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승부수, 매수가 89만원으로 인상
고려아연은 이날 자기주식(자사주) 매수가를 주당 83만원에서 89만원으로 인상한다고 공시했다. 자사주 매입 수량도 기존 전체 발행 주식의 약 15.5%(320만9009주)에서 17.5%(362만3075주)로 확대했다. 베인캐리탈 물량 2.5%를 더해 총 20%를 사들이겠단 목표다. MBK·영풍 측의 주당 83만원보다 가격을 확실히 높이고, 매수 물량도 확대해 청약 불발을 우려하는 투자자의 불안을 해소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최 회장 측은 이날 영풍정밀 공개매수 가격도 올렸다. 최 회장 등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제리코파트너스는 영풍정밀 공개매수가를 기존 3만원에서 3만5000원으로 인상한다고 공시했다. MBK 측 공개매수가 3만원보다 5000원 더 높였다. 제리코파트너스의 매수 수량은 발행 주식 총수의 25%에서 35%로 확대했다. 현재 영풍정밀은 최씨 일가가 지분 35.31%를, 장씨 일가가 21.25%를 보유하고 있어 최씨 일가가 약 15%만 추가해도 과반이 된다.
영풍정밀은 고려아연 지분 1.85%를 보유해 이번 분쟁의 ‘캐스팅 보트’로 꼽힌다. 고려아연 측은 공개매수가 인상에 대해 “시장 상황과 금융당국의 우려를 경청하고 이사회에서 거듭된 고민과 토론 끝에 내린 것”이라며 “공개매수 이후 투자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고려해 물량을 확대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양측의 공개매수가 경쟁은 거의 마무리됐다. 앞선 9일 MBK·영풍은 “공개매수가를 더 이상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최 회장 측의 공개매수가가 더 높지만, 그렇다고 승리를 장담하기는 아직 이르다. MBK·영풍은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 절차를 중지해달라고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낸 상태다. ‘고려아연의 공개매수에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는 취지로 공세를 펴고 있다. 공개매수 종료일도 MBK·영풍은 14일로 최 회장 측 종료일(고려아연 23일·영풍정밀 21일)보다 빠르다.
매수 물량도 변수다. 고려아연의 매수 물량은 최 회장 측이 많지만, 영풍정밀 매수 물량은 MBK 측이 더 많다. 주주 입장에선 모든 물량을 한쪽에 넘기지 못할 가능성 때문에 양측에 나눠 청약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고려아연 경영진은 국가기간산업을 지킨다는 명분에서 MBK·영풍 측보다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산업계에서는 MBK·영풍이 고려아연 경영권을 가져가면 국내 황산·아연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반도체·철강·건설 등 주요 산업 분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경영권이 넘어가면 당장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의 최고기술책임자(CTO) 등 핵심 기술 인력의 이탈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온산제련소는 국내에서 반도체 제조 공정에 꼭 필요한 황산을 가장 많이 생산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에 공급하고 있다. 철의 부식 방지 등에 쓰이는 아연 역시 고려아연이 국내 수요의 56%를, 영풍이 30%를 담당하고 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은 18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업들에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한 적이 없다”며 “그럴 일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려아연은 장치산업이고 노동자 한 명, 한 명이 갖고 있는 노하우와 지식이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회사”라며 “1인당 부가가치가 높은데 구조조정을 해서 무슨 득을 보겠나. 그분들이 가진 숙련도와 오래된 기술, 경험이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MBK·영풍이 동원한 자금에 중국 연기금인 중국투자공사 자금 일부가 포함돼 있어 고려아연의 핵심 기술이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는 “고려아연은 비철금속 세계 1위의 제련기업이고, 반도체·2차전지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자원을 공급하는 기업으로 균열이 생기는 것은 국가 경제에도 치명적인 위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같은 관점에서 고려아연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안덕근 산업통산부 장관은 7일 국정감사에서 “고려아연은 국가산업이고, 고려아연이 가진 제련 기술은 매우 중요한 기술”이라고 밝혔다.
다만, 중국 자본과 기술 유출 우려 등에 대해 MBK·영풍은 ‘억측’이라는 입장이다. MBK·영풍 측은 “MBK파트너스는 중국계 펀드가 아니며 MBK파트너스에 출자하는 유한책임투자자(LP)들은 국내 및 세계 유수의 연기금과 금융기관”이라며 “중국계 자본이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배현정·최선을 기자 bae.hyu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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