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성범죄와 인터넷 감청
다음주의 질문

한겨레가 ‘딥페이크(불법합성) 성범죄’ 문제를 보도한 지 50여일이 지났다. 큰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늘 그렇듯 대통령은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 뽑겠다”고 선언했고, 정치인들은 경쟁적으로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아동·청소년 대상 딥페이크 성범죄물은 시청만 해도 처벌하게 됐고 일부 범죄는 처벌 수위도 올라갔지만, 대책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은 좀체 줄지 않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 대책이 쳇바퀴를 도는 이유는 논의가 문제의 주변부에만 머무는 탓이다. 그동안 논의의 주안점은 △주요 범행 장소였던 ‘텔레그램’과의 수사 협조 △디지털 성범죄물 차단·삭제 실효성 △디지털 성범죄 처벌 강화에 맞춰져왔다. 모두 중요한 과제지만, 경찰이 피의자를 특정하고 검거하는 데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근 텔레그램이 이용자 정보보호 정책을 전향적으로 변경하면서 관심을 모으기도 했지만 큰 의미는 없다. 가해자들이 또 다른 보안 플랫폼으로 옮겨가 범죄 행위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에 서버를 둔 성범죄물 유통 채널 ‘소라넷’이 2016년 국제공조 수사를 통해 폐쇄된 뒤 디지털 성범죄는 다크웹과 텔레그램 등으로 장소만 옮겨 진화한 사례도 있다. 한 경찰청 관계자도 “이미 논란이 커진 뒤 텔레그램 성범죄물 공유방은 줄줄이 폭파됐다”며 “범죄자들은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 가면 그만이라 텔레그램 규제가 핵심은 아니다”라고 했다.
성범죄물 차단·삭제 조처도 분명 필요한 절차지만 피의자 검거와는 무관하다. 게다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국내 인터넷서비스 사업자를 통해 인터넷 성범죄물이 유포된 온라인 주소(URL)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차단하기만 할 뿐, 온라인상에 퍼진 성범죄물을 지워주진 못한다. 특히 국외 서버를 기반으로 한 플랫폼에는 ‘차단 요청’을 할 수 있을 뿐인데, 방심위와 ‘핫라인’을 구축했다는 텔레그램 역시 문제가 된 대화방과 계정을 삭제해주는 것에 그치고 있다.
사실 현재 디지털 성범죄 논의의 최전선은 ‘사이버범죄 수사력 강화’에 있다. 여전히 전통적인 수사 기법에 발이 묶인 경찰에 어떤 권한을 얼마나 어떻게 부여할지 구체적으로 논의할 시점이다. 지난달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은 가장 대표적인 전장이다. 현행법은 국가보안법 위반 등 280개 범죄에 한해 인터넷회선 감청(통신 제한조치)을 허용하는데, 여기에 성폭력처벌법과 청소년성보호법에 규정된 범죄를 포함하자는 게 개정안의 핵심이다. 지난달 23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접수된 이 법안 하나에만 입법 예고 기간 열흘 동안 무려 7만6460개의 찬반 의견이 달렸다.
뜨거운 논란 속에서 2018년 통신비밀보호법 ‘인터넷회선 감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은 다시 한번 읽어볼 만하다. 당시 헌재는 인터넷회선 감청에 대한 ‘통제 장치’가 부족하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인터넷회선 감청 자체의 필요성은 인정했다. “오늘날 인터넷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국가와 공공의 안전, 국민의 재산·생명·신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 수사에 필요한 경우 허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성범죄는 헌재가 말한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에 포함될까? 이는 결국 국회가 디지털 성범죄를 얼마나 무겁고 심각하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지혜 이슈팀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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