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인터뷰] 권소현 "찬란했던 인생 1회차 찍고 바닥부터 2회차…버틸 힘 얻어요"

조연경 기자 2024. 10. 1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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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BIFF) 세번째 출석 배우 권소현 인터뷰
26회 '그 겨울, 나는', 28회 '딜리버리', 29회 '새벽의 Tango' 첫 선
인기 걸그룹 포미닛 해체 후 배우로 '제2의 인생' 시작
배낭 메고 영화보는 샛별 씨네필 "연기 짜증나게 잘하고 싶어"
〈사진=매니지먼트 오름〉

인생 1회차 '포미닛 권소현'을 마무리 짓고, 2회차 '배우 권소현'으로 후회 없을 만큼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는 권소현이다. 이제는 팀 활동보다 홀로서기에 나선 시간이 더 길어졌지만, 쉽게 떼어지지 않고, 떼어낼 수 없는 과거의 찬란함이라는 것을 알기에 권소현은 조금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묵묵히, 그리고 열심히 자신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이에 대부분의 연기돌이 브라운관을 메인 무대로 친근하게 접근하는 반면, 권소현은 숱한 오디션 경험 끝 스크린으로 방향성을 잡았고 스스로 독립영화 문을 두드렸다. 그 결과는 독립영화의 성지 부산국제영화제 3회 초청. 뿌듯하지 않을 수 없는 결과물이다.

첫 독립영화 주연작 '그 겨울, 나는'으로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첫 발을 내딛었던 권소현은 '딜리버리'로 28회, '새벽의 Tango'로 29회까지 출석 도장을 꾹 찍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첫 회와 달리 이제는 제법 영화제를 즐기는 샛별 씨네필이 된 권소현은 개막식 다음 날부터 배낭 메고 배지 찬 모습으로 극장 곳곳을 활보하며 영화를 관람하기도 했다고. "5회 정도 참석하게 되면 개막이나 폐막 사회를 맡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자 권소현은 "생각만 해도 행복하지만 부국제는 어떤 방식으로든 매년 오고 싶은 마음이다. 저를 잊지만 않아 주셔도 좋겠다"며 여지 없는 겸손함을 표해 그녀의 성장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새벽의 Tango'는 친구에게 사기 당한 뒤 숙식 제공 공장에 숨어들 듯 들어와 일자리를 잡은, 매사가 분명하고 직설적인 지원(이연), 지원의 룸메이트이자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스스로도 언제나 낙관적인 주희(권소현),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해 조장을 달게 된 꽤나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한별(박한솔)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이다. 어느 날 공장 동료에게 사고가 발생하고, 해당 사건에 연루된 세 사람의 극과 극 반응과 해법이 인간과 인간의 관계성을 들여다 보게 만든다. 권소현은 주희로 분해 천진난만하면서도 애틋한 얼굴로 심장을 울린다.

'현실에 있을 법한 사람일까'라는 의구심에서 시작해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주희는 어느 덧 권소현에게 넓고 깊은, 그리고 단단한 친구가 됐다. 실제 자신과 충돌 되는 지점이 뚜렷하게 보였지만 그 안에서 '단단함'이라는 공통점을 찾아냈다. 2005년 공식 데뷔해 19년 간 연예계에 몸 담은 권소현은 여전히 어린 나이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벅찬 관계의 중심에서 흔들렸고, 상처 받았고, 성장하면서 단단해졌다. 배우 권소현으로 인식되고자 한 건 비단 과거를 지우고 싶어서가 아니다. 권소현일 때 권소현일 수 있는, 객관화 된 나를 받아들였고 스스로 인생의 변화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변곡점을 찍은 배우의 연기에 깊이가 없을 리 없다. '배우 권소현'의 행보를 지켜보고 싶은 이유다.

배우 권소현이 2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부산=김현우 엔터뉴스팀 기자 kim.hyunwoo3@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배우 권소현이 2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부산=김현우 엔터뉴스팀 기자 kim.hyunwoo3@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배우 권소현이 2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부산=김현우 엔터뉴스팀 기자 kim.hyunwoo3@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배우 권소현이 2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해 포토월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부산=박세완 엔터뉴스팀 기자 park.sewan@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배우 권소현이 2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해 포토월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부산=박세완 엔터뉴스팀 기자 park.sewan@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올해까지 지난 4년 간 부국제에 세 번이나 참석하게 됐죠. 첫해와 올해,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은데요.
"4년 전에 처음 왔을 땐 '부국제에 간다, 신기하다' 외에는 아예 정보가 없었어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마냥 떨리고. 그래도 세 번이나 왔다고 올해는 조금 익숙해진 부분들이 있어서 너무 재미있게 즐기고 있어요. 분위기도 더 북적북적해진 것 같아 좋고요."

-레드카펫에서 감독님을 안내하는 모습도 꽤 여유롭더라고요.
"감독님은 단편영화로 부국제에 한 번 참석 하셨었는데 레드카펫은 처음 걸어본다 하시더라고요. 사진 기자님들이 아무래도 제 얼굴을 아니까 '소현 씨, 여기 봐 주세요' 하는데 감독님은 같이 찍히면 안 되는 줄 알고 가만히 계셨다고 해요. 먼저 가시려는 걸 제가 붙잡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합성 짤도 많이 생겼어요. 하하. 시작부터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생긴 것 같아 저희끼리 신나게 이야기 하기도 했어요."

-개막식부터 참석해 꽤 길게 부산에 머무르는 것으로 알아요. 어떻게 보내고 있나요.
"열심히 영화 봤어요. 제가 영화제에 오면 영화를 엄청 많이 챙겨 보거든요. 올해는 다른 일정들이 있어서 이전보다 오히려 적게 본 편이에요. 지금까지 네 편 정도 봤는데, 일단 같은 섹션에 초청 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작품 위주로 관람 했어요. 아무래도 경쟁작이니까.(웃음) 처음 부국제에 들고 왔던 '그 겨울, 나는'을 비롯해 '딜리버리' '새벽의 Tango'까지 주제나 이야기가 꽤 묵직한 영화들이라 반대로 환기되는 작품들을 찾아 보면 재미있고 신선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인서트' '키케가 홈런을 칠거야' 다 재미있게 봤어요."

-영화는 원래 좋아했나요.

"솔직히 부국제에 오게 되면서 더 좋아졌어요. 감사하게도 초청을 해주셔서 왔는데 너무 모르고 있으면 대화를 할 수 없겠더라고요. 영화제에 오면 오랜 시간 활동한 감독님, 영화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잖아요. 그 역사에 한 발자국씩 다가가고 있는 과정에서 스스로 부족한 점을 느끼기도 했어요. 그래서 가방 딱 메고, 배지 차고 비전 섹션부터 차근차근 관람하자 싶었죠. 실제고 많은 공부가 되기도 해요. 어떤 행사에 가면 할 수 있는 것도 즐기지 못하고 누리지 못할 때가 많은데 부국제 만큼은 온전히 시간을 투자해 보려고 해요. 커피 쿠폰도 야무지게 써봤어요. 하하."

〈사진=매니지먼트 오름〉

-어느덧 부국제가 애정하는 배우이자 독립영화 필모그래피가 빛나는 배우가 됐어요. 독립영화는 어떻게 관심 갖게 됐나요.
"그렇게 이미지 메이킹 돼서!(웃음) 너무 좋고 행복해요. 세 번이나 초청 받은 건 진짜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앞으로 못 오면 어떡하지' 걱정도 되는데 열심히 하면 또 올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독립영화는 사실 제가 (포미닛) 팀 활동이 끝나고 오디션을 굉장히 많이 봤어요.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들은 다 오디션을 통해 합류하게 된 작품들이에요. 타율로 따졌을 땐 드라마보다 영화에서 2차, 최종까지 가는 경우가 많았고 '내가 가진 성향이 영화 쪽에 조금 더 맞나 보다' 생각하게 됐죠. '그러면 독립부터 시작해 봐야겠다' 자연스럽게 마음 먹고 이렇게 저렇게 알아봤는데 주변에서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작품 참여 추천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실제로 오디션을 찾아 보면서 첫 영화를 3차 오디션까지 보고 출연하게 됐어요. KAFA에서 좋게 봐주신 덕분에 계속 인연이 이어질 수 있었고요. 오디션 진행 소식을 공유 받으면서 한 작품, 한 작품 소중하게 하고 있습니다.

'새벽의 Tango'도 원래 제 역할에 내정 돼 있는 배우가 따로 있었던 것으로 알아요. 근데 공석이 되면서 감독님께서 새로운 배우를 찾기 시작했고, 그 상황을 알게 된 제가 먼저 '어떻게든 감독님을 만나 뵙고 싶다'고 해 미팅을 진행하게 됐거든요. 저는 아예 (캐스팅) 선상에 없었다고 해요. KAFA 작품을 이미 했으니 감독님 입장에서는 웬만하면 하지 않았던, 새 얼굴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도 있으셨다고 하고요. 최종적으로는 두 시간 정도 미팅 후에 그 자리에서 바로 '같이 하자 '하셔서 엄청 기뻤던 기억이 나요."

-절대 허투루 자리하지 않는군요. 오디션과 미팅은 어떻게 준비하는 편인가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준비해요. 발췌 대본이나 오디션 대본이 있으면 그 안에서 캐릭터를 분석하려고 노력하고요. 정해져 있는 짧은 시간 안에 뭔가 매력으로 사로잡을 만한 스킬은 아직 부족한 것 같고 '나에 대한 인상이라도 남겨두고 와야겠다'는 마음인 거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미팅은 오디션보다 기회가 더 적거든요. 대본과 캐릭터에 대해 독후감 쓰듯이 써 가서 '이 때는 이런 건가요. 이런 감정인가요. 저는 이 대본을 이렇게 봤어요'라고 저의 궁금증, 생각들을 최대한 다 전달하려고 해요. '잘 준비했다'는 모습을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새벽의 Tango' 주희는 어떤 캐릭터로 봤나요.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언제나 낙관적인 주희는 현실에 있을 법 하면서도 막상 찾기는 힘든 인물이에요.
"처음에는 너무 어려웠어요. '진짜 우리 주변에 있을까?' 현실성이 떨어져 보였고, 실제 저와도 충돌되는 지점들이 있었고요. '얘는 이 감정을 어떻게 생각하길래 이렇게 이해를 해주고 포용해주지? 줏대가 없는 아이인가?' 혼란스럽기도 했어요. 초반에 촬영할 때는 계속 '모르겠어요. 모르겠어요' 했던 것 같아요.(웃음)

그래서 감독님과 엄청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3~4시간 통화는 기본이고 만나서도 끊임없이 논의를 했거든요. 독립영화의 장점 중 하나는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부족한 걸 서로 같이 채워 나가보자'는 목표가 뚜렷해요."

-감독님은 주희를 어떻게 그려냈다고 하던가요.
"제가 여쭤봤어요. '주희는 줏대가 없는 건가요, 그냥 착한 건가요' 저에게는 결핍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 같은 모습도 보여서 '어떤 결핍이 있는 걸까요?' 물음표를 던졌는데, 감독님께서 '아니에요. 주희는 결핍 같은 것 없어요. 주희에게는 모든 게 진짜 사랑이에요. 꼭 결핍이 있어야 사랑할 수 있는 건 아니죠. 긍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일 수 있는 친구예요.'라는 말씀을 딱 해주시더라고요. 그 때 명확하게 이해가 됐어요.

저는 주희를 넓고 깊은 인물로 봤어요. 너무 받아주다 보니까 남들에게는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인물이고요. 주희도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선까지 한다고 하는 것인데, 그 선이 보편적인 상식과는 조금 다른 거죠. 애초에 화도 잘 못 내고. 그렇게 이해하니까 주희와 주희의 진심이 조금씩 더 보이기 시작했고 연기도 풀려 나갔던 것 같아요."

-캐릭터와 충돌 되는 지점들이 있었다고 했는데, 영화를 보면서는 '실제 권소현과 일정 부분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저에게도 거절 잘 못하고 좋게 이야기 하려는 부분은 있어요. 주희 만큼은 절대 아니지만.(웃음) 무엇보다 저는 주희를 점점 더 단단한 사람으로 인식했는데, 그 단단함은 비슷한 것 같아요. 저도 처음 만났을 땐 대부분 '선하다~ 오래 활동했는데도 그렇네?'라는 말을 듣는데, 좀 더 보면 '아, 너 되게 단단하구나' 하더라고요."

〈사진=매니지먼트 오름〉


-이연, 박한솔 배우 등 또래 배우들과의 촬영도 좋은 경험이 됐을 것 같아요.
"너무 좋았어요. 특히 저희 현장에 여성 식구들이 많았거든요. 감독님, PD님, 촬영 감독님, 조명 감독님, 배우들까지. 그래서인지 섬세한 대화를 더 나눌 수 있었어요. '어떻게 딱 찍자' 보다 해당 장면을 봤을 때 '그래서 어떤 식으로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 디테일한 대화를 나눴고 그 과정에서 많이 배웠어요.

이연 배우와도 꼭 한 번 같이 작업해보고 싶었는데 역시 잘하더라고요. 이전 작품들도 거의 다 봤는데 진짜 힘이 있는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한솔 배우와는 겹치는 지인이 있어 촬영 전에 살짝 물어봤는데 좋은 말만 들었어요.(웃음) 실제로도 에너지가 너무 좋아서 같이 있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친구라 좋은 인연이 생겼다고 생각해요. 케미도 잘 맞았고요."

-영화에서는 '탱고'가 아닌 '땅고'라고 발음하죠. 중요한 포인트인데, 그래서 제목도 한글 표기가 아니라 꼭 '새벽의 Tango'로 쓴다고요.
"탱고와 땅고는 발음 차이 만큼 상상 되는 이미지도 살짝 다르잖아요. 탱고가 뭔가 굉장히 정렬적인 느낌이라면, 원조 땅고는 실제로 같이 마주 보고 발 맞춰 있는 것이라고 해요. 부에노스아이레스 분들은 '땅고'라고 한다고 하고요. '새벽의 Tango'는 너무나도 '땅고'가 어울리는 작품이고 감독님께서 담아낸 이미지와 메시지도 명확해 조금 낯선 듯 하지만 땅고를 인식 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소현 씨에게는 율동처럼 느껴졌을 것 같기도 한데, 땅고 연습이 어렵지는 않았나요.
"할만 했어요~ 하하. 오랜 시간 춤을 췄지만 땅고는 다른 분야이기 때문에 스텝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거든요. 근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리고 저도 약간의 선입견으로 '연륜있는 분들이 추는 춤 아닌가' 싶었는데, 젊은 사람이 자신 만의 스텝으로 추면 또 그대로 매력이 있는 스포츠더라고요. '계속 하고 싶어질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요. 오랜만에 춤을 추고 거울을 마주할 수 있는 자체가 좋기도 했고요. 옛날에는 매일 출근 도장 찍던 연습실이었는데.(웃음)"

〈사진=매니지먼트 오름〉


-많은 고민 끝에 완성해낸 캐릭터와 작품은 어떻게 봤나요.
"사실 저는 시나리오를 읽을 때도, 찍을 때도, 이 작품을 좀 무겁게 바라봤거든요. 물론 절대 가벼울 수 없는 작품이지만, 극장에서 관객들과 처음으로 함께 보는데 웃음 포인트들이 생각보다 많아 조금 놀라기는 했어요. '아, 이게 재미있게 받아 들여지는구나' 신선하기도 했고요. 또 주희에 대해 궁금증을 많이 가져 주셔서 감사했어요. 나름 표현한다고 했지만 주희는 현실에 있기 힘든 인물이니까. 관객 분들도 '현실에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인물이지만 있지 않은 인물이라고 생각해 더 관심을 보내 주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남)지현 언니가 고맙게도 첫 상영 때 직접 와줬는데, 응원과 함께 솔직한 피드백을 많이 해줬어요. 재미있었던 표현이 '년년년'이라고. '놈놈놈'을 따서 '좋은 년, 나쁜 년, 이상한 년'이라고 정리해줬는데 그 말이 너무 딱 맞는 거예요. 나중에 개봉하게 되면 어떻게 써먹을지 궁리 중이에요.(웃음)

또 '네가 배우로서 잘 가고 있구나. 네가 부럽다'는 말에는 엄청 감동 받았어요. 언니가 '그 겨울, 나는' 시사회 때도 봐줬고, '딜리버리'는 아직 개봉을 안 해서 못 봤지만 어떤 캐릭터를 연기했는지는 다 알거든요. '다양한 모습이 보기 좋다'고 하는데, 특히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언니가 그렇게 말을 해주니까 더 크게 와 닿았던 것 같아요. 어제도 둘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야기 하다가 잠들었어요.(웃음)"

-'그 겨울, 나는' '딜리버리' '새벽의 Tango'까지 부국제에 초청 받은 세 작품이 사실 모두 만만치는 않은 작품이에요. 캐릭터도 세 인물 모두 완전히 다른데 다르게 어려웠을 것 같고요. 세 작품만 비교하자면 촬영은 어떤 작품이 가장 힘들었나요.
"처음이라 어려웠던 건 아무래도 '그 겨울, 나는'이었어요. 그 때는 '아이돌이 아닌 배우 권소현으로 잘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했던 시기였거든요.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고, 작품에 맞춰 나가는 것이 다 첫 경험이라 조금 더 예민하게 임하기도 했고요. 감독님과 계속 '진짜 같게. 우리는 진짜 같아야 해요'라는 말을 많이 하면서 하나 하나 가치관을 깨나갔죠. 모든 행동과 결정에는 다 이유가 있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걸 알았고 다 같이 하는 '작업'의 힘을 느끼기도 했고요. 환경적으로 제일 힘들었던 건 '그 겨울, 나는'이었는데 그 만큼 엄청 많이 배울 수 있는 첫 단추였어요.

역할적으로 고민이 많았던 건 확실히 '새벽의 Tango' 인 것 같아요. 제가 '그 겨울, 나는' 이후로 모든 것에 접근할 때 '진짜 같음'을 생각하더라고요. 허구를 표현할 수도 있는 건데, '진짜 같게'에 다가가려다 보니까 주희가 더 어렵고 혼란스럽게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해요."

영화 '딜리버리'의 배우 강태우, 권소현, 권소현, 장민준 감독이 4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세완 엔터뉴스팀 기자 park.sewan@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딜리버리'는 올해 개봉을 준비 중이죠. 권소현이 또 다른 권소현과 한 작품에 출연했어요.
"재미있지 않아요? 권소현과 권소현. 너무 좋아요. 소현 언니와 저는 어쩔 수 없이 서로의 일상을 보고 알 수 밖에 없거든요. 포털사이트에 이름을 쳐도, SNS를 봐도 항상 같이 걸려요. 존재는 알지만 거리감은 있었으니까 '내가 좀 더 활동해서 내 걸 더 많이 보고 싶다' 할 수도 있는데, 둘 다 응원만 했더라고요.(웃음) 내적 친근감 때문인지 언니랑 저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친해져서 지금은 '같이 권소현을 알리자!' 의기투합하고 있어요."

-개봉 시기 홍보 활동도 기대가 되네요.
"'김영민 '권소현 권소현' 강태우'가 출연하는 작품이에요. 개인적으로 현장에 있는 것 만으로 정말 정말 정말 행복했고, 지난해 부국제에 오게 됐을 때도 다들 진짜 신나 했어요. 좋은 선배님들과 함께 연기할 수 있어 좋았고, 현장 가는 재미도 쏠쏠했고요. 우리끼리 시너지가 내심 기대돼요.

저는 처음으로 임산부 역할을 맡았는데, 그 때도 이것 저것 많이 찾아봤어요. 당시 나왔던 출산 브이로그는 싹 다 보고, 임신한 지인이 있으면 '커피 한 잔 하자' 하면서 '이 주에는 어때? 이 주에는 어떤데?' 인터뷰도 했고요. 출산 고통을 한 번 경험한 것 같은 마음이어서 떨려요. 블랙코미디라 해도 출산과 아기를 다루는 무거운 주제라 어떻게 봐 주실지, 홍보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고민이 많은 시점이에요. 의미 있는 잘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사진=매니지먼트 오름〉


-'새벽의 Tango'는 인물과 인물의 관계에 집중하는 영화이기도 해요. 본인의 단단함이 캐릭터와 닮았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오랜 시간 활동하면서 수 많은 관계의 중심에서 흔들림을 이겨내고 스스로 '단단하다' 느끼게 된 순간은 언제였나요.
"자기 객관화가 명확해진 순간부터 관계들이 편해졌어요. 활동할 때는 저라는 사람보다는, 환경적이거나 팀 이미지 때문에 더 좋아해 주신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홀로 딱 떨어져 나오니까… 역시 저는 그냥 저더라고요.(웃음) 나로서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선택되는 일도 없고. '지금 나의 현실 위치는 어디지?' 객관적으로 따져보기도 했는데 '난 여기도 아니고 저기, 저 아래다. 다시 시작이다' 정리가 됐죠. 그때부터는 관계에 대한 마음가짐도 변했어요. 이전에는 상처도 많이 받았고, 잘해줬던 사람이 연락이 안 되는 경험도 있었는데, 그 순간을 인지하니까 탁 놓이더라고요.

그리고 혼자 여행하면서 확실히 느낀 것 같아요. 팀 활동이 끝나고 마음대로 되는 일도 없어서 갑자기 훌쩍 떠났는데, 그 곳에서 모르는 저를 많이 발견했어요. 저는 제가 사람들을 챙기려고 하고, 감수성도 어느 정도 있는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꽤 덤덤한 아이였더라고요. 혼자 스카이다이빙도 했어요!(웃음) 여행 마지막 날에는 욕조에 들어가 피로를 풀면서 제가 저에게 처음으로 '고생했다, 소현아'라고 다독여줬고요. 살면서 스스로 칭찬을 해 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걸 그 때 알았어요. 가장 큰 변곡점이었죠. '아무도 내 편이 되지 않아줘도. 나 혼자 내 편이 되어줘 보자.' 한 번 다 쏟아낸 후로 제 인생도 달라졌어요."

-우여곡절, 절치부심 끝에 시작하게 된 연기는 어떤가요. 한창 재미를 느끼고 있을 시기이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
"하면 할 수록 진~짜 어려운 것 같아요. 인물 바라보고 채워가고 하는 것에 있어 '너무 많이 부족하다' 생각해서 그런지 짜증 나게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연기 잘하는 선배님들 작품 보면 '저 분은 어떻게 저런 연기를 저렇게 하실까' 뇌 구조를 파보고 싶고 막 그래요. 하하. 재미있어지려고 하면 짜증 나고. 알려고 하다가 모르겠고. 하나 하나 스텝을 깨는 과정에 있는 것 아닐까요. '재미있다'고 하기에는 솔직히 아직 여유가 없어요.

그럼에도 자꾸 하고 싶은 도전 의식이 생겨요. 현장에서 가끔 진짜 같은 경험을 했을 때 '와, 이래서 연기 하나보다' 뿌듯함도 느끼고요. 긴장도 많이 하는 편이라 '언제쯤 긴장을 안 하는 날이 올까. 연기가 편해지고 즐길 수 있는 날이 올까' 고민이 돼요. 아이돌 활동을 할 땐 그 긴장감을 무대에서 확 쏟았는데, 연기는 다르니까요. 여러 방향으로 방법을 찾고 있는데 쉽게 해결 될 것 같지는 않아요."

-스스로에게는 칭찬을 해준 적이 별로 없다고 했는데, 연기 시작 후에 들었던 칭찬 중 기억에 남는 평이 있을까요.
"아! 그게 칭찬일까 싶기는 한데 잊지 못하는 말이 있어요. '그 겨울, 나는'을 찍을 때 감독님이 TV를 잘 안 보는 분이라 제가 가수로 활동했다는 걸 모르셨더라고요. 포미닛 소현이 아니라 ''생일'에 나왔던 그 배우구나'라면서 배우로서 저를 알아봐 준 순간이 가장 좋았어요."

-대중들에게는 '포미닛 권소현 아니야?' 하는 반응과 함께 배우로 확실히 각인 된 순간이었죠. '생일'은 일반 독립영화와 달리 설경구 전도연 등 배우들부터 충무로 베테랑 중 베테랑들만 모인 현장이었는데 느낌이 또 달랐을 것 같아요.
"오디션을 4차까지 보고 붙었던 작품이었어요. 최종 다수결로 결정 됐다고 하더라고요. 다수의 손을 들어주신 분들께 직접 인사 드리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진심으로 감사해요. 제가 지금도 전도연 선배님과 처음 겹쳤던 촬영 일정표를 가지고 있어요. 도연 선배님 콜 시간과 제 콜 시간이 위 아래로 나란히 적혀 있는 표였는데 이름이 같이 써 있다는 것 만으로도 너무 영광으로 느껴졌어요. 아직도 떠올리면 소름 돋아요.

현장은 말 그대로 꿈의 현장이었죠. 귀한 현장이었고요. 이제와 아쉬운 건 '그 때 조금 더 다가갈 걸' 하는 마음이에요. 물론 돌아가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연령이 40대 아니면 10대로 나뉘어져 있었어서 20대였던 어중간한 저는 '10대 쪽으로 가야겠다'며 10대 친구들과 같이 있었거든요.(웃음) 사실 영화는 온전히 잘 못 봤어요. 추모하러 단원고에도 갔었고, 광화문에도 여러 번 갔었는데 여느 작품, 캐릭터와는 접근하는 마음이 다를 수 밖에 없더라고요. 여러모로 소중했던 기회로 기억하고 있어요."

〈사진=매니지먼트 오름〉


-발랄하고 깜찍하고 에너지 넘치는 캐릭터도 잘 어울릴 것 같은데요.
"발랄… 어렵네요. 하하하. 일부러 피하는 건 아니지만 이 작품에서 이 작품, 이 작품에서 저 작품으로 연계되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새로운 얼굴로 써 주실 분들이 계시다면 당연히 언제든 환영입니다. 저도 다양한 이미지를 위해 더 노력할게요."

-가수에 대한 미련은 없나요.
"가수보다 팀에 대한 미련은 항상 있어요. 저희가 갑자기 통보를 받고 끝나 버려서 혼란스러움도 컸고 '마지막'이라고 할 만한 무대를 하지 못했어요. 예전처럼 활동하는 건 어려울 수 있지만, 뭔가 '마지막으로 기념 할 수 있는 무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요. 그게 팬들에 대한 예의인 것 같기도 하고요."

-SNS를 살피다가 '인생 N회차'라는 댓글을 봤어요. 2005년에 공식 데뷔해 2024년까지 곧 20주년을 앞두고 있죠. 돌아보면 어떤가요.
"크게는 인생 2회 차인 것 같아요. 팀으로 찬란했던 1회 차를 보내고 '내 인생은 10대 활동이 다 인가' 생각했을 때도 있었는데 아니란 걸 알아요. 그 땐 어렸고, 준비도 덜 된 상태에서 제 액션보다 대중의 리액션을 먼저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제가 액션을 취하고 있는 단계고요. '이 뒤에 받는 리액션이 찐 리액션이구나' 좋은 리액션을 받기 위한 2회 차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번도 제 성에 차게 일을 해본 적이 없어요. 팀 활동 때도 바빴지만 '더 바빠도 되는데' 하면서 갈증이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갈증과 불안에 대한 자아성찰을 해 본 적도 있고요. 휴식보다는 일이 우선이라, 쉼 없이 열심히 일하고 싶어요."

-'배우 권소현'으로서 목표나 바람이 있다면요.
"제가 이제 팀 활동보다 연기 활동 기간이 더 오래 됐어요. 어쩔 수 없지만 또 감사하게도 팀으로 기억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다만 올해 부국제에 세 번째 초청을 받아 다시 오게 되면서 '그래도 나라는 사람이 연기적으로 필모그래피를 잘 쌓아가고 있는 배우구나' 그런 것을 조금은 더 알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야 일하는데 있어서 버틸 힘도 생기고요. 어렵다 하더라도 '배우로서 꾸준히 잘 하고 있습니다'를 알리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예요. 그래서 부국제가 너무 소중해요. 또 다시 버틸 힘을 얻어가고, 앞으로도 출석 도장 찍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나를 잊지 말아 달라.' 하하.

또 하나는 언젠가 박정민 배우와 작품을 꼭 해보고 싶어요. 출연하신 작품은 물론 '넥스트 액터 박정민' 책도 찾아 볼 만큼 배우로서 만나보고 싶고 대화를 해보고 싶은 분이에요. 특히 올해 개막작이 '전,란'이었잖아요? 저와 친한 배우가 박정민 배우와 같이 작품을 했어서 무대에 계신 모습을 찍어 '나 봤다!' 하고 보냈더니 '왜 저한테 보내요' 하더라고요.(웃음) 연결 고리가 그 친구 밖에 없어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보냈는데 기회가 되면 작품에서 직접 뵙고 싶은 마음입니다."

조연경 엔터뉴스팀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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