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말로 한강을 읽을 시간
그중 『채식주의자』(2007)는 스웨덴 노벨위원회의 표현을 빌리면 작가 한강의 “주요 국제적 돌파구”가 된 작품. 평범한 주부였던 주인공 영혜는 고기를 먹지 않기로 하면서 남편과 아버지의 강압을 비롯한 폭력적 상황에 처한다. 데버라 스미스의 번역으로 나온 영문판 (『The Vegetarian』)은 큰 호평과 함께 2015년 영국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서 수상하며 한강에게 국제적 주목을 안겨줬다.
『소년이 온다』(2014)는 광주에서 나고 자란 한강이 작가로서 5·18 광주를 정면으로 응시한 작품. 1980년 5월 열다섯 살의 주인공 동호는 끝까지 도청을 지키다 계엄군의 총에 쓰러진다. 노벨위원회는 “역사의 희생자들에게 목소리를 내게 하려는” 증인문학의 장르에 접근하는 동시에, 한강의 간결하고 환상적인 스타일이 “그 장르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벗어나게” 한다고 봤다. 노벨위원회는 “죽은 자의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되어 자신의 소멸을 목격하게 하는” 독특한 방식을 언급하며, 소포클레스의 고전 『안티고네』의 모티브와도 견줬다.
『흰』(2016)은 그 사이에 출간된 작품. 이 소설의 ‘나’에게는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숨진 ‘언니’가 있다. 배내옷과 수의를 비롯해 여러 흰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이 작품을 노벨위원회는 “소설이라기보다 일종의 ‘세속적인 기도서’”라고 표현했다. 이에 앞서 출간된 『희랍어 시간』(2011)은 말을 잃어가는 여자와 희랍어 강사이자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의 이야기. “상실, 친밀감, 그리고 언어의 궁극적인 조건에 관한 아름다운 명상”이라고 노벨위원회는 평했다.
이런 한강의 작품을 두고 ‘시(詩)적인’이라는 형용사가 자주 동원된다. 그는 소설가 이전에 시인으로 출발했다. 1993년 ‘문학과 사회’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학계에 데뷔했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2013)는 등단 이후 20년 만에 나온 첫 시집.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시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스웨덴 측에서 공식 발표에 앞서 노벨상 수상 소식을 알려왔을 때, 작가 한강이 아들과 막 저녁을 마친 참이었다는 얘기가 떠오른다.
“인간의 내면, 삶에 대한 의문을 깊숙이 파고 들어 생생하게 보여주는 데 문학만한 예술은 없다. 언어는 완벽하지 않지만 그만큼 유용한 도구도 없다. 살아 있는 인간을 가깝게 느끼고 싶다면 역시 답은 문학이다.” 한강이 단편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으로 2015년 황순원 문학상을 받으며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지금 한강의 문학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그의 문학은 산 자와 죽은 자의 목소리를 모두 아우른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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