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때도 훈련 ‘열혈 철인’…일·육아·운동 3박자 과제 [ESC]

정인선 기자 2024. 10. 12.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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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의 탄생 엄마 철인
함수연씨가 지난 3월 당시 백일을 갓 넘긴 아들 또복이(태명)를 안은 채 실내 자전거 훈련을 하고 있다. 함수연·이현수 제공

먼저 철인 된 아내, 남편 입문시켜
‘아기 배턴 터치’ 번갈아 훈련 참여 서로 적극 지지해주며 목표 이뤄가

지난 5월 철인3종 동호회 ‘네오 트라이애슬론 팀’에 가입한 데에는 뜻밖의 이점이 있었다. 바로 ‘나보다 더한’ 사람들이 한가득이라는 점이었다. ‘내가 운동에 시간과 돈, 에너지를 과하게 쏟고 있나?’하는 생각이 쏙 들어갈 만큼 모두 운동에 단단히 미쳐 있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팀에 합류한 함수연(35), 이현수(40)씨 부부가 그 가운데 둘이다.

지난 6월 경남 고성에서 열린 ‘하프 아이언맨’(하프 코스 철인3종 경기) 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온 어느 주말, 부부는 당시 생후 6개월가량이던 아들 ‘또복이’(태명)와 함께 단체 훈련 장소인 한강 잠실 수중보에 등장했다. 남편 현수씨가 먼저 한강에 뛰어들어 오픈워터(야외) 수영 훈련을 하는 동안, 수연씨는 또복이를 안은 채 현수씨를 비롯한 팀원들이 수영하는 모습을 응원하며 사진과 영상을 찍어 줬다.

현수씨가 수영을 마치고 나오자 둘은 ‘배턴 터치’를 했다. 배턴은 다름 아닌 또복이였다. 그저 남편을 응원하러 나온 것인 줄 알았던 수연씨가 품에 안고 있던 또복이를 현수씨에게 넘겼다. 수연씨는 이내 헬멧을 조여 쓰고 장거리 자전거 훈련을 떠날 채비를 했다. 그러더니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출산한 지 반년밖에 안 된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자전거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자 또복이와 현수씨가 활짝 웃으며 ‘엄마 철인’을 반겼다. 다른 이들은 혼자서 연달아 하는 수영·자전거·달리기 훈련을 수연·현수씨 부부는 ‘릴레이’ 방식으로 하면서, 나름의 육아-운동 균형을 찾고 있었다.

철인들에게 유명한 ‘부부 철인’

함수연씨(왼쪽)와 또복이가 지난달 1일 전북 익산에서 열린 제24회 문화체육관광부장관배 전국 트라이애슬론 선수권 대회에 출전한 이현수씨를 응원하고 있다. 함수연·이현수 제공

이후에도 수연·현수씨 부부는 팀 단체 훈련과 대회에 자주 얼굴을 내비쳤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이미 철인 가운데 모르는 이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닌 유명인사였다. 대회장에 가면 눈 마주치는 모두가 세 사람을 향해 함박웃음을 지으며 덕담을 했다. 셋은 대회장 곳곳에서 선수들의 인생샷을 남겨 주는 ‘갤러리’들의 단골 피사체이기도 했다. 갤러리들은 또복이를 들쳐안은 수연씨가 주로 가장자리에서 현수씨를 오매불망 기다리며 응원하는 진풍경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두 사람이 ‘철인 부부’가 된 건 결혼 3년 차인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대 때부터 수영과 달리기를 해 온 수연씨가 먼저 발을 들였는데, 처음 나간 표준 거리(수영 1.5㎞, 자전거 40㎞, 달리기 10㎞) 대회에서 20대 여성 가운데 1위를 했다. 시상대의 맛을 본 수연씨는 자연스럽게 철인3종에 빠져들었다. 맥주 블로그를 운영하고 맥주 여행기로 책까지 낼 만큼 운동보다는 술과 친했던 남편을 수연씨가 끈질기게 꼬드겼다. 현수씨는 “운동 끝나고 맥주 마시러 가자”는 달콤한 유혹에 결국 넘어가, 2019년 철인3종에 입문했다.

철인들은 수영 3.8㎞, 자전거 180㎞, 달리기 42.195㎞로 이뤄진 ‘아이언맨 코스’ 대회를 완주해야 비로소 ‘진짜 철인’이 된다고 여긴다. 이에 매년 가을 전남 구례에서 열리는 ‘구례 아이언맨’ 대회를 꿈의 무대로 삼는 국내 동호인이 많다. 남편을 입문시킨 수연씨는 2019년 9월 구례 대회에서 인생 첫 아이언맨 코스를 완주하는 걸 다음 목표로 잡았다. 새벽 4~5시에 일어나 훈련한 뒤 출근하고, 퇴근 뒤 또다시 훈련하는 생활을 수개월 반복하며 장거리 대회에 나설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수연씨는 “아기를 낳으면 시간을 쪼개 운동하는 게 불가능에 가까울 테니, 그 전에 꼭 구례 대회를 완주해 보고 싶었다”고 돌아봤다. 그런데 이게 웬걸, 큰 태풍이 불어닥쳐 대회가 취소되고 말았다. 아쉬운 마음에 밤새 술을 들이켰다. 현수씨가 “이렇게 된 바에, 내년에 함께 구례 대회를 완주하자”고 아내 마음을 달랬다.

하지만 이번에는 코로나19 대유행이 두 사람 앞을 가로막았다. 구례 대회뿐 아니라 전국의 모든 대회가 열리지 않았다. ‘내년에는 괜찮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훈련을 이어 갔다. 부부 동반 아이언맨 코스 완주 계획이 미뤄지면서 임신·출산 계획도 함께 미뤄졌다. 3년이 지나도록 대회는 열리지 않았다. 부부는 국내 대회가 열리지 않을 것에 대비해 신청해 뒀던 국외 대회로 눈을 돌렸다. 둘은 그해 12월 ‘2022 아이언맨 플로리다’ 대회에서 고대하던 인생 첫 아이언맨 코스 완주에 성공했지만, 만족스러운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2~3달을 우울에 빠져 지내던 부부는 ‘더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아기를 갖기로 결심했다. “그래도 건강하게 운동하며 살아서 그런지” 또복이가 지난해 초 바로 찾아와 주는 행운을 만났다. 수연씨는 임신 중에도 수영과 실내 자전거 등 훈련을 이어 가며 또복이를 기다렸다. 또복이가 태어난 뒤엔 삼칠일(21일)이 지나자마자 바로 집 근처 공원 걷기처럼 가벼운 운동을 재개했다.

출산 후 근육이 지방으로, 다시 운동

함수연(왼쪽), 이현수 부부가 지난 2022년 12월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2022 아이언맨 플로리다’ 대회에서 인생 첫 아이언맨 코스(수영 3.8㎞, 자전거 180㎞, 달리기 42.195㎞) 철인3종경기를 완주한 뒤 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함수연·이현수 제공

아이를 출산한 국내 여성 6명 중 1명이 겪었다는 산후우울증은 철인이라고 해서 비껴가는 법이 없었다. 수연씨는 “아이를 낳기 전에는 새벽 훈련을 위해 선크림만 대충 바르고 지하철을 타도 전혀 부끄럽지 않고, 울퉁불퉁한 다리도 열심히 운동한 성과라고 생각했는데 출산 후엔 근육이 다 지방으로 바뀐 몸이 초라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아내가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들 때면, 현수씨가 등을 떠밀어 집 밖으로 내보냈다. 또복이의 주 양육자인 수연씨가 운동할 시간을 틈틈이 확보하도록, 현수씨는 자신의 업무 및 훈련 계획을 일주일 단위로 공유하고, 필요한 날엔 유연 출퇴근제를 이용해 또복이를 돌봤다. “그렇게 30분이라도 운동을 하고 돌아오면 아기를 다시 봤을 때 느끼는 행복이 더 커지더라고요.” 수연씨가 말했다.

수연씨는 지난 6월과 ‘2024 세종특별자치시 전국 아쿠아슬론’ 대회(수영 1.5㎞, 달리기 10㎞)와 7월 ‘2024 태백 블루레이스 산악 듀애슬론’ 대회(자전거로 언덕 오르기 23㎞, 산악 달리기 8.6㎞)에서 나름의 복귀전을 치렀다. 남편 현수씨도 지난달 30일 구례 대회를 9시간50분11초에 완주했다. 꿈의 무대 구례에서, 꿈의 목표인 ‘서브 텐’(아이언맨 코스 10시간 이내 완주)을 달성하는 쾌거였다.

수연씨는 내년 2월 직장 복귀를 앞두고 있다. 부부 앞엔 일-육아-운동 3박자를 맞춰야 하는 과제가 놓였다. ‘아이언맨 코스 재도전’을 목표로 잡았다는 수연씨가 말했다. “운동은 옛날의 반밖에 못 하겠죠. 그럼에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어요. 제가 그랬듯 남편도 저를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리라는 걸 아니까요. 대회장에서도 아내가 남편을 응원하러 온 경우는 수두룩해도 그 반대는 거의 없는데, 저희가 그 드문 경우 중 하나잖아요.”

함수연씨가 출산 7개월째이던 지난 7월7일 강원도 태백에서 열린 ‘2024 태백 블루레이스 산악 듀애슬론’ 대회에 출전해 함백산에서 달리고 있다. 최상혁 제공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한겨레신문 젠더팀 기자. 일하지 않는 시간엔 요가와 달리기, 수영, 사이클, 케틀벨 등 각종 운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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