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우승은 타이거즈’ 이번에도 통할까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2024. 10. 1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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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11전 11승…승률 100% 불패 신화 
해태는 마운드로, 기아는 방망이로 타이거즈 전성시대 열어

(시사저널=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도 이런 사례는 없었다. 챔피언결정전에만 오르면 예외 없이 챔피언이 됐다. 국내 프로야구 타이거즈 구단이 그렇다. 해태 타이거즈(1982~2000년)일 때도, 해태를 승계한 KIA 타이거즈(2001년~현재)일 때도 한국시리즈 무대에서 무적이다. 해태 시절에는 9번(1983·1986·1987·1988·1989·1991·1993·1996·1997) 올라 9번 모두 이겼고, 'KIA'로 야구단 주인이 바뀐 뒤에는 2번(2009·2017) 올라 2번 모두 왕좌를 차지했다. 기아가 2024 시즌 정규리그에서 1위를 확정 짓자 '어차피 우승은 타이거즈'라는 말이 나온 것도 이런 확률에 기반을 둔다. 

물론 해태 시절과 지금의 KIA 모습은 사뭇 다르다. 해태 때 타이거즈의 상징은 '정신력'이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따른 핍박과 차별의 한이 그대로 프로야구에 투영됐다. 울분을 토하듯이 승부에 끈질긴 모습을 보였고, 이는 한국시리즈라는 무대에서 더 극대화됐다.

9월25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한국시리즈 출정식을 가진 KIA 선수들이 정규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연합뉴스

정신력의 해태…정규리그 1위 기아의 여유

다른 구단 선수들이 튼튼한 모그룹(삼성·롯데·OB(현재 두산) 등)의 지원 아래 연봉 등을 후하게 받는 것과 비교해 해태 선수들의 연봉은 상대적으로 적었던 면도 있다. 1990년 중반 이후는 더욱 그랬다. 이 때문에 더 악착같이 승리를 갈망했다. 기아 구단 한 관계자는 "1980~90년대만 해도 문화 전반을 관통한 것이 '헝그리 정신'이었다. 선수들이 마지막 시리즈에서는 강한 정신력으로 힘든 상황을 이겨냈다"면서 "상대성도 있었을 것 같다. 3번, 4번 계속 이기다 보니 다른 팀들이 한국시리즈에서 타이거즈를 만나면 껄끄러워했다. 한국시리즈에 가면 더 강해지는 팀으로 점점 인식됐던 것 같다"고 했다.

전력 자체가 강했던 점도 있다. 해태 전성기 때는 선동열(1985~1995년 활약)이라는 불세출의 영웅이 있었다. 통산 평균자책점이 1.20에 이를 정도로 언터처블이었다. 선동열뿐만 아니라 이상윤-조계현-이강철-이대진 등 해태는 전통적으로 선발진이 튼튼했다. 야구는 투수놀음이고, 투수력이 세면 단기전에 강할 수밖에 없다. 1990년대에는 타선에 이종범까지 있었다.  

해태가 정신력과 투수력으로 한국시리즈를 제패했다면 기아는 한국시리즈 직행의 특혜를 누렸다. 2001년부터 정규리그 1위 팀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놓친 경우는 2001년(삼성), 2015년(삼성), 2018년(두산) 등 단 3차례뿐이다. 2009년과 2017년 기아는 정규리그 1위를 한 뒤 한국시리즈에서도 우승했다. 2009년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으나 기어이 우승을 움켜쥐었다. 2017년에는 1차전을 두산에 내줬으나 2~5차전을 내리 승리했다. 기아 관계자는 "과거의 영광이 유산이 된 것 같다. 100% 승률이 부담도 되겠지만, 반대로 자신감을 갖는 계기도 된다. '우리는 당연히 이긴다'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생긴다"고 했다.

그렇다면 올해 타이거즈는 12번째 한국시리즈에서 12번째 우승컵을 거머쥘 수 있을까. 일단 야구계 현장에서는 '어차피 우승은 타이거즈'라는 말이 흘러나온다. 그만큼 기아의 올 시즌 전력이 탄탄하다. 

기아는 87승55패2무(승률 0.613)의 성적으로 2위 삼성(78승64패2무·승률 0.549)과 9경기 차이가 나는 1위를 차지했다. 시즌 내내 부상에 신음했으나 투타 밸런스가 좋았다. 팀 평균자책점 1위(4.40)였고, 팀 타율(0.301)은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3할을 넘겼다. 득점권 타율은 0.308, 대타 타율은 0.340에 이르렀다. 중요 순간에 더 집중했다는 뜻이다. 

기아의 우승은 선발진이 붕괴한 가운데 이뤄졌다. 시즌 초 제임스 네일, 윌 크로우, 양현종, 이의리, 윤영철로 선발진을 꾸렸는데 이들 중 크로우, 이의리, 윤영철이 부상을 입어 차례대로 전열에서 이탈했다. 선발 퀄리티 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 이하 투구)가 9위(40차례)인 이유다.

9월28일 KIA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에서 KIA 김도영이 안타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올 시즌 기아 타선의 중심 김도영의 존재감

그나마 네일의 한국시리즈 정상 등판이 가능하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네일은 8월24일 창원 NC 다이노스전에서 타구에 맞아 턱 관절이 골절돼 수술을 받았다. 이후 예상보다 빨리 재활을 마치고 9월22일 첫 불펜 피칭을 했다. 네일은 정규리그 동안 12승5패 평균자책점 2.53(전체 1위)으로 기아 선발 마운드의 기둥이었다. 네일이 부상 이전의 모습을 보인다면 12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노리는 기아에는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다친 부위가 팔꿈치나 어깨가 아니라는 점이 더 희망적이다. 기아는 네일, 에릭 라우어, 양현종을 한국시리즈 1~3선발로 활용한다. 

올 시즌 기아 타선의 중심에는 슈퍼스타로 거듭난 김도영이 있었다. 김도영은 KBO리그 최초로 월간 10홈런-10도루를 달성했고, 최연소 30홈런-30도루 기록도 만들어냈다. 내추럴사이클링히트, 최다득점 신기록도 세웠다. 박재홍, 에릭 테임즈에 이어 3할-30홈런-30도루-100득점-100타점의 대기록도 달성했다. 비록 38홈런-40도루에서 멈췄으나 시즌 막판까지 국내 선수 최초로 40홈런-40도루에 도전했다. 김도영은 "제가 있는 동안 기아 왕조를 세워보고 싶다"는 당찬 각오를 밝히고 있다. 

김도영과 더불어 리그 최고령 타자(1983년생) 최형우도 건재하다. 최형우는 마흔 살이 넘은 나이에도 올해 22개 홈런을 쏘아올렸다. 기아는 김도영, 최형우를 비롯해 소크라테스 브리토(26개), 나성범(21개)이 20홈런 이상을 기록했다. 여기에 김선빈(타율 0.329), 박찬호(타율 0.307) 등이 타선을 뒷받침한다. 과거 해태가 마운드로 승부를 봤다면 현재의 기아는 방망이로 타이거즈 전성시대를 열려고 한다.  

기아는 정규리그 때 2위에 오른 팀들을 상대로 18승2패의 성적을 냈다. 승률이 무려 9할에 이른다. 1위를 넘보려는 팀들을 만나면 더 강하게 내리찍었다. 고빗길에서 호랑이 발톱은 더 날카로웠고, 이빨은 더 단단했다. 한국시리즈 백전백승의 유산이 그대로 살아있다고 하겠다.  

이범호 기아 감독은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 지은 9월17일, 정확히 오전 9시17분에 눈을 떴다고 한다. 그래서 우승 확정을 예감했다고 하는데, 9시17분을 확대 해석하면 2009년, 2017년이 된다. 2017년 우승 당시 이범호 감독은 선수로 뛰고 있었다. 1981년생 이 감독은 기아의 한국시리즈 불패 기록을 이어가면서 1980년대생 감독으로 처음 우승 트로피를 품을 수 있을까. 초보 사령탑으로 선동열(2005년·삼성), 류중일(2011년·삼성), 김태형(2015년·두산)에 이어 감독 데뷔 첫해 왕좌에 오를지 관심 있게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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