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나리와 양미리[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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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의 예능 프로그램이 많은 사랑을 받게 되면 그 영향력은 놀랍다.
까나리 액젓으로 김치를 담그고 양미리 구이를 먹는 것도 결국 선택의 몫이다.
그러나 둘 다 인정한다면 우리말은 더 풍부해지고 까나리가 양미리가 되는 마법도 경험할 수 있다.
서쪽에서 잘 자라 동쪽으로 온 양미리를 먹고 그것이 낳은 알에서 깬 새끼가 다시 서해로 가야 까나리 액젓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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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의 예능 프로그램이 많은 사랑을 받게 되면 그 영향력은 놀랍다. 하룻밤을 자며 이틀 동안 전국을 누비는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여서 액젓 혹은 구이에 쓰이는 생선 하나를 전국구로 만들어 놓았다. 마침 액젓의 색깔이 커피와 비슷해 커피 ‘복불복’의 단골손님인 액젓을 만드는 까나리가 그것이다. 그리고 겨울에 살이 오르고 알이 꽉 찬 것을 잡아 굵은 소금을 쳐 연탄불에 구워 먹는 양미리가 그것이다.
이름이 둘이니 서로 다른 생선으로 불리지만 실은 같은 것을 두고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다. 한류성 어종이어서 찬 바닷물을 따라 이동하는데 날씨가 따뜻할 때는 주로 서해안에서 보이다가 알을 낳을 무렵인 겨울이 되면 동해안으로 이동한다. 서해안에서는 채 크지 않은 것을 잡아 액젓으로 만드는데 그것이 까나리다. 동해안에서는 다 크고 알도 가득 찬 것을 잡아 구이나 찜으로 먹는데 이것이 양미리다.
본래 양미리란 물고기는 따로 있지만 크기도 작고 많이 잡히지도 않으니 동해안에서는 그와 비슷하게 생긴 까나리 성체를 양미리라 부르는 것이다. 결국 양미리는 까나리의 동해안 방언인 셈이니 표준어로는 모두 까나리라고 불러야 한다. 그러나 물고기를 잡는 것은 어부의 마음이요, 그것의 이름을 짓는 것은 먹는 이의 마음이다. 까나리 액젓으로 김치를 담그고 양미리 구이를 먹는 것도 결국 선택의 몫이다.
이것을 어느 하나로 불러야 한다고 강요한다면 선택되지 못한 말은 버려야 한다. 그러나 둘 다 인정한다면 우리말은 더 풍부해지고 까나리가 양미리가 되는 마법도 경험할 수 있다. 크지 않은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더니 남쪽에선 다시 동서로 나뉘는 상황을 자주 보게 된다. 동이 있어야 서가 있는 법, 서로를 지독히 미워하며 갈등할 일이 아니다. 서쪽에서 잘 자라 동쪽으로 온 양미리를 먹고 그것이 낳은 알에서 깬 새끼가 다시 서해로 가야 까나리 액젓이 된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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