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병력 급감 속 병역 대상자 한 해 4000명 국적 포기, 문제 없나
2020년부터 지난 8월까지 한국 국적을 포기한 18~40세의 병역 의무 대상자가 1만9607명에 이른다고 한다. 최근 5년간 2만명, 한 해 4000명쯤이다. 2014년 27만4292명이었던 현역병 입영자는 지난해 18만7188명으로 감소했다. 10년도 안 되는 기간에 약 8만7000명이 줄어들었다. 이처럼 저출산으로 병역 자원이 급감하는 가운데, 매년 4000명이 국적 포기를 하고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국적 포기로 병역을 이행하지 않은 사람도 41세부터는 F-4 비자를 받아 한국에서 경제 활동을 할 길이 열려 있다. 부모와 함께 외국에 이주해 영주권 등을 취득한 경우에는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도 병역을 사실상 면제받을 수 있다. 한국에서 1년에 6개월 이상의 장기 체류를 하지 않고 계속 외국에 머무르면 만 38세에 병역 의무가 사라진다.
싱가포르에서는 군 복무를 하지 않고 국적을 포기하는 것 자체가 우리보다 훨씬 어렵다. 싱가포르 사회가 제공하는 어떤 혜택도 누린 적이 없다는 사실이 입증돼야만 국적 포기가 허가된다. 어릴 때 부모를 따라 이민을 갔어도 싱가포르 여권을 사용해 여행을 다녔다든가, 싱가포르에서 유치원을 다녔다면 국적 포기가 허락되지 않는다. 이 상태에서 계속 외국에 머물며 군 복무를 하지 않으면 ‘탈영병’으로 간주된다. 부모를 따라 이민을 가서 제3국 시민권을 취득한 뒤 싱가포르를 방문한 청년이 공항에서 바로 체포돼 실형을 선고받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만 40세 이하라면 징역과 별도로 군 복무도 해야 한다. 만 40세가 넘으면 군 복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더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
싱가포르는 자국민 외에 만 40세 이하의 영주권자 남성에게도 병역의 의무를 부과한다. 병역을 피하기 위해 국적이나 영주권을 포기하면 그 이후에는 싱가포르에서 학업이나 취업, 장기 체류를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싱가포르에서 사회 활동을 하려면 무조건 군 복무를 하라는 뜻이다.
싱가포르의 역사와 여건은 한국과 다르다. 우리 경우엔 병역 대상자 중 국적 포기자에 대한 불이익을 강화하기 앞서 군 복무자에게 실질적 혜택을 주는 방안을 우선해야 한다. 그러나 군 입대를 피해 외국에 머물렀던 이들이 뒤늦게 한국에 와서 병역 의무를 다한 사람들과 실질적으로 아무런 차이 없이 활동하고 살 수 있는 제도는 이제 더 이상 안 된다. 나라가 그럴 형편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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