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치인은 ‘백인 타코’를 먹는다[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먹지 못하고 바라만 보네
대선 후보가 품위 있게 유세 음식 먹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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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white guy tacos.” (나는 백인 타코를 즐겨 먹는다) |
타코는 소스를 뿌려 먹습니다. 타코의 본고장 멕시코에서는 핫소스, 할라피뇨소스, 살사소스 등 매운맛을 내는 소스를 뿌려 먹습니다. 하지만 매운맛에 약한 미국인에게는 이런 소스가 무리입니다. 백인이 많이 살고, 월즈 후보가 주지사로 있는 미네소타에서는 주로 검은 후추를 뿌려 먹는 데 이를 백인 타코라고 부릅니다. 자신과 같은 백인에게는 별로 맵지도 않은 검은 후추가 매운맛의 최고치라는 자폭개그입니다. ‘have’ 다음에 음식이 나오면 ‘가지다’가 아니라 ‘즐겨 먹는다’라는 뜻입니다.
백인 지지자가 많은 공화당에서는 발끈했습니다. 타코면 타코지 백인 타코는 뭐냐는 것입니다. 타코를 백인 타코, 멕시칸 타코 등으로 나누는 것이야말로 민주당이 배격하는 인종차별이라는 것입니다. 별것도 아닌 말 한마디를 두고 죽을 것처럼 설전을 벌이는 것이 대선을 앞둔 요즘 미국 정치 풍경입니다. 한국에도 익숙한 풍경입니다. 음식은 설전의 주요 소재입니다. 음식은 단순한 먹는 행위가 아니라 그 안에 이념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정치의 유명한 격언입니다. “Food on the campaign trail is a minefield for political candidates”(유세 때 먹는 음식은 후보에게 지뢰밭이 될 수 있다). 논란의 소지가 크다는 뜻입니다. 유세 음식에 얽힌 에피소드를 알아봤습니다.
With Swiss.” (스위스 치즈 넣어줘요) |
케리 장관은 2004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습니다. 케리 후보는 민주당의 전통 지지층은 사회 취약계층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너무 부자여서 서민 분위기가 나지 않은 것입니다. 오히려 공화당 후보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텍사스 카우보이 이미지를 풍기며 민심을 파고들었습니다.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유세 중에 벌어진 스위스 치즈 사건은 케리 후보의 럭셔리한 이미지를 잘 말해줍니다. 철강 공장이 많은 필라델피아는 미국의 대표적인 노동자 도시입니다. 명물은 치즈 스테이크. 얇게 썰어 볶은 고기를 빵 사이에 끼워 치즈를 올려 먹는 샌드위치입니다. 케리 후보는 치즈 스테이크 맛집 팻츠(Pat’s)에 들렀습니다. 그의 주문 내용입니다. ‘치즈’를 아예 빼고 그냥 “스위스”라고 한 것을 보면 스위스 치즈를 많이 주문해 본 솜씨입니다. 음식 주문에서 토핑, 소스 등을 선택할 때는 ‘with’를 씁니다. ‘with Swiss cheese’ ‘with extra onions’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스위스 치즈는 고급 치즈입니다. 풍미가 연하고 부드럽습니다. 강한 풍미의 치즈를 넣는 치즈 스테이크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대부분 레스토랑이 ‘Cheez Whiz’(치즈 위즈)를 넣는다는 것은 비밀 아닌 비밀입니다. 미국 아이들이 군것질용으로 많이 먹는 짝퉁 치즈입니다. 건강에 좋지 않은 정크푸드이지만 치즈보다 강한 맛을 내기 때문에 레스토랑들이 선호합니다. 이런 전통을 모르는 케리 후보는 평소 자신의 취향대로 고급 치즈를 택한 것입니다. 케리 후보의 주문을 구경하던 필라델피아 주민들의 분위기가 싸해졌습니다.
다음도 문제였습니다. 치즈 스테이크가 나오자 혹시라도 흘릴까 봐 조금씩 오물거리며 먹었습니다. 치즈 스테이크는 입을 크게 벌리고 내용물을 줄줄 떨어뜨리며 먹는 것이 진리입니다. 케리 후보는 토핑 선택과 식사법에서 민심을 모른 것입니다. 한마디로 ‘out of touch’(접촉이 안 되다)입니다. 올해 대선에 출마한 J D 밴스 공화당 부통령 후보는 최근 필라델피아 유세 중에 팻츠에 들러 케리 후보의 스위스 치즈 사건을 다시 들춰냈습니다. “Why do you guys hate swiss cheese so much? What’s the story?”(여러분들 왜 그렇게 스위스 치즈를 싫어하는 거예요. 이유가 뭐예요)
The best taco bowls are made in Trump Tower Grill. I love Hispanics!” (최고의 타코 볼은 트럼프타워 그릴에 있습니다. 히스패닉 사랑해요) |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 음식을 먹는 것으로 히스패닉 지지율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멕시코 축제일인 씽코 데 마요(Cinco de Mayo) 때 타코 볼(taco bowl)을 먹는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타코 볼은 둥근 그릇처럼 만든 토르티야에 고기, 채소, 치즈, 과카몰리(으깬 아보카도) 등을 섞은 샐러드입니다.
사진과 함께 올린 메시지입니다. 레스토랑 선전인지 히스패닉 구애인지 모르겠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멕시코 기념일에 멕시코 전통 음식을 먹으려면 히스패닉 동네에 가야 하지만 뉴욕 한복판의 자기 소유 음식점에 먹는 무신경을 보여준 것입니다. 뉴욕 트럼프타워 그릴은 음식값이 비싼 곳입니다. 메뉴판에 나온 타코 볼 가격은 18달러, 팁까지 합쳐 23달러에 샐러드 한 접시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맛도 별로입니다. 트럼프타워 그릴에서 타코 볼을 시식한 뉴욕 음식 잡지는 이렇게 혹평했습니다. “Fried tortilla bowl heaped with romaine lettuce, grated yellow cheese, and plain ground beef that was so devoid of flavor, it rendered an insult to Mexicans.”(로메인 상추, 노란 치즈 가루, 평범한 간 쇠고기 등을 쌓아 올린 토르티야 볼은 너무 맛이 없어 멕시코인들에게 모욕이 될 지경이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이런 메시지를 올렸습니다. “I love Hispanics - Trump, 52 minutes ago. They’re gonna be deported - Trump, yesterday.”(히스패닉 사랑해요 – 52분 전 트럼프. 히스패닉 강제 추방 – 어제 트럼프). 그래도 힐러리 후보는 점잖은 편입니다. 한 정치인의 메시지입니다. “Holy guacamole, what a dipshit”(아이고, 이 한심한 사람아). ‘holy guacamole’(홀리 과카몰리)는 ‘리’로 끝나는 두 단어의 운율이 맞춘 감탄사입니다. 황당한 상황에서 씁니다. 욕설인 ‘dipshit’(딥쉿)은 ‘dippy’(멍청한)와 ‘shit’(놈)이 합쳐졌습니다.
I’m sitting here just pining. Pining for a bite.” (나는 여기 앉아 간절하게 원한다. 한 입을 간절히 원한다) |
옆자리 수행원들은 맛있게 먹지만 끝까지 포크를 들지 않는 힐러리. 얼마나 먹고 싶은지 치즈케이크를 곁눈질로 바라보는 간절한 눈빛이 화제가 됐습니다. 기자들이 먹지 않은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습니다. “I learned early on not to eat in front of all of you”(여러분들 앞에서 먹지 말아야 한다는 진리를 일찍 터득했다). 먹는 장면이 찍히는 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신세가 처량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pine’(파인)은 소나무를 말합니다, 여기서는 동사로 간절히 원한다는 뜻입니다. ‘pain’(고통)에서 유래했습니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원한다는 뜻입니다.
치즈케이크 한 조각을 앞에 두고 고민하는 힐러리의 모습에 많은 여성이 공감했습니다. 며칠 뒤 스티븐 콜베어 토크쇼에 출연했을 때 콜베어는 힐러리를 뉴욕 명소 ‘카네기 델리’(Carnegie Deli)로 데려가 이렇게 위로했습니다. “Let me show you how to properly eat New York cheesecake”(뉴욕 치즈케이크를 제대로 먹는 방법을 보여주겠다). 한 손에 쥔 포크로 치즈케이크를 조금 뜬 뒤 다른 한 손으로 나머지 케이크를 손에 들고 마음껏 먹습니다. 포크의 치즈케이크는 기자에게 먹으라고 줍니다. 콜베어의 충고입니다. “This is humanizing,”(이런 게 인간적이다)
명언의 품격
Anybody gone into Whole Foods lately? See what they charge for arugula?” (최근 홀 푸드에 가본 적 있습니까. 아르굴라를 얼마나 파는지 압니까) |
아르굴라(arugula)는 샐러드에 들어가는 고급 채소입니다. 한국에서는 루콜라(rucola)로 불립니다. 옥수수, 감자가 특산물인 아이오와 농부들은 많은 채소 놔두고 하필 아르굴라를 거론한 오바마 후보에게 기분이 상했습니다. 샐러드를 먹으며 잘난 척하는 동부 인텔리처럼 보였습니다. 오바마의 날씬한 체형이 이를 증명했습니다. ‘아르굴라 게이트’로 불릴 정도로 논란이 됐습니다. 서민들의 아침 식사인 와플과 소시지가 입에 맞지 않아 남긴 것으로 드러나면서 ‘오바마=고급 입맛’ 이미지는 더욱 굳어졌습니다. 뉴욕타임스 명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는 이렇게 비꼬았습니다. “This is clearly a man who can’t wait to get back to his organic scrambled egg whites”(확실히 유기농 달걀흰자 요리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인 사람이다). 아르굴라 게이트를 겪은 오바마 후보는 기름진 음식을 좋아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핫도그, 나초 등 고칼로리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실전 보케 360
에드워즈는 BBC 저녁 메인 뉴스를 20년 동안 진행하며 가장 신뢰받는 언론인이라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타계, 찰스 3세 국왕 대관식 등 중요 행사 중계를 도맡아 왔습니다. 지난해 미성년자 음란물 사진을 구매한 사실이 들통났습니다.
신뢰받는 앵커의 두 얼굴은 영국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BBC도 비난을 받았습니다. 에드워즈가 체포된 뒤 해고도 하지 않고 억대급 급여도 그대로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여론의 비판이 커지자 BBC는 부랴부랴 에드워즈로부터 급여 회수에 나섰습니다.
집행유예 판결은 너무 가볍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실형을 예상했던 에드워즈는 집행유예가 선고되자 안도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정신건강 문제가 선고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범행 당시 정신상태가 온전치 않아 의사결정을 제대로 내릴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선고를 내린 폴 골드스프링 판사는 범죄 전력이 없다는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습니다. 그의 명성이 이미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It is not an exaggeration to say your long-earned reputation is in tatters.” (오랫동안 쌓아온 당신의 명성이 무너졌다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21년 1월 11일 소개된 정치 그룹명에 내용입니다. 정치인들은 끼리끼리 모이는 것은 좋아합니다. 혼자일 때는 힘이 없어도 비슷한 사람들끼리 그룹을 형성하면 눈에 띄고 발언권도 세집니다. 정치인들이 만든 그룹에는 재미있는 이름이 많습니다.
▶2021년 1월 11일자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10111/104856334/1
The Dirty Dozen coup-plot is just a tiny storm in the teacup.” (더티 더즌의 쿠데타 시도는 찻잔 속 작은 태풍일 뿐이다) |
Members of the Gang of Eight were tight-lipped as they left the briefing.” (8인조 갱 멤버들은 정보 브리핑을 받은 뒤 입을 굳게 다물고 브리핑장을 떠났다) |
I knew the Three Amigos. John would be upset from the grave.” (내가 쓰리 아미고스를 알거든. 존이 무덤에서 화를 낼 거야) |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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