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서 '레바논파병론' 고개들었지만 정권은 손사래…득보다 실?
이스라엘 매체 "이란 본토 공격 빌미 피할듯"…전문가 "전략적 인내"
(이스탄불=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이란 내에서 이스라엘군이 지상전을 벌이는 레바논에 군대를 보내 헤즈볼라를 도와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작년 10월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한 이래로 이스라엘과 싸우는 하마스와 헤즈볼라 등 중동의 '저항의 축' 대리세력을 계속 지원한 이란 정권이 파병론에 대해서는 득보다 실이 크다고 판단한 듯 분명히 선을 긋는 모양새여서 주목된다.
12일(현지시간)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지난달 27일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외곽의 다히예 지역을 표적 공습해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가 살해된 이후 이란 안에서는 헤즈볼라에 병력을 지원하자는 주장이 이어졌다.
이란 관리인 모하마드 하산 악타리는 지난달 28일 미국 NBC 방송에 "우리는 1981년에 그랬듯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해 레바논에 군대를 파병할 수 있다"며 "레바논과 골란고원에 군대를 배치하는 것에 대한 승인이 분명히 내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란 대통령 직속기관 '팔레스타인 인민을 위한 이슬람혁명 지원위원회'를 이끄는 악타리는 1986∼1997년 시리아 주재 이란 대사를 지내며 헤즈볼라 조직 육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란혁명수비대(IRGC)에 연계된 예비 군사조직 바시즈 민병대는 레바논에 파견될 시민들을 등록한다는 목적으로 소셜미디어에 새 계정을 개설했다.
IRGC 창설 과정에 관여하고 첫 수장을 지냈던 모흐센 라피그두스트는 이달 3일 레바논은 물론 이스라엘이 점령 중인 골란고원에 이란군을 배치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이스라엘군이 이란의 대리세력인 헤즈볼라를 겨눠 공세의 고삐를 죄면서 이란이 내 위기감이 고조된 것을 반영하는 모습이다.
이란은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때 저항조직 헤즈볼라를 창설시킨 이후 군사·재정적 지원을 이어오며 공을 들였고, 헤즈볼라는 이후 레바논 남부를 거점으로 이스라엘과 끊임없이 충돌하며 견제 역할을 톡톡히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란 당국은 파병설을 둘러싼 관측을 발 빠르게 진화하고 나섰다.
지난달 30일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파병 가능성을 두고 "어떤 요청도 없었다"며 "추가 병력이나 의용군(volunteer force)을 보낼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레바논은 시오니스트 정권(이스라엘)을 물리칠 능력이 있다"며 "저항세력은 스스로를 지킬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일에는 모하마드 레자 나크디 IRGC 부사령관이 나서 "저항전선의 지휘관들이 병력 부족을 보고하지 않았다"며 레바논에 군을 보낼 의사가 없다고 못 박았다.
이스라엘 일간 예루살렘포스트는 이란이 지난 수십년간 이스라엘 공격에 대리세력을 내세워왔으며, 최근에는 이스라엘을 직접 폭격하는 등 일부 안보전략에 변화가 감지되지만 직접 전투원을 보내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란군이 레바논에 파병되면 이스라엘이 이를 빌미로 이란 영토에 대한 대규모 공격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예루살렘포스트는 "하메네이는 일생의 업적인 핵 프로그램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을 것"이라며 "하메네이는 위험 요인을 신중하게 관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란이 지난 1일 감행한 이스라엘 본토 공습에 대해 이스라엘이 보복에 나서더라도 추후 이란의 대응 역시 절제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동 전문가인 국립외교원 인남식 교수는 "이스라엘은 전략적 측면에서 이란을 전쟁에 끌어들이려 자극하고 있다"며 "전쟁이 확전되면 웃음을 띨 사람은 바로 이란의 원수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라고 짚었다.
인 교수는 "이란은 최고 전략자산인 헤즈볼라가 무력화된 데다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 수단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며 이란이 군사적 대응을 자제하며 국제 여론을 유리하게 끌어들이는 '전략적 인내'를 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d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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