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으로 페미니즘 넘기까지…김미현의 계속되는 ‘더 잘 실패하기’ [책&생각]

임인택 기자 2024. 10. 1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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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는 여성문학의 빅뱅기다.

세기 전후 비평 현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가 국문학자 김미현(1965~2024)이다.

페미니즘 문학 연구와 현장 비평에서 그가 남긴 족적은, 일군의 여성 문학자들이 12년에 걸쳐 지난 7월 완성한 '한국 여성문학 선집'(총 7권)의 알짬을 김미현의 앞선 논고들이 꿰뚫는다는 점으로도 잘 설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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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가 연구실에서 찍은 고 김미현 교수. 민음사 제공

더 나은 실패
김미현 지음, 강지희 엮음 l 민음사 l 2만2000원

1990년대는 여성문학의 빅뱅기다. 세기 전후 비평 현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가 국문학자 김미현(1965~2024)이다. 당대 페미니즘 평론의 품 넓은 출처.

2000년대 초입, “현재의 여성문학은 자신에게 걸려 있는 마술을 풀거나 필요 이상으로 과대 포장된 거품을 빼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고 일침을 놓은 김미현의 비평글 제목은 ‘이브, 잔치는 끝났다’이다. 이론이 아닌 작품, 배제가 아닌 보편, 젠더가 아닌 인간 본위로의 문학적 도약을 여성문학에 요청했다. 한 세기에 달하는 한국 여성문학사를 수십 쪽 분량의 논고로 관통하며 “우리는 그동안 작가보다 여성을, 그리고 여성 문학 자체보다 여성 문학이라는 환상을 더 좋아하며 잔치를 벌였던 것은 아닐까” 던진 질문으로 내부자적 반성과 성찰, 열망과 기대를 농축한다. 이 글이 담긴 비평집 ‘여성문학을 넘어서’(2002)의 주제가 피해자·안티테제의 페미니즘이 아닌 향유의 페미니즘으로의 지향일 것이다.

위 논고와 함께 김미현의 평론 10편과 에세이 등을 엮은 ‘더 나은 실패’가 출간됐다. 이화여대 국문과에서 23년간 가르치다 지난해 가을 58살 나이로 별세한 김 교수의 1주기 추모선집으로, 후학인 강지희 문학평론가(한신대 교수)가 추리고 의미를 보탰다. 페미니즘 문학 연구와 현장 비평에서 그가 남긴 족적은, 일군의 여성 문학자들이 12년에 걸쳐 지난 7월 완성한 ‘한국 여성문학 선집’(총 7권)의 알짬을 김미현의 앞선 논고들이 꿰뚫는다는 점으로도 잘 설명된다. 작품과 조류를 톺으며, “20세기를 통과하면서 여성은 여성이면서도 여성이기를 ‘거부’해야 했고(제1기의 박화성), 그다음에는 여성이기를 ‘주저’해야 했으며(제2기의 강신재), 또 그 이후에는 여성이기를 ‘주장’해야 했다(제3기의 박완서)”고 갈음하는 데서, 김미현의 논리와 비유와 문체에 대한 ‘문학·자적 품새’가 선연하다.

페미니즘으로만 김 교수가 설명되진 않는다. 세기말 문학에서의 ‘성’에 대한 직시(‘섹스와의 섹스, 슬픈 누드’, ‘불한당들의 문학사’)는 물론, 당대 주류 남성 소설을 한데 놓고 이문열 외 “보수성이나 계몽성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것 같은” 김훈·박민규의 소설에서도 공히 발견되는 ‘가부장적 환상’을 비판하는 ‘수상한 소설들-한국소설의 이기적 유전자’ 등은 거침없다.

‘이브, 잔치는 끝났다’가 2020년대 쓴 ‘포스트휴먼으로서의 여성과 테크노페미니즘’으로 진일보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 같다. 혼종, 탈경계, 무질서의 질서에 관한 문학적 사고실험은 계속되어, 김미현의 비평도 후진에 의해 여전히 쓰이므로, 그렇게 내년 김미현은 평론 등단한 지 30년을 맞겠다. “인문학을 전공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배고픈 일인지 적나라하게 말씀하시고는, 일자리는 보장할 수 없어도 평생 읽고, 쓰고, 말하는 능력으로 먹고살 수 있게 키워줄 테니 ‘나만 믿고 따라오라’ 하셨다”는 후진 중 한 명의 추도사대로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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