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돌버츠라고 했나, 신들린 투수 교체로 탈락 위기 극복 "2004년 보스턴 우승만큼 기쁘다"
[OSEN=이상학 기자] LA 다저스가 구단 포스트시즌 역대 최장 24이닝 연속 무실점으로 디비전시리즈를 이겼다. 데이브 로버츠(51) 다저스 감독의 투수 운영이 기가 막힐 정도로 완벽했다. 큰 경기에 약해 ‘돌버츠’라는 오명이 붙기도 했던 로버츠 감독이지만 이제는 아니다.
로버츠 감독이 이끄는 다저스는 12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2024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NLDS·5전3선승제) 5차전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2-0으로 꺾었다. 오타니 쇼헤이가 4타수 무안타 3삼진으로 부진했지만 키케 에르난데스, 테오스카 에르난데스의 솔로 홈런 두 방과 투수들의 완벽한 호투로 이겼다.
1차전 승리 후 2~3차전을 내줘 벼랑 끝에 몰렸던 다저스는 4~5차전을 잡고 3승2패로 챔피언십시리즈에 진출했다. 4~5차전 모두 무실점 팀 완봉승으로 샌디에이고 타선을 압도했다. 3차전 3회부터 24이닝 연속 무실점으로 디비전시리즈를 끝냈다.
지면 끝인 4차전에서 로버츠 감독은 과감하게 불펜 데이를 했다. 선발투수로 예상된 신인 랜던 낵 대신 라이언 브레이저를 오프너로 썼다. 브레이저(1⅓이닝)를 시작으로 앤서니 반다(⅔이닝), 마이클 코펙(1이닝), 알렉스 베시아(1⅔이닝), 에반 필립스(1⅓이닝), 다니엘 허드슨, 블레이크 트라이넨(1이닝), 낵(1이닝)까지 투수 8명을 쓴 벌떼 야구로 기사회생했다.
마지막 5차전에선 고심 끝에 야마모토 요시노부를 선발 내세웠다. 1차전에서 3이닝 5피안타(1피홈런) 2볼넷 1탈삼진 5실점으로 조기 강판됐던 야마모토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다. 로버츠 감독은 5차전 전날(11일)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야마모토를 선발로 발표하지 않았다. 여차하면 또 불펜 데이를 할 기세였다.
하지만 뒤늦게 5차전 선발로 확정된 야마모토는 5이닝 2피안타 1볼넷 2탈삼진 무실점 승리로 우려를 잠재웠다. 3회 연속 안타를 맞았지만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를 병살타로 처리하며 이닝을 끝냈다. 나머지 이닝은 단 하나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았다. 4~5회 연속 삼자범퇴로 막고 투구수가 63개밖에 되지 않았지만 로버츠 감독은 5회 이닝을 마치고 들어온 야마모토를 덕아웃 앞에서 포옹하며 투수 교체를 알렸다.
한 박자 빠른 투수 교체로 6회부터 불펜을 가동했다. 에반 필립스가 1⅔이닝 3탈삼진 무실점으로 막은 뒤 좌타자 잭슨 메릴 타석이 되자 좌완 알렉스 베시아를 올렸다. 베시아는 메릴을 헛스윙 삼진 처리한 뒤 8회에 올라왔지만 갑작스런 허리 통증으로 워밍업 중 마운드를 내려갔다.
급하게 몸을 풀고 올라온 마이클 코펙이 1이닝 1탈삼진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막고 변수를 차단했다. 9회 마무리로 올라온 블레이크 트라이넨이 삼자범퇴 이닝으로 경기 마침표를 찍었다. 불펜투수 4명이 4이닝 퍼펙트를 합작하며 샌디에이고의 추격 의지를 완전히 꺾었다.
물 흐르는 듯한 투수 운영으로 2경기 연속 팀 완봉승을 이끈 로버츠 감독은 경기 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기분 좋다.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럽다. 단 한 번도 물러서지 않고 싸웠다. 이보다 더 신날 수 없다”며 “야마모토가 분위기를 잘 만들어줬다. 그는 프로에서 많은 성공을 거둔 투수이고, 큰 경기에서도 잘 던졌다. 그가 잘 해낼 거라 믿었다. 여기서 도망치지 않을 거란 걸 알았다. 월드시리즈까지 이어갈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로버츠 감독은 24이닝 연속 무실점에 대해 “선수들이 정말로 잘해줬다. 모든 공을 선수들에게 돌리고 싶다. 어떤 계획이나 각본을 갖고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결국 플레이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다. 야마모토부터 불펜투수들이 우리 모두를 멋지게 보이게끔 해줬다. 시리즈 MVP를 꼽으라면 당연히 우리 불펜이다. 정말 대단한 선수들이다”고 고마움을 나타냈다.
3년 연속 디비전시리즈에서 업셋을 당할 위기였던 로버츠 감독은 “정말 이기고 싶었다. 어느 때보다 큰 스트레스와 중압감을 느꼈다. 오늘 승리는 내가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선수로 뛰던 2004년 뉴욕 양키스 이겼을 때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로버츠 감독은 2004년 보스턴 선수 시절 ‘더 스틸’로 유명하다. 양키스와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보스턴은 1~3차전 패배로 벼랑 끝에 몰렸고, 4차전도 3-4로 뒤진 상황에서 9회말을 맞이했다. 선두타자 케빈 밀라가 볼넷으로 나간 뒤 1루 대주자로 투입된 로버츠 감독은 양키스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의 3차례 견제구를 뚫고 2루 도루에 성공했다. 이어 빌 뮬러의 중전 안타 때 로버츠 감독이 홈을 파고들어 동점 득점을 올렸고, 연장 접전 끝에 보스턴이 끝내기 역전승을 거뒀다. 이날 승리로 7차전까지 4연승을 달리며 양키스를 꺾은 보스턴은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해냈다. 86년 묵었던 보스턴 밤비노의 저주가 풀렸다. 그 감격의 순간을 떠올릴 만큼 이번 시리즈 승리는 로버츠 감독에게 큰 기쁨과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월드시리즈 우승까지는 2개 관문이 더 남아있다. 14일부터 뉴욕 메츠와 7전4선승제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를 치러야 한다. 로버츠 감독은 “우리는 메츠를 상대로 4승을 거둘 준비가 돼 있다. 26명의 선수들과 함께 메츠를 이기는 것만 생각하겠다”고 월드시리즈 진출 의지를 드러냈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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