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를 '보조전력원'으로···V2G시대 온다[지구용 리포트]

유주희 기자 2024. 10. 1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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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용화 앞둔 전기차 양방향 충전
가정서 끌어다 쓰고 판매도 가능
전력시장 안정·재해대비 등 활용
글로벌 기업들 시장 선점경쟁 속
캘리포니아 美 첫 V2G 법안통과
"韓도 배터리 전력거래체계 시급"
[서울경제]

전기차에 저장된 전기를 마음대로 꺼내 쓸 수 있다면, 여차하면 내다 팔 수 있다면 어떨까. 전기차 배터리를 마치 보조 배터리처럼 쓸 수 있는 기술은 이미 상용화 직전 단계까지 개발돼 있다. 전기차 보급 및 재생에너지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미국 일부 주와 유럽, 지진 대비책 중 하나로 비상 전원의 중요성이 큰 일본에서 특히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산업계의 물밑 경쟁도 치열하다.

11일 외신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 의회는 올 8월 미국 최초로 V2G(Vehicle To Grid) 기능 의무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2030년부터 캘리포니아에서 판매되는 전기차는 V2G의 핵심인 양방향 충전 기능을 갖춰야 한다. V2G는 전기차 배터리에 충전해둔 전력을 다시 전력망으로 내보내는 기술이다. 전기요금이 저렴한 시간대에 전기차 배터리를 충전해놓았다가 전기요금이 비싼 시간대에 판매해 수익을 낼 수 있다. 이는 전력망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특히 일조량·풍량 등에 따라 발전량이 들쑥날쑥한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보완하고 에너지를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전기차 배터리의 전기를 보낼 수 있는 목적지는 전력망 외에도 다양하다. 캠핑 장비, 전자기기, 공구류 등에 전력을 공급하는 V2L(Vehicle To Load), 집이나 건물 전체에서 사용하는 V2H(Vehicle To Home)와 V2B(Vehicle To Building) 등도 V2X(Vehicle To Everything) 세계관의 일부다. 낮에는 주택이나 건물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발전 패널에서 전기를 생산해 전기차 배터리에 저장해뒀다가 저녁에 뽑아 쓸 수 있다. 물론 전기가 떨어져 움직이지 못하는 다른 전기차를 구조하는(V2V) 일도 가능하다.

완전 충전한 전기차 배터리 한 개에는 대략 60㎾h(킬로와트시)가량의 전력이 저장된다. 4인 가구가 이틀 정도 쓸 수 있는 양이다. 미국 로체스터대의 연구에 따르면 V2X 덕분에 전기차 소유주 1인당 연간 최대 150달러(약 20만 원)의 전기요금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 전기차 대부분이 거의 하루 종일 주차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매력적인 아이디어다. 미국 에너지부는 자국 전기차가 주차돼 있는 시간이 하루 24시간 중 평균 95%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V2X의 잠재력에 주목한 기업들은 이미 다양한 사업을 시도하고 있다. 현대차는 ‘세계 최초 양방향 도시’를 슬로건으로 내건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시와 손잡고 아이오닉5를 활용한 V2G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사업에서 아이오닉5는 주민들이 이용하는 공유자동차이자 주차 중에는 시 전체를 위한 배터리의 역할을 맡는다. 현대차 관계자는 “V2G가 활성화되면 재생에너지의 변동성 감소와 전력망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다”며 “앞으로도 관련 기술을 꾸준히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상발전소(VPP) 사업에 주목해온 현대건설은 올해부터 현대차·기아 및 포티투닷, 식스티헤르츠, LG유플러스, 에버온, 제니스코리아 등 총 15곳과 컨소시엄을 꾸려 380억 원 규모의 V2G 상용화 연구를 개시했다. 2028년까지 충·방전기 1500기, 전기차 1000대가 연구에 활용될 예정이다. SK렌터카는 한국전력과 손잡고 제주도에서 2025년까지 V2G 실증 사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수년 내로 전기차와 주택·건물·전력망 등을 잇는 다양한 사업 모델을 발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해외에서는 테슬라가 전방위적인 V2X 서비스 체계를 구축 중인 가운데 폭스바겐·혼다·닛산 등이 유럽과 일본에서 V2H·V2G 시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다만 국내에는 V2G를 뒷받침할 제도가 부재한 상황이다. 전기차 배터리의 전력을 사고팔기 위해서는 전기차 배터리도 태양광, 풍력, 에너지저장장치(ESS) 같은 소규모 분산전원으로 규정하고 등록과 전력거래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올 6월 시행된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에도 이러한 내용은 담겨 있지 않다. 기후테크 스타트업인 식스티헤르츠의 김종규 대표는 “V2X 기술은 이미 완성돼 있지만 제도가 ‘0’인 상태”라며 “수년 내로 의미 있는 사업 모델이 나올 수 있으려면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주희 기자 ginge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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