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헌의 음감] QWER, 가짜의 어제와 진짜의 내일

인턴 디스패치 2024. 10. 12.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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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WER은 '가짜 아이돌'에서 스스로를 '어쩌나 시끄러운 우리들'이라 소개한다. '디스코드(Discord)', '고민중독'과 '내 이름 맑음'까지 이어지고 있는 성공은 인터넷 방송과 유튜브 알고리즘을 넘어 축제와 공연, 행사와 일상에까지 그들의 이름을 침투시켰다. '내 이름 맑음'은 10월 12일 기준 데이식스의 '해피(Happy)'를 넘어 한국 유튜브 뮤직 차트 정상에 올랐다.

그룹을 바라보는 시선도 뜨거운 화제다. 밴드와 아이돌의 경계를 묻는 정체성 논란은 장르 팬들 간의 갈등을 수면 위로 올리며 음악 인플루언서들의 단골 주제가 되었다. QWER은 밴드인가 아이돌인가, QWER은 록 페스티벌 무대에 설 자격이 있는가 등 밴드에 대한 갑론을박이 쏟아진다. 록 장르로 활동하는 팀을 두고 온오프라인이 불타오르는 광경은 오랜 록 팬의 입장으로 감개무량한 일이다. 하지만 밴드의 소란함은 그보다 더 복잡한 구조에서 만들어진다. 미니 2집 '알고리즘스 블러썸(Algorithm's Blossom)'으로 돌아온 QWER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룹의 기획 과정과 작동 방식부터 향후 밴드의 지향점까지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QWER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서브컬처로부터 태어났다. 인기 유튜버 김계란이 지난해 애니메이션 제작 후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만화 '【최애의 아이】'로부터 영감을 받아 시작한 '최애의 아이들' 프로젝트가 밴드의 시작이다. 밴드와 관련된 첫 영상 '중대발표…'에서 김계란은 일본 밴드 만화 '봇치 더 록'과 '케이온!'을 언급하면서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의 주 조작 버튼을 따라 그룹 이름을 정한다. 결성 과정에서의 서사는 인터넷에 음악을 투고하는 은둔 기타리스트가 밴드로 거듭나는 '봇치 더 록'에서, 아이돌 콘텐츠의 일상물 속성은 '케이온!'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 자연히 그룹의 음악 장르는 일본 음악가들의 제이팝이다.

실제로 프로젝트가 공개되었던 2023년은 요아소비 등 굵직한 일본 밴드들의 내한 소식과 더불어 유튜브를 중심으로 한국에서의 제이팝 열풍을 체감할 수 있던 시기였다. 알맞은 시기의 적절한 기획인 셈이다. 다만 천재적인 무명들의 활약상을 담은 애니메이션과 달리, QWER의 멤버들은 인터넷 유명인들로 꾸려졌다. 인터넷 방송인 쵸단과 마젠타, 틱토커 냥뇽녕냥(이하 히나)의 만남이 결성 전부터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김계란이 마지막 보컬 멤버로 일본 걸그룹 NMB48 활동 이력을 가진 이시연을 영입한 건 프로 활동 경력자 충원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서브컬쳐 기반의 아이돌 시스템 확장을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

기본적으로 QWER은 '아이돌' 밴드다. 드럼을 전공한 쵸단과 아이돌 경력이 있는 시연을 제외하면 악기 멤버들은 연주 경험이 없었다. 예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최애의 아이들'의 초창기 콘텐츠부터 버추얼 아이돌을 연상케 하는 애니메이션과 인터넷 인플루언서 대표 이미지를 숨기지 않는 데뷔곡 '디스코드'까지의 QWER은 '케이온!'처럼 미소녀들의 매력에만 의존하는 키라라계 그룹을 목표로 하는 것처럼 보였다. 록 밴드의 형식은 갖추되, 록 밴드에게 기대하는 실연과 자체적인 음악 생산에서는 기대가 어려웠다. 이런 속성으로 QWER은 데뷔 전부터 개별 멤버들의 팔로워들을 팀으로 끌어와 충성스러운 아이돌 팬덤 바위게를 조직할 수 있었다.


동시에 밴드가 감당해야 할 비판도 이 지점에서 등장한다. 연주하지 않는 밴드를 밴드로 볼 수 있냐는 핸드싱크 의혹, 그런 밴드가 장르 팬들의 축제인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 출연하는 것이 맞느냐는 검증이다. 이 논란에서 QWER이 밴드인지 아닌지를 규정하는 것은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음악을 듣는 이들의 시선에 따라 달라질 문제다. 핵심은 밴드라는 포맷을 택한 이들이 그 형식에 얼마나 몰입하고 있는지를 묻는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대중음악 장르 가운데 록은 진정성과 순수성, 라이브 공연과 프로듀싱에 대한 기대가 가장 크다. 일부 멤버들의 과거 자극적인 인터넷 방송 클립과 주 소비층을 겨냥하는 노골적인 콘셉트에 대한 호불호도 여기서 문제가 된다. 키라라계 그룹에 대한 수요는 성적 대상화를 동반하며 소수의 수요에만 의존하는 부정적 소비구조를 양산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밴드를 담당하는 쓰리와이코프레이션과 프리즘필터 뮤직 그룹은 이에 대한 해답으로 아이돌 '밴드'를 내놓는다. 데뷔 이후 QWER의 행사 일정을 쭉 살펴보면 살벌하다. 하루도 빠짐없이 콘텐츠를 제작하고 전국 곳곳의 축제와 행사장을 찾아 공연을 펼친다. 최고급 악기와 합주 환경을 조성하고 혹독한 합주를 이어간다. 백지상태에서 출발한 만큼 성실한 노력만 더해진다면 실력은 당연히 우상향 그래프를 그린다는 믿음이다. 야심 찬 기획을 따라가면서 멤버들은 자연히 스트리머로의 정체성 대신 밴드 QWER의 일원으로 성공에 대한 열망을 품게 된다. 이 시점부터 QWER은 견고한 방패를 얻었다. 부족하지만 노력하는 팀, 침체하여 있는 한국 록 시장에서 오랜만에 상업적으로 성공하고 있는 밴드라는 호의적인 반응이 등장했다.

따라서 QWER의 성공에는 반드시 좋은 음악이 있어야 한다. 이들에게 좋은 음악은 서브컬처 팬들의 감성을 자극하면서도 대중적으로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하는 융복합의 작업물이다. 프리즘필터의 지휘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이동혁, 홍훈기, 이주은(Elum), 제스처(Gesture) 등 작곡가들이 제이팝의 영향과 케이팝 아이돌의 이미지 가운데 적절한 배합 비율을 찾아내어 훌륭한 걸 밴드 곡을 만든다. '디스코드'와 더불어 '별의 하모니', '고민중독'과 '자유선언' 등 QWER의 노래는 선명한 레퍼런스와 뚜렷한 기승전결 구조, 귀에 감기는 멜로디와 대중적으로 호응을 얻을 수 있는 한글 위주의 가사로 분명한 매력이 있다. 제이팝의 인기를 빌려 일회성으로 등장하는 콘텐츠와는 다르다.

흥미로운 부분은 조력자들의 면면이다. QWER의 앨범 크레딧을 살펴보면 예상치 못한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소다(SODA)'의 경우 세븐틴, 투어스의 대표곡에 참여한 현서와 트리플에스, 에스파, NCT 드림의 노래를 작곡한 권애진, 큐브엔터테인먼트 대표 그룹들의 작곡가 빅싼초가 이름을 올렸다. '대관람차'의 작곡가는 엑소의 'Power'와 소녀시대의 'Holiday'에 참여한 김혜정이 눈에 들어온다. 웬만한 케이팝 아이돌 프로덕션과 견줄만한 라인업이다. 록 장르를 활용하되 록에 매여있지 않은 음악은 밴드에게 치열한 노력을 강조함과 동시에 인플루언서로의 정체성에서 장점을 추출하여 활용할 수 있는 바탕이 되어준다. 이를 멤버들이 자신의 것으로 얼마나 체화하느냐에 향후 QWER의 발전 가능성이 달려있다.


'나는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로 제이팝 마니아들과 케이팝 팬들의 공존 지대를 마련한 아이들의 소연이 제작 전반에 참여한 타이틀곡 '내 이름 맑음'을 들어보자. 유니즌 스퀘어 가든, 스미카, 녹황색사회 등 직관적인 멜로디를 중심으로 하는 제이팝 밴드의 음악 스타일이 분명한 가운데 건반의 비중을 줄이고 절제된 톤으로 노래하는 곡이다. 빠르게 전개되는 버스와 랩에 가까운 파트 등 작사 작곡을 맡은 소연의 개성이 굉장히 강하다. 이에 맞춰 시연은 기교를 빼고 툭툭 털어놓는 듯한 가창을 위해 목소리를 바꾸고, 악기 멤버들은 짧은 파트를 가져가며 보컬을 뒷받침해야 한다.

쇼케이스에서 시연은 이 곡을 소화하며 그간의 고생이 떠오르는 듯 눈물을 쏟았는데, 건조하게 들리는 곡이지만 사실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노래다. 이처럼 과정에 집중하여 결과를 내는 곡이다 보니 가사도 사뭇 진지하고, 대상이 명확해 모두의 것이 될 수 없었던 콘셉트도 공감할 수 있는 성장물로 저변을 넓힌다. '고민중독'에서 교복을 입고 춤을 추던 멤버들이 이제 그리 강하지 않은 자아를 고백하며 복잡한 심경을 내비치고 있다.

'내 이름 맑음'과 유사한 곡으로 '달리기'가 있다. 에스파의 '아마겟돈'을 창조한, 한국에서 가장 다재다능하고 확실한 스타일의 음악가 수민이 담당한 노래다. 감각적인 그루브 위 신비로운 코러스가 곁들여지는 알앤비 장르의 곡으로 전주를 듣자마자 수민의 노래임을 짐작할 수 있다. 역시 난이도가 상당한데, 멤버 전원이 아닌 쵸단과 마젠타의 보컬 유닛 곡이다. '내 이름 맑음'이 QWER과 소연의 융합이라면 '달리기'는 QWER과 수민의 절충이다. 아직 부족한 가창으로 인해 노래는 수민의 것처럼 들린다. 그럼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곡으로 중요하다. 실력 있는 음악가들이 걸밴드라는 형식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하고, 멤버들은 그들의 지도 아래 잠들어있던 새로운 재능을 발견한다. QWER 프로젝트가 지니는 교차로의 속성을 영리하게 활용하는 대목이다.

'알고리즘스 블러썸'은 소중한 기회를 잡아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밴드의 의지와 열정, 불안감과 두려움을 주제로 풀어낸다. 2000년의 TTL 소녀 심은경의 반항적인 신비주의를 붉은 머리와 삐딱한 노래로 응용한 '가짜 아이돌'과 경쾌한 '사랑하자', '메아리' 모두 표현의 방식은 다르지만, 진취적인 주제를 공유한다. 반면 타이틀과 짝을 이루는 쓸쓸한 테마의 '안녕, 나의 슬픔'에서 '슬픔이 지나간 그 자리에 또 새로운 추억이 너를 안아줄 테니까'라는 노랫말이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구성원들의 복잡한 감정을 대변하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일렉트로니카 밴드 이디오테잎이 인트로와 아웃트로에서 소리로 구현한 인터넷의 우주에서 QWER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확인한다. 취향만을 집요하게 공략하며 더 많은 중독을 창출하는 파편화된 개인주의 시대에서 광활한 인터넷의 우주는 공허하고 영원한 시간의 망망대해처럼 느껴진다. 각자의 행성계에서 활발히 활동해 온 멤버들이 하나의 밴드로 모이는 과정, 그리고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나가며 미지의 영역에 발을 디뎌가는 모습은 네 명의 멤버뿐 아니라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모든 이들이 염원하는 긍정적인 '함께'의 미래다. '같이'에서 오는 책임감과 '서로'에 대한 믿음, '다 같이'에 대한 설득과 결국 '우리'가 될 거라는 다짐이 필요하다. 과연 QWER은 '기필코 너에게 진심을 전할게'라는 약속을 이어갈 수 있을까? 가짜와 진짜를 오가는 밴드의 운명은 그들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 (zener1218@gmail.com)

<사진출처=타마고 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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