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한강, 그리고 린드그렌
“어렸을 때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책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무척 좋아했다. 그가 내 어린 시절에 영감을 준 유일한 작가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나는 그 책을 인간이나 삶, 죽음에 관한 나의 질문들과 결부지을 수 있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된 지난 10일, 소설가 한강은 노벨 위원회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웨덴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당신 영감의 원천 중 하나라고 하는 글을 읽었는데”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죠.
‘말괄량이 삐삐’를 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또 다른 대표작 ‘사자왕 형제의 모험’(1973)은 1983년 창비 아동 문고 중 한 권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어요. 이야기의 주인공인 형제의 성(姓)은 ‘레욘’, 곧 ‘사자’라는 뜻입니다. 열세 살 형 요나탄은 다재다능한 미소년, 열 살인 동생 카알은 병약하고 다리를 접니다. 카알 혼자 집에 있는 날 집에 불이 나자 요나탄은 뛰어들어가 카알을 업고 2층 창문에서 뛰어내립니다. 동생은 살고 형은 숨지지요. 요나탄의 용맹함을 기린 학교 선생님이 그를 ‘사자왕 리처드’에 비기며 ‘사자왕’이라 명명합니다.
슬픔에 빠진 카알에게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 요나탄이 가 있는 환상의 나라 낭기열라로 인도합니다. 재회한 형제는 낭기열라를 지배하려는 괴물과 맞서 싸우고, 그 과정에서 요나탄이 치명상을 입자 이번엔 카알이 형을 업고 낭떠러지 아래로 뛰어내려 또 다른 사후세계 낭길리마로 향합니다. 한강이 이 책을 생사에 관한 질문과 결부시킨 건 이런 줄거리 때문이겠죠.
덴마크 전기작가 예스 안데르센은 린드그렌 평전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에 “‘사자왕 형제의 모험’이 외로움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는 작가의 말을 많은 이가 간과했다”고 적었습니다.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더 이상 연약한 겁쟁이가 아닌 카알은 말합니다. “그 누구도 혼자 남아 슬피 울면서 두려움에 떨 필요가 없어.”
몽상을 즐기던 조용한 소녀가 어떻게 한국에 첫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작가로 자라났는지, 삶과 죽음, 그리고 외로움에 대한 이 동화에 힌트가 있을 겁니다.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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