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아빠, 기내에서 쌍욕 먹은 이유...쌍둥이 데리고 비행기 타면 진땀만 [파일럿 Johan의 아라비안나이트]

2024. 10. 1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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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휴가를 받아 필자가 거주하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를 잠시 떠나 한국에 짧은 일정으로 다녀왔다. 8개월 된 쌍둥이 자녀를 데리고 한국에 있는 병원에 검진 차 가야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바이에서 출발하기 2주일 전부터 이런 생각이 계속 내 마음을 짓눌렀다.

‘하…과연 잘 할 수 있을까…?’

다들 알겠지만 아기를 데리고 비행기를 같이 탄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과정이다. 더군다나 애 하나도 힘든데 1년도 되지 않은 쌍둥이 두 명을 데리고 가야 하는 상황이라니. 두바이에서 인천공항까지는 약 9시간 정도가 걸린다. 가기전부터 두통이 온다. 그래도 뭐 어쩌겠나 가야만 하는데.

부디 9시간 동안 제발 별 일이 없기를, 잠 좀 최대한 푹 자길. 울거면 조금만 울길. 엄마 아빠도 사람이니 힘들게 하지 말고 제발 얌전히 가기를. 제발 비나이다 비나이다. 이런식으로 계속 기도했던 것 같다.

출처=DALL.E
쌍둥이 육아는 힘들다
보통 쌍둥이 육아를 겪어본 사람들은 애가 하나일 때와 비교해 두 배 힘들다고 하는게 아니라 2의 2승인 네 배가 힘들다고 말한다. 만약 세 쌍둥이면 여덟 배가 힘들 것이다. 주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어머, 나중에 둘이 친구가 되니 좋으시겠어요”, “지금은 힘들지만 언젠가는 다 보상받으실 거예요”, “한번에 다 처리하셨네, 와 애국자시네” ,

그런데 이 보상이란건 언제쯤 올까. 사실 아빠보다도 엄마가 훨씬 더 힘들 것이다. 그런데도 힘들다고 내색을 하지 않는 것은 가끔 아이가 웃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기 떄문이다. 방긋 웃는 순간 정말 힘들어 미칠 것 같았던 스트레스가 한번에 날라가는 그 경험은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다들 공감할 것이다.

하여튼 모든 장난감과 먹을게 풍부한 집 안에서 키우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익숙한 집을 떠나 아이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를 간다는 건 솔직히 부모에게도 너무 가혹한 일이다. 아기야 뭐 평소 하던대로 울고 먹고 싸고 자겠지만 부모는 밀폐된 비행기 안에서 그 모든 과정을 오롯이 견뎌야 한다.

여기서 잠깐 퀴즈. 쌍둥이 영아를 비행기에 태우고 가려면 최소 성인 몇 명이 필요할까. 답은 두 명이 아닌 세 명 이상이다. 만약 두 명만 애기를 데리고 타면 평생 화장실도 못가고 1분도 쉬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또 유모차에 애들 짐에 캐리어에 수화물에 그런 것은 누가 드나. 결국 성인 세명이 각각 애 둘과 짐을 맡는 것이 최소 조건이다.

아기가 기내에서 카트를 끄는 승무원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기내에서 본 따뜻한 사람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가족 전체가 잘 무사히 두바이에서 인천까지 도착했다. 9시간을 날라가는 동안 꿋꿋하게 견뎌주며 생각보다 많이 울지 않았던 아이들이 너무 고마우면서도, 기내에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기 떄문에 별 다른 이슈가 없이 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옆자리 앉았던 한 아저씨가 기억난다. 아기와 눈이 마주치자 아저씨가 웃었는데 우리 아기도 웃었던게 그렇게 좋으셨는지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그걸 보던 아내가 “잠시 안아보실래요?” 말하자마자 바로 받은 뒤 우루루루 까꿍하면서 아기와 거의 5분 이상을 놀았던 것 같다.

아기가 어찌나 잘 웃던지 앞 뒤 승객들도 너무 신기해 하면서 많이 귀여워해줬다. 어떤 한 아주머니께서는 단체관광을 오신 것 같았는데, 아예 우리 쌍둥이 중 하나를 데려가더니 기내에 있는 모든 지인분들에게 보여주면서 눈 인사를 시켜줬다.

승무원들도 기억난다. 아기들이 참 귀엽다면서 같이 사진을 찍고, 자기는 아기를 좋아한다면서 한번 꼭 안아보더니 따뜻하다면서 서비스하고 쉬는 시간마다 우리 있는 곳에 찾아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아기와 교감을 했다.

물론 9시간동안 날아갔으니 아이들이 웃기만 한건 아니었다. 크게 울었던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어찌나 진땀이 나던지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달래보다가 나중에는 하다하다 안되니 화장실도 들어가 보고 기내에서 일어나서 둥둥 거리면서 움직이기도 해보고,

그러다가 건너편 대각선 어디선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에이 x발” 크게 욕하는 소리도 들어봤다. 필자 들으라고 한 소리 같기는 한데 그런데 뭐 그렇다고 우는 아기가 ‘아빠가 욕먹었으니 울지 말아야지’하고 울음을 멈추겠나. 결국 울다 지쳐 잠들때까지 아기는 계속 울었고 나도 속으로 계속 울었다.

인천공항에 잘 도착하고 나서 그래도 내리는 승객분들의 대부분이 “엄마 너무 고생했겠다”, “새댁 고생 많았어요 고놈 그거 나중에 크게 되겠네” , “애들 너무 귀여워요”라고 덕담 해줘서 참으로 고마웠다. 어떤분은 나가면서 다시 아기와 아이컨택을 하면서 웃으면서 나갔다. 지금도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다.

비행이 끝나고 아기들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귀여워 해주는 항공 승무원들
더 많은 아이를 보고 싶다
어디선가 예전에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어린아이와 함께 비행기를 탄 가족이 민폐다 아니다란 걸로 온라인에서 논쟁이 붙은 것이었는데, 싫어하는 사람들의 경우 ‘기억도 못하는 애 데리고 여행을 왜 다니냐’, ‘2세 미만이 공짜라고 하니 꾸역꾸역 데려온다’ , ‘부모가 민폐 진상짓을 한다’ 등 비판을 하곤 했다.

솔직히 필자도 원래는 이를 싫어했던 쪽에 가까웠다고 고백한다. 타인에게 별로 관심도 없었고 좁은 기내에 아이가 우는 것도 싫고 그냥 조용히 가고 싶은데 조그만 피해와 소음이 들리는 것조차 싫었기 떄문이었다.

1차로 생각이 바뀐건 역시나 출산 후 육아를 해보니, 그리고 2차로 생각이 바뀐건 비행기 조종사 직업을 갖게 되면서 수 많은 비행기를 타면서였던 것 같다.

직접 아이를 낳아 길러보니 그동안 모질게 생각했던 내 자신이 참으로 부끄러워졌다. 그때 조금만 표정 찡그리지 말고 그냥 어른답게 대충 넘길껄. 뭐 그리 나는 완벽한 인간이라고 그렇게 피곤하게 살았나. 좋은 것만 누리기에도 바쁜 인생인데.

사실 아기를 데리고 해외여행 다니면 안 되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 가족의 경우처럼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 가정들도 요즘에는 굉장히 많다. 이렇게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의 사정이 있는 것이다.

이제는 그라운드에서 비행기 조종석에 앉아 비행 준비를 하다가 유아나 어린이들이 관심을 보이면 데리고 와서 이름 물어보고 같이 사진찍어주는 것도 곧잘 하게 됐다. 예전에는 없었던 필자의 변화다. 아이들의 순수한 미소가 참으로 예쁘다.

아기 자체가 매우 귀해진 세계 최저 출산율 0.6 시대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조금 더 시끄러워도 좋으니 더 많은 아이들을 기내에서 봤으면 한다. 계속 울어도 좋으니 그들에게 잘해주고 싶다. 내가 조종하는 비행기라면 나중에 착륙한 뒤 아이를 조종석에 데려와 고생하셨다면서 같이 덕담도 나누고 싶다.

그것이 이번 한국 방문에서 본인들도 피곤하셨을 텐데 별 내색 안하시고 우리 아이들을 잘 봐주시고 불편함을 너그럽게 넘어가 주신 많은 다른 승객분들에게도 보답하는 길일 것이다.

[원요환 UAE항공사 파일럿 (前매일경제 기자)]

john.won320@gmail.com

아랍 항공 전문가와 함께 중동으로 떠나시죠! 매일경제 기자출신으로 현재 중동 외항사 파일럿으로 일하고 있는 필자가 복잡하고 생소한 중동지역을 생생하고 쉽게 읽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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