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눈에 밟히고, 서로 기대고, 곁을 내주고
첫 작업은 쪽방촌 두 남자의 삶을 담은 사진 시리즈 ‘눈에 밟히다’였다. 한때 산업역군이었으나 사우디에서 돌아와 건설노동자로 노숙자로 쪽방촌 사람으로 불리게 된 박씨는, 옆방 팔순 노인이 자꾸 눈에 밟혔다. 거동이 불편해 끼니조차 못 챙기는 그를 위해 밥상을 합쳤다. 오래 혼자였던 두 사람에게는 판자벽 너머 서로의 숨소리도 위안이었다. 타인에서 한솥밥을 먹는 식구로, 돈의동 쪽방촌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두 남자의 나날을, 이강훈은 일 년 넘게 맴돌며 사진에 담았다. 한 번 본 그들이 자꾸만 ‘눈에 밟혀서’ 시작된 일이었다. 그 사진들이 2011년 한겨레가 뽑은 ‘올해의 사진가’ 수상작이 되면서, 타인 가족의 개념을 주목케 했다.
두 번째 작업은 성수동 반지하에 사는 두 노인의 삶을 기록한 ‘서로 기대다’였다. 각자 곡절 끝에 만난 임 할머니와 이 할아버지는 ‘남은 생을 서로 의지하며 살자’고, 결혼식도 혼인신고도 없이 달동네 작은 방들을 옮겨 다니며 함께 산 세월이 40년이다. 없는 것 투성이의 삶이지만, 그래도 ‘서로’가 있다. 함께 사는 이가 있으니 기초생활수급 대상에 못 들어도 서로를 포기할 수는 없다. ‘서로 기대다’는 두 노인의 초상을 통해, 우리 삶에서 ‘서로’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를 되뇌게 했다.
이처럼 기존의 가족이 아닌, 사회적 인연의 테두리에서 만난 다른 형태의 가족 관계들에 시선을 두어 온 작가의 세 번째 시리즈가 ‘곁을 내주다’다.
순창에 귀촌한 젊은 농부 한재희씨와 아내는 서로에게 뿐만 아니라 마을 어른들에게도 ‘곁을 내어주고’ 함께 살아간다. 남편은 어르신들 부탁을 쫓아다니느라 농사일은 뒷전이기 일쑤다. 아내 또한 식당 일로 가쁜 하루를 보내면서도 홀로 지내는 어르신들을 외면치 못한다. 이강훈의 눈에, 살갑고 바지런한 부부를 중심으로 온 마을이 가족 공동체처럼 살아가는 모습은 낯설면서도 소중했다. 5년 동안 숱하게 순창을 오가며 그들의 삶을 응시하고 사진으로 옮겼다.
시리즈의 제목들은 두 단어가 합쳐져 새로운 비유로 확장된 관용어들이다. 작가는 제목처럼, 타인 가족이라는 아름다운 관계를 통해 ‘눈에 밟히고, 서로 기대고, 곁을 내주는’ 삶의 가치를 세상에 전하고 싶은 듯하다.
박미경 류가헌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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