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보수용 페인트가 물먹어야 하는 이유[생활속산업이야기]
자동차 색깔=보수용 도료 베이스코트
환경 개선 위해 휘발성 유기화합물 함유 기준 강화
희석제로 물과 희석해 쓰는 수용성 도료 써야
“아 그랬구나!” 일상 곳곳에서 우리 삶을 지탱해 주지만 무심코 지나쳐 잘 모르는 존재가 있습니다. 침구, 종이, 페인트, 유리, 농기계(농업) 등등 얼핏 나와 무관해 보이지만 또 없으면 안 되는 존재들입니다. 우리 곁에 스며 있지만 숨겨진 ‘생활 속 산업 이야기’(생산이)를 전합니다. 각 섹터별 전문가가 매주 토요일 ‘생산이’를 들려줍니다. <편집자주>
[박승렬 KCC 자동차보수용도료 지원팀장] 두 달전쯤 가벼운 접촉 사고가 났다. 운전자가 졸았는지, 스마트폰을 봤는지 모르지만 신호 대기중이던 내 차를 뒤에서 충격했다. 보험처리를 통해 내 차는 공업사에 맡겨졌고 얼마 뒤 새차 같은 뒷태를 자랑하는 내 차를 마주하게 됐다. 도료 제조사에 근무하고 있지만 수리 후에도 전혀 이질감 없는 색과 광택에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먼저 자동차 보수용 도료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외부 충격 등으로 손상이 된 부위에 판금 등 수리 시공을 한 뒤 그 위에 기존 색과 동일하게 도장하는 도료를 일컫는데 순서와 역할에 따라 하도, 중도, 상도로 나뉜다.
제일 먼저 작업하는 하도는 움푹 패인 부분을 메꾸고 건조 후 연마작업을 통해 매끈한 외형을 만들어 주는 것으로 퍼티를 주로 사용한다. 하도 작업 후 중도, 즉 프라이머 서페이서 작업은 차체 강판의 녹 발생을 방지하고, 색깔이나 광택을 내는 상도의 부착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화두가 되고 있는 베이스코트는 가장 마지막에 작업하는 상도로 우리가 눈으로 보는 자동차 색깔은 베이스코트 도료에 조색제를 섞어 도포한 것이다.
환경부는 국민의 건강을 지키고 우리나라 대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자동차 보수용 도료 중 상대적으로 사용량이 많은 베이스코트(컬러 페인트)에 대해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의 함유 기준을 강화했다. (420g/L → 200g/L 이하)
이는 국내 페인트 제조업체들이 모두 베이스코트 수용화 기술이 완료되면서 진행된 것으로, 이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희석제에 VOCs가 포함된 유성도료가 아닌 물과 희석해서 사용하는 수용성도료를 사용해야 한다. 법 제정 이후인 2022년 8월, 당시 환경부장관과 도료 제조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수성페인트를 생산, 유통하자는 취지의 ‘휘발성유기화합물 저감을 위한 자발적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도료업계는 자동차 보수용 베이스코트는 수성 제품만 유통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법 개정과 자발적 협약 이후에도 일부 제조 업체들은 유성 베이스코트 도료를 지속 생산, 공업용이라고 표기된 용기에 담아 자동차 보수용 전문 대리점에 제공하는 등 법과 협약의 취지에 맞지 않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렇다면 왜 자동차 보수용 대리점에서는 법적으로도 문제가 되는 유성 베이스코트를 선호하는 것일까? 이는 오랜 기간 공업사에서 유성베이스코트를 사용해 왔기 때문에 아직도 익숙한 기존 제품을 찾는 일부 공업사들이 존재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제조업체들은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유성베이스코트를 지속 생산해서 자동차 보수용 취급 대리점에 납품하고, 대리점은 공업사에서 유성을 찾기 때문에 불법인 것을 알면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유통시키고 있으며, 일부 공업사는 기존의 익숙한 방식을 고수하며 대리점을 통해 구매해 사용하고, 환경부는 단속이 어려워 유성베이스코트 사용이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과 문제점은 언론을 통해 여러 번 기사화됐지만 아직도 불법과 편법이 이어지고 있다.
사회는 법과 규칙과 약속을 잘 지켜 나감으로써 유지되고 발전된다고 생각한다.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업 현장에서도 법과 원칙을 지켜 나가야만 해당 시장도 건강한 생태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 자동차 보수용 시장도 모두가 수성베이스코트를 제조하고 유통하고 사용하는 건강한 생태계가 자리 잡기를 바라며, 접촉 사고의 아픔(?)을 딛고 예전보다 더 깔끔해진 내 차를 몰고 가을 드라이브를 즐겨본다.
노희준 (gurazip@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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