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은 지나갔다

정민경 기자 2024. 10. 1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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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넷플릭스의 서바이벌 경연, 자꾸 1등보다 2등에게 눈길이 간다
실력과 패기 넘친 1등보다 스토리와 인간미 보여준 2등에 관심

[미디어오늘 정민경 기자]

▲지난 7일 흑백요리사 마지막 방송을 앞두고 한 기자간담회에서 에드워드리 셰프의 모습. 사진출처=넷플릭스.

넷플릭스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묘하게 '2등'이 '진짜 1등' 같은 느낌을 주는 결말이 반복되고 있다. 넷플릭스 코리아 예능 최초로 3주 연속 글로벌 1위 기록을 세우며 흥행의 중심에 선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서 1등을 차지한 흑요리사 '나폴리 맛피아'보다 오히려 2등인 '에드워드 리'에게 더 큰 관심이 몰리고 있다.

'흑백요리사'는 흑과 백, 계급과 권력을 상징하는 듯한 설정의 경연 대회이다. 참가자들이 흑과 백으로 나뉘어 요리 대결을 벌였고, 최종적으로 흑요리사가 1등을 차지했다. 물론 흑요리사는 대결 과정에서 뛰어난 요리 실력을 보여줬지만, 그가 보여준 패기 넘치는 모습은 위트로 다가서기 보다 거만하다고 느낀 시청자들이 많았다.

9일 나폴리 맛피아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7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우승 소식을 어렵게 숨기다 막판에 저도 모르게 들떴고 어린 나이가 아님에도 어리게 행동하고 생각했다”며 “방송을 계기로 겸손해지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고 대단하신 셰프님들께서도 항상 겸손하고 잘난 체 하지 않는 모습들을 보고 많은 것들을 느꼈다”고 고개를 숙였다.

반면 2등을 한 에드워드 리가 펼친 스토리텔링과 한국 음식에 대한 창의적인 해석, 겸손하고 진정성 있는 태도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에드워드 리의 활약은 1등과의 대조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면서 룰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나폴리 맛피아'가 인생 요리 대결에서 승리하면서 어쩌면 프로그램의 백미였던 '두부 대결'에 참여하지 않고 올라간 룰 때문이다. 결승에 오르기까지 다른 참가자들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경쟁을 치렀다는 점에서, 우승자보다는 2등이 더욱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이러한 과정에서 1등보다 2등의 매력이 더 자세하게 드러났다.

▲ 넷플릭스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제공

사실 룰의 문제는 결승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었다. 중간 대결에서도 흑과 백 요리사들이 11:11, 4:4, 그리고 1:1 식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부자연스럽다는 지적이 나왔다. 제작진이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특히 흑요리사들만 패자부활을 하면서 숫자가 맞춰지는 장면에선 제목이 '계급 전쟁'이기에 제작진이 흑요리사의 우승을 밀어주기 위해 대결 구도를 의도적으로 설정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이런 논란을 의식한 탓인지 결승 직전인 7일 '흑백요리사 TOP8 간담회'에서는 기자들 질문이 이뤄지기 전에 진행자인 박경림이 관련 질문을 하고, 제작진이 룰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셰프들도 백종원 심사위원과 안성재 셰프의 성격을 언급하면서 “제작진들이 하라는 대로 할 사람들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승부에 개입이 없었음을 강조했다.

[관련 기사: 흑백요리사 PD “요리사 100인, 넷플릭스 아니면 불가능”]

실력과 패기 넘친 1등보다 스토리와 인간미 보여준 2등에 관심 몰려

이번 '흑백요리사'의 경우, 일반적으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는 '언더독', 즉 '흑수저'라고 불리는 참가자들이 더 많은 지지를 받는 경향이 뒤집혔다는 것이 흥미롭다. 대개 사람들은 언더독, 흑수저의 고군분투와 노력에 감동을 받는다. 그러나 이번 '흑백 요리사'에서는 오히려 '백수저'로 상징되는 에드워드 리에 대한 응원이 더 컸다. 에드워드 리는 성공한 요리사로서 이미 많은 경력을 쌓았지만, 그의 진정성 있고 겸손한 태도는 흑요리사의 거만한 모습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런 시청자들의 반응은 흑백 대결이라는 프로그램의 구조 속에서 '흑'이 승리해야 한다는 전제에 대한 반발로도 읽을 수 있다.

넷플릭스의 경연 프로그램에서 2등이 1등 같이 보이는 현상은 계속 반복되고 있다. 지난 8월 공개된 넷플릭스의 '더 인플루언서'에서도 2등이었던 참가자 이사배가 1등이었던 오킹 보다 더 매력적인 경연을 펼쳤고 진짜 인플루언서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심지어 1등인 오킹이 우승자 스포일러를 하는 바람에 3억원의 상금이 지급되지 않았다.

[관련 기사: 넷플릭스 '더 인플루언서' 진짜 승자는 따로 있다]

서바이벌 경연 프로그램에 대해 사람들은 항상 우려를 가지고 있다. 무언가를 사랑해서 재미있게 즐기기보다 참가자들을 줄세우고 비교하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룰 때문이다. 또한 이 룰 역시 제작진들이 만드는 것이 때문에 언제나 공정성 논란이 따라온다.

그러나 '더 인플루언서'와 '흑백요리사'에서 보여줬듯 서바이벌 경연에서 사람들은 1등이라는 타이틀만 주목하지 않는다. 결과보다는 각 과정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줬는지, 그동안 참가자가 쌓아온 인생을 경연을 통해 어떻게 잘 보여주는지에 주목한다. '흑백요리사'가 남긴 것은, 자신만의 매력과 스토리를 가진 사람이라면 1등을 하지 않아도 모두가 기억한다는, '서바이벌 경연대회'의 모순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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