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노벨상 레벨” 밤새 찍고 또 찍는다, 인쇄소도 행복한 비명
“주말 근무라 화 나냐고요? 전혀요. 오랜만에 일이 많아서 좋지요. 한국인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와서 자부심이 넘칩니다.”
12일 오후 경기 파주출판단지 인쇄업체 ‘영신사’ 공장. 각종 기계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11일 오후 출판사 ‘문학동네’로부터 ‘한강 책 증쇄가 급하다’는 연락을 받고 기계를 쉼 없이 가동 중이다. 영신사는 이날 저녁부터 한강의 ‘희랍어 시간’ ‘흰’ 표지를 인쇄했고, 12일 새벽 2~3시쯤 본문 인쇄를 시작했다. 스무명 넘는 직원들이 주말을 반납하고 특근에 나섰다.
기자가 공장을 찾은 오후 3시쯤에는 책 3만5000부에 해당하는 본문 인쇄 작업을 마치고, 제본 작업 중 하나인 접지 공정이 한창이었다. 본문이 찍힌 종이를 기계에 넣으면 알아서 책 모양으로 접어준다. ‘다다다다…’ 소리가 귀를 때렸다. 9대의 기계가 일사불란하게 접은 종이를 뱉어냈다. 28년 경력 인쇄 베테랑인 김경연(51) 영신사 인쇄파트 부장은 “간만에 정신없이 바쁘다. 노벨상이라 확실히 레벨이 다르다”며 웃었다.
10일 저녁 8시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소식이 전해지자 다음날 온·오프라인 서점은 난리가 났다. ‘오픈 런’은 물론, 책이 불티나게 팔리며 재고에 씨가 말랐다. 서점 창고에서 절판된 구판을 발굴해 판매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자 한강 책을 낸 출판사들이 부랴부랴 증쇄에 나섰다.
이날 오후 파주출판단지 인근의 ‘천광인쇄소’ 1공장. 한강의 가장 최근 장편소설인 ‘작별하지 않는다’ 인쇄 및 제본 작업으로 분주했다. 잉크와 화학 약품 냄새가 그득했다. 사방에 인쇄된 ‘작별하지 않는다’ 묶음 십수여개가 쌓여 있었다. 기자의 키만 했다.
천광인쇄소는 11일 오후 1시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두 대의 인쇄기가 굉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이 중 한 대는 13일까지 24시간 가동할 예정이다. 30년 경력의 인쇄소 직원 전대근(64)씨는 인쇄된 종이를 몇 분에 한 번씩 꺼내보며 상태를 확인했다. “날파리라도 들어가면 까만 점이 찍혀서 계속 인쇄되거든요. 급하게 작업하는 만큼 꼼꼼히 잘 봐야 합니다.”
천광인쇄소 관계자는 “급한 대로 2만부 먼저 찍어 (물류센터로) 보내고, 3만부, 2만5000부 순으로 더 보낼 예정”이라고 했다. 주말 동안 이 공장에서만 약 7만5000부를 찍는 것이다. 문학동네에 따르면, ‘작별하지 않는다’는 총 15만부, ‘흰’은 총 6만부 증쇄가 결정됐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도 숨 가쁘게 인쇄되고 있다. 출판사 ‘창비’ 관계자는 “주말 동안 인쇄소 6곳이 돌아가고 있고, 되는대로 10만부를 먼저 풀 예정”이라고 했다. ‘문학과지성사’도 “한강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비롯한 6종 도서를 주말 내내 찍는다”고 전했다. 수십여만부가 주말 사이에 인쇄돼 한강 작품을 애타게 찾는 독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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