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재명 시대 ‘전쟁’이 된 정치…민생도 통합도 사라졌다 [유창선의 시시비비]
(시사저널=유창선 시사평론가)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이제 반환점을 앞두고 있다. 지난 20대 대선에서 국민이 윤 대통령을 선출했던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전쟁과도 같은 극한 대결의 정치를 종식시키고 국민통합을 이루어 달라는 소망이 강했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계속된 진영과 편가르기 정치에 염증을 느낀 국민은 정치 신인이던 윤 대통령에게 그런 기대를 갖고 표를 던졌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임기의 거의 절반이 지났지만 여야 간 극한 대결의 정치는 계속되고 있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 시절보다 오히려 격화된 혐오와 증오의 정치만이 난무한다.
이런 정치는 대체 누구의 책임일까. 물론 대한민국의 최고 책임자는 윤 대통령이니 우선 그의 탓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정치에 대한 야당의 책임이 덜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우리 정치는 복잡하다. 정권은 윤 대통령이 잡고 있지만,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집권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실이나 정부가 아무리 많은 정책을 발표하고 추진한들, 입법 사안은 야당의 동의 없이는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여야 공히 절반만의 권력을 갖고 있는 셈이니 서로 간 타협과 협치는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러나 여야 가운데 어느 쪽도 타협하지 않으려 했고 협치의 손을 내밀지도 않았다. 윤 대통령은 협치 요청은커녕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하는 듯한 발언을 계속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정권을 처음부터 인정하지 않고 조기 퇴진을 위해 탄핵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어느 한쪽도 물러설 기미가 없기에 앞으로 남은 윤 대통령 임기 동안 여야의 전쟁 같은 정치는 계속될 판이다.
보수-중도연합 해체 후 '이념전쟁' 뛰어든 尹
우리 정치는 왜 이리도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일까. 먼저 윤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자신의 대통령 당선을 가능하게 했던 '보수-중도 연합'을 스스로 해체시키는 이해 불가능한 행보를 보였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불과 0.73%포인트 차이로 간신히 이긴 윤 대통령은 당연히 중도 친화적 노선을 견지하며 정권의 외연 확장을 위한 길을 갔어야 했지만, 정반대로 우향우를 외치며 갔다. 여권의 정치는 그런 대통령을 무조건 따르는 친윤계가 좌지우지했고, 이견을 내는 정치인들은 거세되어 변방으로 배제되는 운명에 처했다. 대통령 주변에서 직언을 할 사람은 갈수록 찾아보기 어려워졌고, 대통령의 행보를 오른쪽 극단으로 부추기는 강성 보수 인사들만이 득세했다. 국민은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고 있는데 대통령은 "제일 중요한 것은 이념"이라며 느닷없는 이념전쟁의 선봉에 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선에서 민주당 혹은 이재명 후보가 싫어 윤석열 후보를 찍었던 중도층은 그런 윤 대통령에게 실망하고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속절없이 하락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게 없는 결과였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에 참패를 안긴 민심은, 그런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정권을 지난 4월 총선에서 역대급으로 참패시키며 심판했다.
윤 대통령의 집권 전반기 동안 가장 잘못한 것은 문재인 정부 시절의 진영정치를 능가하는 진영 간 편가르기 국정 운영을 해온 점이다. 윤 대통령은 정부와 대통령실에 강성 우파로 분류되는 인물들을 중용했고, 스스로가 강한 우파적 사고를 드러내는 언행들을 주저하지 않았다. 아무리 야당이 극단적인 강경 투쟁에 매달린다 해도 대통령은 최대한 인내하며 협치의 손을 내밀었어야 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자신의 고집스러운 소신을 앞세우며 민심과는 분리된 자기만의 길을 갔다.
그러는 사이에 김건희 여사 문제도 민심을 자극해 여론의 악화를 자초했다. 최근에는 윤 대통령 부부의 공천 개입 의혹을 터뜨린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 '한동훈 공격 사주' 의혹을 받고 있는 김대남 전 대통령실 행정관에게 휘둘리는 지극히 취약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여권 내부는 오히려 '윤석열-한동훈' 갈등으로 동반 몰락의 길을 자초한다. 윤 대통령이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을 하고 국정 쇄신의 결단을 내리지 않는 한 조기 레임덕은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尹 조기 퇴진' 요구하며 대권 플랜 가동한 李
집권 세력이 이렇게 길을 잃은 가운데 민주당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공세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10월5일 보궐선거 유세에서 "선거를 기다릴 정도가 못 될 만큼 심각하다면 도중에라도 끌어내리는 것이 민주주의고 대의정치"라고 말했다. 이는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동안 윤 대통령 퇴진 혹은 탄핵 주장은 조국혁신당이나 야권 단체들에서 요구했고 민주당 차원에서 정식 공론화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 민주당 최고위원회는 이 대표의 대권 준비 작업을 담당할 '집권플랜본부' 구성을 의결했다. 이 기구는 이 대표의 핵심 비전인 '먹사니즘'(먹고사는 문제)을 실현할 정책을 개발하고 인재풀을 구성하는 것이 핵심인데, 사실상 윤 대통령의 조기 퇴진 이후를 내다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문제는 그렇다면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를 조기 퇴진시키고 정권을 맡겨도 될 대안적 수권 정당의 모습을 보여주는가에 있다. 지난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민주당은 '이재명 일극체제'를 완성했다. 4월 총선을 거치면서 당내 비명계를 사실상 축출한 이 대표는 이제 차기 대선후보를 놓고 자신과 경쟁할 인물들의 싹을 다 제거해 버렸다. 당명에 걸맞지 않게 지금 민주당에는 '민주'가 사라진 모습이다.
당내 민주주의가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것은 친명계의 강성 정치인들이 장악한 극단주의 노선이다. '이재명 유일론'에 서있는 친명계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극한 공세로만 일관하는 모습이다. 민주당은 10월4일에는 '김건희 가족비리 및 국정농단 규명 심판본부'(김건희 심판본부)를 구성했다. 김 여사가 연루된 의혹들을 '국정농단' 차원으로 끌어올려 윤 대통령 부부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에 나서겠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분위기를 보면 향후 '윤·한 갈등' 추이에 따라 실제로 국회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추진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지금 여야 관계는 마주 보고 달리는 두 열차와 같다. 정치는 사라지고 전쟁이 되어버린 이 판에서 누가 승자가 되든, 국민이 승자가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결국 어느 쪽도 잘하는 것 없는 여야의 무한정쟁 속에서 민생만 뒷전으로 밀려난 2년 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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