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어야 잘 싸운다더니”… 장병 급식비 또 동결되나 [박수찬의 軍]

박수찬 2024. 10. 1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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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재운다.’ 6.25 전쟁 당시 수많은 격전지에서 명성을 떨쳤던 한신 장군은 장병들의 먹는 문제를 각별하게 챙겼다. 굶주린 군대는 전쟁에서 제대로 싸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6.25 전쟁으로부터 7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장병 식생활은 핵심 과제다. 하지만 국민이 실제로 느끼는 현실은 다르다.

육군 장병들이 부대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국방부 등에 따르면 장병 1인당 기본급식비는 2022년 이후 4년째 1만3000원으로 동결됐다. “코로나19 때처럼 장병 급식이 한바탕 논란이 되어야 예산 증액이 되겠냐”는 자조 섞인 반응이 군 내부에서 나오는 이유다.

국방부는 국회가 내년도 예산안을 심의하는 과정 등을 통해 예산을 증액하고자 관련 기관과 적극적으로 협의한다는 방침이다. 정치권에서도 장병 복지 증진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어 연말에 진행될 국회의 내년도 예산심사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군 “기본급식비 인상 꼭 필요”

정부의 내년도 예산 편성하는 과정에서 장병 기본급식비 인상은 군에서도 중시됐던 문제였다. 

기본급식비는 지난 2022년 1만1000원에서 1만3000원으로 인상됐다. 당시 국방부는 “인상되는 급식비는 장병이 체감하는 급식만족도 향상을 최우선 고려한다는 원칙으로 장병 선호 급식품목 확대, 균형 있는 영양공급, 조리하기 편리하고 품질이 보장된 식재료 조달에 사용해 맛있고 충분한 양질의 급식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2022년 이후 외식비 등은 계속 상승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은 2022년 7.8%, 2023년 6.8%에 달했다. 외식비 상승률은 2022년 7.7%, 2023년 6%였다. 가공식품·외식 등 먹거리 물가 부담이 다른 품목보다 커졌다는 뜻이다.

장병 급식 피복 모니터링단이 부대에서 장병 급식을 먹으며 평가를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외식비와 가공식품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는 국면이 전개되자 군 안팎에선 장병 기본급식비가 물가 상승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우려가 나왔다. 

내년에는 기본급식비를 1만5000원으로 인상해야 한다는 요구가 국방부 등에서 제기됐다. 하지만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은 달라지지 않았다.

국방부는 기본급식비를 꼭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내년 농수축산물 물가가 2022년 대비 15%, 가공식품 물가는 19% 오를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기본급식비가 동결되면 장병 급식 질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우선 장병들이 선호하는 메뉴를 충분히 제공하는 것도 곤란해진다. 현재 장병 선호 메뉴는 수량을 통제하는 정량 배식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해 군 급식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장병들이 가장 선호하는 반찬 상위 10개 중 5개가 육류(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돼지갈비, 오리고기)였다. 나머지는 전복 등 수산물이었다. 이들 품목은 채소류보다 조달단가가 높다.

국방부는 장병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충분히 제공, 원하는 만큼 먹는 자율배식 여건을 마련할 방침이다.

그런데 급식비가 동결되면 장병들이 선호하는 반찬을 충분히 제공하기가 어려워진다. 

농수축산가 보호 차원에서 군 식자재는 국내산 사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급식비가 동결되면 수입산보다 비싼 국내산 육류 등의 조달은 제한을 받는다. 

부족분은 비선호 메뉴로 대체하게 되는데, 이는 음식물쓰레기 증가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음식물쓰레기가 늘어나면 처리비용도 커진다. 음식물쓰레기 처리비는 2018년 1t당 10만5000원이었으나 지난해에는 17만3000원으로 급등한 상태다. 처리비가 늘어난 상황에서 쓰레기 배출량이 증가하면 재정적 부담은 한층 커진다.

육군 32사단 내 더 좋은 병영식당에서 급식하는 메뉴들. 세계일보 자료사진
국방부가 추진하는 민간위탁 급식(뷔페식 등) 확대도 어려워진다. 민간위탁 급식은 다양한 메뉴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민간위탁 급식이 적용되는 육군사관학교의 경우 닭갈비, 우삼겹파채불고기, 안동찜닭, 제육야채비빔밥 등의 한식과 더불어 카르보나라, 볶음우동, 나시고랭, 중화식덮밥 등이 제공된다. 후식으로는 ABC 주스와 샐러드, 푸딩 등이 나온다.

이처럼 먹거리가 다양하게 제공되는 민간위탁 급식에 대한 장병의 호응은 높다. 

국방부가 지난해 실시한 군 급식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민간위탁 급식은 군 직영 대비 만족도가 3.3점에서 4.07점으로 상승했으며 음식물쓰레기 배출량은 30% 감소했다.

국방부는 민간위탁 급식 대상을 기존의 3만4000명에서 6만8000명으로 확대하고, 장병의 메뉴선택권을 강화하는 뷔페식 급식을 적극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기본급식비가 동결되면 민간위탁 급식 확대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육군 32사단 내 더 좋은 병영식당에서 점심식사를 위해 반찬을 옮겨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국방부, ‘급식혁신’ 나선다

기본급식비 인상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인상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려면 장병 만족도가 높아야 한다. 장병 호응이 커야 급식비를 인상하는 근거가 뚜렷해지고, 전투력과 사기도 높아진다.

급식비 인상과 더불어 현재의 식단과 급식 체계가 장병 수요를 충족하고 전투력을 높이는데 필요한 영양과 칼로리를 제공하는지를 확인해야 할 시점이 됐다. 부대 여건과 조리병 실력에 따라 급식 품질 차이가 발생하는 것도 개선해야 한다.

국방부도 이같은 점을 인식, 이달 중 김선호 차관 주관으로 ‘군 급식 개선 TF’를 만들어 급식 질 향상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우선 전문성을 갖춘 민간업체와 협력해 조리병들이 맛있는 음식을 쉽게 만들 수 있는 조리법과 간편식을 올해까지 개발할 계획이다. 

입대 전에 요리 경험이 적었던 조리병들은 수백명이 먹을 급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표준 레시피가 있다면, 들쑥날쑥했던 급식의 맛을 평준화하면서 조리병의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최근 요리 잘하는 사람들이 유튜브에 레시피를 소개하고, 많은 사람이 그 레시피대로 요리를 만들어 맛있게 먹지 않나”라며 “군대에서도 대량으로 조리할 때 쓸 수 있는 표준 레시피를 주고, 그대로 요리하면 맛있는 식단을 만들 수 있게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육군 장병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반찬을 옮겨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외에도 병영식당 내 조리병의 동선 및 공간 재조정, 새로운 조리기구 설치 등을 통해 조리 시간을 단축하게 된다.

국방부는 이같은 개선안을 대대급 2~3개 부대를 대상으로 시범 적용해 분석 및 평가를 실시한 뒤 2026년부터 최전방 감시초소(GP)를 포함한 전 부대로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다.

군 민간조리원 충원을 위한 조치도 고려되고 있다. 국방부는 조리 인력 확보를 위해 민간조리원을 2021년 2278명에서 지난해 3305명으로 확대했다.

부대식당에서 조리원들이 장병들이 먹을 음식을 조리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하지만 실제 채용은 부진해서 매년 수백명의 결원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해안부대나 GP, 도서지역 등 격오지 부대는 충원이 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이는 조리직 종사자들이 격오지가 많은 군부대보다는 도시 지역 학교에서 근무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원인이 있다.

급여의 차이도 크다. 민간조리원은 1일 3끼를 준비하지만, 임금은 학교조리원보다 월급이 41만원 낮은 228만원에 불과하다.

국방부는 내년부터 특수지근무수당(6만~9만원), 위험근무수당(5만원) 신설과 기본급 인상을 추진하는 등 근무여건 개선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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