 지역을 누볐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펜타곤 전문가들을 이스라엘에 보내 골드 팀과 라파엘의 성과물을 살펴보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미 전문가들은 롱에게 부정적인 보고를 올렸습니다. “개발 수준이 형편없었습니다. 개발비를 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 후 펜타곤은 이스라엘에 불칸 팰렁스(Vulcan Phalanx) 시스템의 도입을 권유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팰렁스를 이라크에 실전 배치하는 중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도 이를 배치하는 게 여러모로 합리적이었습니다.
아이언돔 개발 이후 이뤄진 언론 인터뷰를 보면, 골드와 페레츠는 ‘개발은 그만두고 그냥 우리 것 쓰라’는 식의 미측 태도와 반응에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아무리 가까운 최우방 사이인 미국과 이스라엘 사이에서도 각자의 국익을 놓고는 입장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하던 미국도 “와우(Wow)”하며 “예스(Yes)”로 돌아섰다
그 사이 국방부 장관이 페레츠에서 에후드 바라크로 바뀌었습니다. 바라크는 1999~2001년에 총리를 역임한 거물 정치인이었습니다. 열일곱이던 1959년 입대해 아랍 나라들과의 전쟁에서 매번 공을 세우고 육군참모총장까지 역임한 군 경력 35년의 영웅이기도 했습니다. 정치권은 물론 군에서도 영향력이 셌습니다.
바라크는 미사일방어시스템 개발을 지지했습니다. 그의 설득으로 올메르트 총리는 2007년 말 미사일방어시스템 개발을 국가 프로젝트로 격상시키고 전면 지원해주기로 결정했습니다. 우선으로 2000만 달러가 개발비로 추가됐습니다.
골드의 개발팀에 커다란 돛이 달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골드의 프로젝트가 무산되지 않도록 페레츠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줬다면, 바라크는 마지막으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해준 셈입니다.
2008년 한 해 골드는 팀원과 혼신의 힘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올스타팀’이라고 불렀습니다. 방산업체를 퇴직한 지 한참된 할아버지 기술자부터 아직 풋풋한 청년 기술자까지 팀원은 다양했습니다. 순전히 능력과 열정만으로 선발된 이들이었습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경력이 화려하든 어떻든 상관없이 팀원들은 격식 따지지 않고 자유롭게 개발에 열중했습니다.
아이언돔이란 이름도 이 무렵 지어졌습니다. 대령 계급의 팀원이 아내와 함께 생각해냈다고 합니다. 그 팀원은 처음에 ‘안티 카삼(Anti-Qassam)’으로 하려고 했습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로켓 이름이 ‘카삼(Qassam)’이기 때문에 이를 막는 시스템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만약 하마스가 카쌈 말고 새로운 이름의 로켓을 개발하면 어떡하죠?”라며 그의 아내가 반대했다고 합니다.
아내는 ‘골드돔’을 제안했고 남편은 황금 이미지와 군은 어울리지 않고 자칫 너무 비싼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의견을 냈습니다. 이에 부부가 합의를 봐 ‘아이언돔(강철 지붕)’으로 결정했습니다.
대령 부부의 ‘작품’은 그대로 최종 승인을 받았습니다. 아이언돔이 쏘는 요격 미사일의 이름인 ‘타미르(Tamir)’도 대령 부인의 아이디어라고 합니다. 히브리어로 ‘요격 미사일’이라는 뜻인 ‘틸 메야렛(Til Meyaret)’의 앞글자를 따서 ‘타미르’라고 지었습니다.
아이언돔의 초기 모델은 2009년 완성됐습니다. 첫 요격 시험에서 합격점을 받았습니다. 그해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아이언돔 개발은 더욱 탄력을 받았습니다. 오바마는 대선 후보이던 2008년 스데롯을 방문해 아이언돔의 개발을 돕겠다고 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바마는 실제로 백악관에 입성하고 나서 이 약속을 지켰습니다. 2009년 9월, 펜타곤 사절단을 이스라엘에 보내 아이언돔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오바마의 사절단은 아이언돔이 불칸 팰렁스보다 뛰어나다는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그 뒤 오바마는 아이언돔 개발비로 약 2억 달러를 지원하는 안에 사인했습니다.
돈 이상의 의미를 지닌 사인이었습니다. 미국의 자세가 180도 달라졌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아이언돔 개발을 중도 포기했더라면 나중에 오바마가 도와주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뚝심 있게 개발 실무자부터 국가 최고통수권자까지 한 몸이 돼 프로젝트를 유지하고 실력을 입증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강철의 의지로 태어난 강철지붕
2011년 3월, 드디어 아이언돔이 최종 완성돼 실전 배치됐습니다. 신고식을 치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이언돔은 그해 4월 소규모 도발이 발생했을 때 처음으로 하마스 로켓을 정확히 격추했습니다. 골드는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면서 전역했습니다.
그리고 3년 뒤인 2014년 아이언돔은 가자전쟁에서 요격률 90%를 기록하며 그 위력을 전 세계적으로 선보였습니다. 골드는 국민적 영웅이 됐습니다.
가자전쟁 당시 골드는 자신이 탄생시킨 아이언돔 덕분에 로켓 공격받을 걱정 없이 편안한 옷차림으로 텔아비브 시내 카페에 들어가 시원한 레몬민트 음료를 마셨다고 합니다.
“아이언돔 개발자 아니세요? 사진 한 장 같이 찍어요!”라며 몰려오는 사람들을 맞이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선제공격으로 개시돼 1년 넘게 이어지는 헤즈볼라, 이란, 후티반군과의 전쟁에서도 아이언돔은 높은 명중률로 강철 지붕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감사원 감사받은 ‘영웅’
골드는 국가 안보에 큰 기여를 하는 ‘영웅’이 됐지만, 개발 초기 절차를 어긴 것이 문제 돼 감사원의 조사를 받는 등 남모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다행히 총리까지 나서 골드의 ‘업적’을 지지하고 변호해 최종적으로 감사원 징계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저 불필요한 행정 절차를 생략했을 뿐입니다. 일을 해내려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흔히 이스라엘군은 비격식적이고 자유분방하며 유연한 조직이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아이언돔 개발도 만장일치로 일사천리로 이뤄졌으리라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군인들은 상관 앞에서도 다리를 꼬고 앉고 대화도 친구 대하듯 편하게 합니다. 문서 결재 단계를 최소화하고 불필요한 절차를 피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도 다른 나라 군과 마찬가지로 조직 문화와 관료주의는 엄연히 존재합니다.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운 조직은 아마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튀는 아이디어를 내도 쉽게 수용되지 않습니다. 허가를 받으려면 보고를 거쳐야 하고 자신을 견제하는 다른 인사들의 날 선 비판과 방해를 견뎌내야 합니다. 동시에 장관 등 정책 결정권자를 어떻게든 설득하는 등 일종의 로비 작업도 해야 합니다.
신선한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은 어느 조직에나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인정과 지원을 받지 못해 뜻을 접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전차(탱크)의 아버지’ 타리크 장군과 마찬가지로 골드는 환경이 어떻든 주위 사람이 뭐라 하든 흔들리지 않고 확신을 갖고 움직였습니다. 그 확신이 국익에 부합한다면 분명히 빛을 볼 날이 올 것이라 믿었습니다.
골드는 2012년 아이언돔 개발로 공로를 인정받아 국방부 장관상을 받았습니다.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명을 구하고 싶었습니다. 로켓 공격에 무고한 시민이 죽어가는 모습을 봤습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에 온갖 기술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든 활용해 생명을 구해야 한다. 방법을 찾아내자.’
이렇게 몇번을 되뇌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결국 해냈습니다.”
◇아이언돔이 한국에 말하는 것
아이언돔은 결코 완벽한 방공 무기는 아닙니다. 10·7 공격 때도 로켓과 미사일이 수천발 일제히 쏟아지며 물량 공세를 펴자 이스라엘은 속수무책에 가깝게 당했습니다. 어쩌면 미사일 공방에 있어 완벽한 방어라는 건 불가능할지 모릅니다.
아이언돔을 한국에 들여오자는 말도 수년 전 일시적으로 있었지만, 쏙 들어갔습니다. 아이언돔은 이스라엘 안보 환경에 ‘맞춤형’으로 개발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천궁(단거리), L-SAM(중거리)과 같은 자체 미사일방어무기를 개발한 것도 지형, 적의 무기 체계 등 여러 면에서 처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한국보다 탱크도 먼저 개발하는 등 앞선 것도 많지만, 전투기 개발은 시도했다가 실패했습니다. 한국이 4.5세대 전투기 KF-21 보라매 등의 개발에 성공하고, K-9자주포, K2전차 흑표 등 각종 첨단 무기를 폴란드 등 유럽과 호주 같은 서방국에 수출하며 쾌거를 이룬 것을 생각해보면, 한국이 이스라엘보다 나은 점도 많습니다.
다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의 갈등으로 욕도 많이 먹고 너무 하다 싶은 짓을 할 때도 잦지만 ‘자주국방’ 의 표본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분명히 우리가 눈여겨볼 대상인 건 분명한 듯합니다. 제가 이번 아이언돔 개발 비사 등을 담은 ‘강한 이스라엘 군대의 비밀(메디치 刊)’이란 책을 펴냈던 것도 그런 취지였습니다.
둘 다 1948년에 건국한 동갑내기로 처한 환경 등 닮은 구석도 많지만 사실 따져보면 다른 건 더 많고 예루살렘이나 텔아비브에 가보면 거리 모습부터 먹는 것까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단아 같은, 양치기 소년 다윗 같은 나라가 최강국 미국을 요리조리 활용하며 이들의 힘을 국익으로 연결하고 영토 면적만 80배 가깝게 크고 인구도 10배 많은 골리앗 같은 적국과 맞서는 이들의 정신력과 군사·외교적 전략은 우리와 직결시킬 순 없겠지만, 여러 측면에서 우리 상황에 대입해볼 만한 참고서와 자극제가 됩니다. 아이언돔의 개발 과정도 그런 여러 사례 중의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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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예루살렘에서 1980년대 이스라엘 남부 사막지대에 핵무기 시설이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던 핵시설 내부자(엔지니어) 모르데카이 베누누를 한국 언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터뷰했습니다. (아래 사진 참고)
생생한 이스라엘의 핵개발 비사와 폭로 동기, 그리고 끝내 모사드 요원들에 체포되어 반역죄를 선고받고 독방에서만 11년, 총 18년간 옥살이하고 ‘이동에 대한 제한’을 조건으로 가석방된 구구절절한 사연을 듣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레터에 잘 담을 테니 기대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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