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란’을 택한 부산영화제의 착각[이정우 기자의 소실점]

이정우 기자 2024. 10. 11.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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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전, 란'이 11일 공개된다.

박찬욱 감독이 각본과 제작을 맡았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영화로는 부산영화제 사상 첫 개막작이란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영화제의 OTT 영화 상영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일 뿐, 부산영화제가 모험을 단행한 게 전혀 아니란 얘기다.

'전, 란'을 개막작으로 선정한 논리를 과거에도 적용했다면, 저우둥위·자장커와 영화제의 인연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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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전, 란’이 11일 공개된다. 공교롭게도 이날 막을 내리는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이었다. 박찬욱 감독이 각본과 제작을 맡았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영화로는 부산영화제 사상 첫 개막작이란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지난 2일 개막작 상영 후 열린 기자회견에선 ‘전, 란’을 개막작으로 선정한 이유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박도신 집행위원장 직무대행은 “재밌게 봤고, 대중적으로 다가가기 좋은 영화다. OTT 영화라도 영화제의 문호는 개방돼 있다”란 말을 반복했다. 영화제로선 ‘모험’이었단 얘기도 덧붙였다.

답변의 초점이 어긋났다. ‘전, 란’이 OTT 영화라서 의아한 게 아니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2017년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고도 상영 논란에 휩싸였던 건 이미 옛날 일이다. 베니스국제영화제는 2022년 노아 바움백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화이트 노이즈’를 개막작으로 선정했다. 영화제의 OTT 영화 상영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일 뿐, 부산영화제가 모험을 단행한 게 전혀 아니란 얘기다.

‘전, 란’을 보며 놀랐던 점은 따로 있었다. 대중적인 문법에 맞춘 전형적인 상업영화란 점이 이례적이었다. 매년 그 시대의 가치를 조명하는 독립·예술영화에 막을 여는 기회를 줬던 부산영화제의 전통을 정면으로 깼기 때문이다. 현란한 검술 장면은 인상적이지만, 어디서 본듯한 설정으로 시대적 가치를 발견하긴 어려웠다. 더구나 ‘전, 란’은 개막하고 단 9일만인 이날부터 190개국의 넷플릭스 구독자가 맛볼 수 있다.

영화제라면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난 ‘재미없는’ 영화를 보여줘야 한다는 얘긴 아니다. OTT를 전면에 배치하며, 올해 영화제는 예상외의 흥행을 거뒀다. 그렇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영화제에서마저 자본주의 논리가 우선 적용되며, 새로운 영화인들이 나타날 기회가 상대적으로 박탈됐다.

올해 부산영화제 뉴커런츠상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중국의 대표 여배우 저우둥위(周冬雨)는 “14년 전 개막작으로 내 첫 영화 ‘산사나무 아래서’가 상영됐다”고 회상하며 “부산이 나의 성장을 지켜봐 준 것 같다”고 웃었다. 중국의 거장 자장커(賈樟柯) 역시 자신의 첫 작품 ‘소무’가 1998년 부산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을 받은 사실을 언급하며 “내 영화의 생이 여기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들 모두 부산영화제를 기점으로 영화의 꽃을 피워냈다.

‘전, 란’을 개막작으로 선정한 논리를 과거에도 적용했다면, 저우둥위·자장커와 영화제의 인연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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