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추상적 관념과 거대한 냉소에 굴복 않기를

한겨레 2024. 10. 1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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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김성경의 탈분단 사유
관념과 현실의 깊은 간극
임종석 전 ‘2018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19일 저녁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임종석 “통일, 하지 말자” 한마디에
보수는 맹비난, 진보는 거리 두기
분단 80년새 무관심·회의론 팽배
거대담론 아닌 삶과 행동이 중요

“통일, 하지 맙시다.” 논란이 된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기념사 첫 문장이다. 연설 시작부터 간결하면서도 도발적인 문장을 배치해 언론사 데스크의 고질적 고민인 ‘제목’ 걱정을 덜어주기까지 했다. 학생운동 이래로 평생의 과제인 통일 운동에 헌신하겠다고 공헌했던 이의 입에서 나온 선언이라 파장은 컸다.

보수 언론과 정치인들은 발 빠르게 ‘종북’ 프레임을 들고나왔다. 조선일보는 9월21일치 신문의 1면과 3면에 걸쳐 임 전 실장의 발언이 역대 진보 정부 정책통들의 입장 변화와 연동된다고 해석했다. 진보 정부 인사들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론이 등장하자 ‘통일’을 유보한 채 북한을 국가로 인정함으로써 분단을 고착화한다는 주장이었다. 보수 언론의 낙인찍기가 본격화하자 혹여나 ‘종북’이 될까 두려운 야당 정치인들도 ‘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미 학계에서는 통일을 강조하는 것이 현실적인 남북 관계 진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의가 있었던 터라 갑작스러운 이번 소동이 의아하면서도, 동시에 여전히 서슬 퍼런 분단 모순의 작동에 씁쓸하기도 했다.

북한의 ‘두 국가론’까지 얽힌 논란

통일과 평화를 둘러싼 전문가와 정치인들의 논쟁에 굳이 말을 보탤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마치 ‘통일파’와 ‘평화파’가 존재하는 것처럼 편을 가르는 것도 문제적일뿐더러 ‘통일’과 ‘평화’를 무 자르듯이 잘라 우선순위를 매기는 논쟁을 따라가면 의외로 의견 차이가 적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합리적 의견을 공유하는 대다수는 작금의 군사적 위기 상황을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고, 동시에 분단 극복을 위한 남북통일이라는 지향에도 동의한다. 다만 국내외 환경과 국제 정세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한반도 상황에서 이를 실현하기 위한 중장기적 전략이나 단기적 방안에 대해서 이견이 있을 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합리적인 대부분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남북을 괴롭혀온 분단 극복의 가장 이상적인 상태로 통일을 상정한다는 뜻이다. 갑작스레 통일이 먼저냐, 아니면 현실적 평화가 우선이냐는 논쟁이 격화되는 것이 한반도가 마주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북한의 ‘두 국가론’까지 가세하여 전문가, 언론, 정부 가릴 것 없이 확산되고 있는 통일 논쟁이 더욱 관념화된 담론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껏 통일과 평화에 대한 수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왔음에도 실제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고사하고, 시민들의 통일의식 제고도 실패한 경험이 되풀이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자유민주주의 통일론을 내세우며 통일의식 고양에 적극적으로 나섰음에도, 시민사회와 학계가 나서 평화로운 한반도를 위한 노력을 경주했음에도, 시민들의 통일의식은 오히려 더 약화되었다. 최근 발표된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의 통일의식 조사에 따르면 통일 필요성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35%로 2007년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대 청년들의 경우에는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이 47.4%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더욱이 이러한 통계치는 ‘통일은 우리의 소원’이라는 정답이 존재하는 한국 사회에서 보수적으로 표집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현실에서 느껴지는 시민들의 통일의식은 이미 찬반을 넘어서 무관심의 영역이 된 것 같아서다.

그렇다면 남한의 시민들이 왜 이다지도 통일에 무관심해져 버린 것일까? 아마도 통일이나 평화가 ‘추상’으로 감각되기 때문일 것이다. 80년 가까이 계속된 분단으로 인해 통일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것조차 힘겨워졌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정체성이 익숙해진 상황에서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잠정적인 특수관계’로 얽혀 있는 북한의 자리도 모호해져 버렸다. 평화도 마찬가지다. 일상화한 군사적 긴장에 오랫동안 노출된 나머지 전면적 전쟁이 발생하지 않은 현 상황을 평화로운 상태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북한과 북한 사람들과의 현실적인 관계 맺기 경험도 빈약하다.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북한은 ‘기괴’하고, 북한 사람들은 ‘가난한’ 존재들에 불과하다. 2000년대 말 이후 사실상 북한 사람들과의 접촉 경험이 단절된 까닭에 통일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혹은 통일을 이뤄낸 이후에 그들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가늠하지 못한다. 사람들에게 ‘추상’인 통일과 평화가 현실의 얼굴들로 체화되지 못했기에 어쩌면 분단이 지속되고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현실적 딜레마 인정, 작은 실천부터

‘통일, 하지 맙시다’라는 도발과 ‘통일이 완전한 광복’이라는 통일 독트린이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그들의 ‘말’에서 통일과 평화의 구체적 현실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만약 진정으로 통일과 평화가 사람들의 삶과 국가의 명운을 결정하는 것이라면 정치인들은 그것의 모습이 어떠한 것일지 제시해야 한다. 경제적 이득과 같은 온갖 장밋빛 전망을 내세우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통일과 평화가 관념과 추상의 수준에 머물렀던 이유는 우리가 마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딜레마를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했다는 데 있다.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개인, 공동체, 그리고 사회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통일과 평화라는 문제를 회피할 수 없다는 것을 설득해야 한다.

우연히 만난 시민사회 청년 활동가에게 평화운동에 투신(?)하게 된 계기를 물어본 적이 있다. 대단한 이념이나 사건을 기대했던 탓일까, 그의 답은 의외였다. 삶 자체가 평화와 비폭력인 동료에게 감명받아서 활동가로 사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 때문이라니. 하긴 통일이건 평화건 결국 사람답게 살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대한 담론이나 전략보다 행동과 삶으로 통일과 평화의 가치를 보여주는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묵묵히 모두가 공존하는 통일과 평화를 꿈꾸며 작은 실천을 궁리하는 이들이야말로 온갖 비관론이 넘쳐나는 이 시기를 견뎌내는 유일한 힘이다. 부디 주변을 돌아보길. 분명 통일과 평화의 얼굴을 하고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혹여나 찾지 못했다면 스스로 그런 이가 되는 것도 방법이다. 그것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 문제에 대한 이 엄청난 냉소에 굴복하지 않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다.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영국 에식스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성공회대, 싱가포르국립대를 거쳐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북한 사회와 탈분단 문화를 연구하며, ‘갈라진 마음들’ 등 다수의 학술 논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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