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에서 입양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김신성 2024. 10. 1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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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몇 개월 혹은 몇 년 만에 해외로 입양된 이들이 쓴 에세이집이다.

책은 입양인뿐만 아니라 입양인의 배우자와 아이들, 양부모, 친생 부모 등 해외 입양의 다양한 당사자들이 던지는 입양의 정당성에 대한 뼈아픈 질문이다.

"세계에서 해외 입양을 가장 오래, 가장 많이 해왔고 여전히 미혼모의 아이들을 해외로 내보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더 늦기 전에 추악한 진실을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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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양기록은 모두 거짓이었다”
해외 입양아 43명의 이야기 통해
입양의 정당성 대한 뼈아픈 질문

자기 자신의 목격자들/ 한분영·페테르 묄레르·제인 마이달·황미정/ 안철흥 옮김/ 글항아리/ 1만9500원

“제가 태어나던 날, 어머니는 저를 낳기 위해 가까운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겨우 25주 차, 그러니까 임신 6개월째로 접어들던 때였습니다. 어머니는 출산과 동시에 정신을 잃으셨고, 깨어났을 때는 제가 사산되어 의사들이 데려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의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아버지는 출타 중이었던 터라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 가시지도, 자발적으로 입양을 허락하지도 않으셨다고 합니다. …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났고, 친가족과 상봉한 뒤에 우리는 입양 기관과 고아원, 탐욕스러운 의사 등이 꾸민 끝없는 거짓말의 흐름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 잔인한 행동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52쪽)

‘자기 자신의 목격자들’은 해외 입양인들이 쓴 에세이집이다. 기막히게 억울하고 아픈 사연들을 담았다. 친어머니가 당신을 사랑해서 해외로 입양시킨 게 아니며 거래된 상품이었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이들의 세계는 무너지고 만다. 글항아리 제공
생후 몇 개월 혹은 몇 년 만에 해외로 입양된 이들이 쓴 에세이집이다. 마흔세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세상에 태어났지만 결과적으로 친부모에게, 가족에게, 국가와 사회에게 ‘없는’ 사람이 된 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입증하며 살아야 했다. 책 제목이 ‘자기 자신의 목격자들’인 이유다. 해외 입양은 국내 입양과 달리 언어, 관습, 문화, 정체성에서 극심한 차이를 겪게 하고 인종차별에 노출시킨다. 덴마크 21명, 노르웨이 5명, 네덜란드 4명, 미국 3명, 벨기에 2명 등 해외 입양인들의 기막히게 억울하고 아픈 사연들을 들려준다. 이 가운데 친부모와 재회한 이는 4명뿐이다.

입양은 입양 당사자만의 서사가 아니다. 입양 부모, 친생 부모, 입양인과 결혼한 배우자, 입양인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의 삶까지 바꿔놓는다. 책은 입양으로부터 영향받는 모든 이의 삶을 아우르고자 양부모, 친부모, 형제, 배우자, 자녀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입양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다.

행간에 숨어 있는 사랑, 돌봄, 배척, 신체적·정서적·성적 학대, 인종차별 등 수많은 상실감이 저절로 읽힌다. 각 글 마지막에는 글쓴이의 출생 연도, 입양 나이, 한국의 입양 기관, 입양 동의서 포함 여부, 사회적 경력을 붙여놓았다. 이 기록들 가운데 반복되는 문장 하나가 있다. “입양 동의서나 경찰 신고서가 입양 서류에 포함되지 않았다.” 모두 불법 입양이었던 것이다.

“내 입양기록은 거짓이었다. DNA 검사가 이를 확인해주었다. 미국 부모님이 나에 관해 사실이라 믿었던 모든 개인 정보는 잘못된 것이었다. 1982년 11월1일 나와 같은 날 태어난 다른 아이의 입양 서류를 건네받았다면, 내 입양 서류는 누가 가지고 있을까? 동방사회복지회에서는 착오라고 설명하지만, 다른 아이의 서류에 포함되어 있을 내 정보에 접근할 법적 권한은 내게 없었다. 동방사회복지회에서는 내가 합법적인 방법으로 다시 친가족을 찾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허탈감이 밀려왔다. … 한국에서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 보냈던 지난 수십 년 동안 서류가 뒤바뀐 사례는 얼마나 많을까?”(140쪽)

한분영·페테르 묄레르·제인 마이달·황미정/ 안철흥 옮김/ 글항아리/ 1만9500원
오랜 세월 미담으로 포장된 해외 입양의 민낯은 위조된 서류와 불법 절차, 인권 침해, 이익 추구를 위한 입양 기관과 권위주의 정권의 공모로 얼룩져 있다. 그 ‘거대한 인간 실험’의 피해자로서 존재의 근원에 대한 답조차 얻지 못하고 살아온 입양인의 삶은 스스로를 ‘생존자’라고 부를 만큼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책은 입양인뿐만 아니라 입양인의 배우자와 아이들, 양부모, 친생 부모 등 해외 입양의 다양한 당사자들이 던지는 입양의 정당성에 대한 뼈아픈 질문이다. 이 책이 드러내는 입양인의 고통은 과거사가 아니라 생생한 현재진행형이다. 책은 말한다. “세계에서 해외 입양을 가장 오래, 가장 많이 해왔고 여전히 미혼모의 아이들을 해외로 내보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더 늦기 전에 추악한 진실을 밝혀야 한다.”

저자들은 성인이 된 후 아무 연고도 없는 한국 땅을 찾곤 한다. 직장을 다니다 휴가를 내 한국에 잠시 와 머물다 간다. 이들은 난생처음 안도감을 느낀다. 한국 여행이 이들에게 치유의 감정을 주기 때문이다. 여행의 고정 코스 중 하나는 입양 기관 방문이다. 이들은 백지상태의 서류를 마주한다. 혹은 조금 두꺼운 서류를 들춰보다가 허위 기재임을 깨닫는다. 지금까지 해외 입양의 서사는 입양 부모의 시선에서 구성되어왔다. 저자들은 진실된 서사를 재구축하고 싶어 함께 글을 썼다.

“우리는 흔적 없이 사라졌다. 태어나는 순간 어머니와 떨어졌고 낯선 땅으로 보내졌다. 이 책은 산산이 부서진 우리의 첫 번째 목소리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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