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양란의 좌충우돌 해외여행 41] 베트남 호치민 한인 민박이 준 떨떠름한 선물

신양란 작가 2024. 10. 11. 15:2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호치민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유명한 벤탄 시장은 온갖 물산이 거래되는 곳이자 여행자들이 베트남 현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거대한 식당이기도 하다./신양란 작가

[시조시인·여행작가 신양란] 내 경우, 외국에서 한인 민박에 묵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말이 통하는 주인장을 통해 여행 정보를 얻으려는 것. 그게 아니라면 위치도 좋지 않고 시설도 부실한 한인 민박을 구태여 찾아갈 이유가 없다.

우리 가족이 런던에서 묵은 한인 민박은 아침에 밥과 김치를 먹을 수 있어서 좋았지만, 그 대신 방이 어찌나 좁은지 여행 가방을 둘 공간도 마땅치 않았다. 숙박비도 결코 싸지 않았고.

하여간 베트남 호치민 한인 민박에 갔을 때 일이다. ‘여행자 거리’라는 데탐거리에 있고, 홈페이지 설명이 꽤 그럴듯 해 망설이지 않고 예약을 했는데….

호치민의 여행자 거리인 데탐거리는 어수선하면서도 활기 넘치는 곳이다. 여행 정보를 얻기에 유리할 것 같아 이곳에 있는 한인 민박을 예약했는데, 별로 좋은 선택이 못 되었다./신양란 작가

그곳에 도착해 나는 두 번 크게 놀랐다. 우선, 우리 가족이 묵을 방은 3층에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계단이 너무 좁고 가팔랐다. 빈 몸으로도 엉금엉금 기어 올라가야 할 판이니, 여행 가방을 들고 올라가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난감하여 한숨만 쉬고 있으려니, 현지인 직원이 들어주겠다며 나섰다. 우리에게 힘든 일이 그에게 수월할 리가 있는가. 낑낑대며 가방을 끌어올리는 그의 뒤를 따라 올라가며, 미안해서 죽는 줄 알았다. 팁을 주면서 죄스러워하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에베레스트산에라도 오른 듯 비장한 태도로 드디어 방에 도착했다. 이어 나는 아까보다 더 놀라고 말았다. ‘세상에, 이런 방도 돈 받고 빌려준단 말인가?’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을 테지만, 10여 년 전 호치민을 생각하면 도로를 가득 채운 오토바이 물결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소음도 소음이지만, 오토바이 때문에 불안하여 도로를 건널 수 없을 정도였다./신양란 작가

물론 숙박료가 비싼 숙소는 아니었다. 싼 맛에 예약한 게 사실이었다. 그래도 에어컨 룸이라며 팬 룸보다 돈을 더 받기에 어지간한 수준은 될 거라고 짐작했지, 그렇게 허름하리라고야 상상이나 했을까.

‘에어컨 룸’이라는 당당한 이름의 근거가 된 에어컨은 몇십 년 전에 생산된 초기 모델이었다. 머지않아 가전제품 박물관에서 만나게 될 제품 말이다. 후끈한 바람이 나오는 주제에 소리는 어찌나 요란한지 밤새 벽을 흔들어대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침대였다. 침대를 얼마나 오래 사용하면 스프링이 그렇게 주저앉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망가진 침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자리가 너무 불편해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렇게 밤잠을 설친 채 아침을 맞았다. 찌뿌둥한 몸으로 밖으로 나갔더니, 퀭한 눈을 한 젊은이가 하품을 쩍쩍 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왔다는 그 청년은 밤새 한잠도 못 잤다고 했다. 필경 그 방 침대와 에어컨도 우리 방이랑 같은 수준이었나 보다 생각하고 넘겨짚었더니, 그의 말은 달랐다.

“에어컨 소리요? 에어컨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어요. 밤새 오토바이가 질주하는 굉음에 시달리느라 다른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니까요. 이건 방도 아니에요. 길거리에다 돗자리를 깔고 잔 거나 마찬가지라고요.”

아아, 호치민의 그 무지막지한 오토바이 물결 속에서 그의 밤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생각할수록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하여간 그 이후로 우리 가족은 세계 어느 곳에 가나 숙소만큼은 많이 너그러워졌다. 아무리 시원찮은 숙소를 만나더라도 “호치민의 한인 민박에서도 묵었는데, 뭘.” 하면 불만이 쏙 들어간다. 그곳이 우리 가족에게 준 단 하나의 선물이다.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여행자의 성당 공부><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베트남이 통일되기 전 사이공이라고 불린 도시는 이 사람의 이름을 따 호치민 시티로 바뀌게 된다. 호치민 동상 앞에 놓인 꽃다발이 그에 대한 베트남 사람들의 애정을 보여주는 듯하다./신양란 작가
한식은 한국에서 제일 맛있게 만들 듯이, 베트남 음식 역시 베트남 현지에서 먹는 게 제일 맛있는 것 같다. 숙소 근처 식당에서 먹었던 쌀국수보다 더 맛있는 쌀국수를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신양란 작가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였던 시절에 지어진 이 건물은 현재 시 청사로 쓰이고 있다. 호치민에 남아 있는 식민지 시절 건축물로는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답다./신양란 작가
통일궁은 남베트남 당시 대통령궁으로 사용되었으며, 전쟁이 종료된 후 베트남의 통일이 선언된 역사적 장소이다. /신양란 작가
구찌 터널은 호치민 여행시 빠뜨릴 수 없는 곳이다. 프랑스를 상대로 독립 전쟁을 벌일 때 처음 터널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하며, 통일 전쟁 당시 미군을 가장 괴롭힌 전략 자산이었다./신양란 작가
호치민을 흘러 바다에 닿는 메콩강 하류에 생성된 삼각주 지역을 배를 타고 둘러보는 메콩 델타 투어는 호치민 여행시 참여해 볼 만한 프로그램이다. /신양란 작가
베트남에서 발생한 ‘카오다이교’는 불교, 도교, 기독교의 요소를 혼합한 신흥 종교이다. 호치민 근교에 있는 사원이 여행자에게 공개되므로, 현지 투어 시 방문해 볼 만하다./신양란 작가

Copyright © 마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