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면] 송이에 눈멀다

2024. 10. 11. 17:2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년간 벼르고 벼른 송이 산행
유난히 긴 무더위 탓 결국 허탕
'송이앓이' 하는 한국인 많지만
정작 버섯고장 中 원난성에선
'못난이' 취급받으며 외면받아
사람들의 맛에 대한 선호도는
때론 유전자에 새겨지는 듯

3시간 동안 산을 샅샅이 뒤졌다. 함양 지리산 인근 가파른 소나무 숲. 경사진 면을 헉헉대고 오르면서 정상까지 훑었지만 송이는 결국 나오지 않았다. 올해도 송이는 물 건너가는구나. 허탈하게 앉아서 쉬는 데 저 멀리 거뭇거뭇한 버섯 군락이 보인다. 가까이 가보니 일행이 굽더더기버섯이라고 일러준다. 굽더더기버섯은 송이와 생육 조건이 똑같아서 그 근처에 반드시 송이도 있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없었다. 정말 송이가 말랐구나. 지난해 수확량에 비해 올해 수확량이 3%에 그친다는 뉴스 보도가 실감 났다. 굽더더기라도 따 갈까 해서 봤더니, 너무 활짝 핀 데다 안쪽에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살이 통통하고 쌉쌀해 편으로 썰어 소금장에 찍어 먹으면 기가 막힌다는 굽더더기조차 하나도 건지지 못했다. 하산 길에 어디 눈먼 능이라도 없나 참나무 밑을 기웃댔지만 보일 리가 없지.

송이 산행은 지난해에도 허탕이었다. 그래서 1년을 벼르고 온 길이었다. 지난해엔 늑장 부리다 때를 놓쳐서 그랬다지만, 올해는 여름이 너무 길고 더웠다. 그래서 반쯤 포기하고 올랐지만 막상 빈손으로 내려오니 허탈해서 읍내 시장에 나가봤다. 비싸디비싼 송이 구경이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에. 하지만 시장 좌판에도 송이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지난 2년간 송이 이야기만 무지하게 많이 들었다. 송이는 어릴 때 먹어보곤 수십 년 동안 잊고 살았는데, 고향 뒷산이 송이밭이라고 자랑을 하는 동네 이웃을 잘못 만난 이후 송이앓이가 시작됐다. 귀한 만큼 재미난 전설이 얼마나 많겠는가. 온갖 무용담을 듣는 동안 내 안의 간절함은 점점 커져갔다. 유튜브에 송이 채취 영상은 왜 그리 많이 올라오는지…. 세 번째 허탕을 치니 이제 송이는 내게 '물신(物神)'이 되었다. 너무 고귀한 존재다. 참 그깟 송이가 뭐라고.

한국 사람들은 송이, 송이 하지만 중국 윈난성에 가면 송이는 그리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온갖 버섯이 만발하는 윈난성은 버섯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윈난 출신 작가가 그곳 버섯 21종에 얽힌 이야기를 재미나게 풀어낸 책을 읽었는데, 이곳 사람들은 4월이 되면 하늘만 쳐다본다고 한다. 빨리 비가 내려야 5월부터 본격적인 버섯시즌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윈난의 버섯 미식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버섯의 식감과 고유의 맛을 잘 살리는 고급 요리가 즐비하다. 독버섯도 많기 때문에 윈난 민간에서는 "머리에 모자를 쓰고, 허리에 치마를 두르고, 발에 신발을 신은 버섯은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고 어려서부터 아이들을 교육시킨다. 치마를 두른 것은 그 유명한 맹독성의 광대버섯이다.

비록 독 성분이 있어도 잘 우리고 잘 익혀서 먹을 수 있는 버섯도 많다. 대표적인 게 버섯시즌의 초반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우간균(牛肝菌)'이다. 한국에서 그물버섯이라 부르는 이것은 씹을 때 소의 간과 비슷한 식감을 낸다고 해서 우간균이 됐다. 우간균은 그 하위에 수십 종을 알록달록하게 거느리는데 그중 가장 유명하고 미식가들의 혀를 홀리는 게 '견수청(見手靑)'이다. 견수청은 이름에서도 드러나지만 칼로 썰면 단면이 푸른색으로 바뀌는데, 제대로 익혀 먹지 않으면 환각 증세를 불러일으킨다. 쿤밍 방송국 아나운서가 점심 때 견수청 요리를 먹었다가 생방송 중에 중독 증세가 나타나 사투리 대잔치를 벌이고 급히 교체되기도 했다. 이런 에피소드는 윈난에서 흔하다. 그럼에도 윈난 사람들은 견수청 먹기를 마다하지 않아 쿤밍의 큰 병원에는 버섯에 중독된 이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센터가 마련돼 있다.

윈난 사람 전체를 대상으로 버섯의 왕을 선발하라고 한다면 그 왕좌는 어떤 버섯이 차지할까. 우간균, 계종, 간파균 등 1위 자리를 놓고 다툴 버섯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송이에게 돌아갈 자리는 없다. 송이는 이곳에서 '못난이 계종'이라 불린다고 한다. 사실 송이가 이런 대접을 받는 이유는 윈난의 버섯시즌이 봄부터 여름까지 이어지는데, 송이는 이 시기가 지나고 9~10월에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볼 때 우리가 송이에 목매는 이유는 유난히 송림이 우거진 산림 조건으로 인해 송이가 가장 흔하고 익숙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맛이란 때로 유전자에 새겨지기도 하는 것 같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