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한글날에만 반짝이는 우리말

최태호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명예교수 2024. 10. 1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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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겨운 우리말’이라는 제목으로 월요일 아침에 SNS를 보낸다. 더러는 처음 보는 말이라는 사람도 있고, 몇 개 알고 있다고 답신을 보내는 친구들도 있다. 사실 순우리말이 한자어에 밀려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말 공부를 다시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언어는 화자(말하는 사람)의 심정을 드러낸다. 과거에 영국의 여왕이 방한(訪韓) 적이 있다. 그녀를 통역한 후배의 일화 중에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고상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는 얘기가 지금도 귓전에 맴돈다. 영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모두가 훌륭한 사람은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어에 상당히 너그럽다. 언어 생활을 하면서 유식을 자랑하고 싶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영어나 불어 등을 자주 활용하는 것을 본다. 어느 건축가의 경우에 조사를 빼고 모두 영어로만 하는 것도 보았다. 어느 예능인도 그리 외국물을 오래 먹은 것 같지도 않은데 말끝마다. 영어를 섞어서 쓰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린 적이 있다. 그렇게 영어를 많이 섞어 쓴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를 유식하다고 하지 않는다. 짧은 영어라 할지라도 여왕의 한마디 어휘가 통역관을 감동시키고, 배려하는 행동 하나가 주변인들을 감복하게 한다. 이것이 언어의 힘이다. 억지로 스스로 높아지려고 외국어를 섞어 쓰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우리말의 아름다운 점을 살려가면서 말하는 것이 좋다. 사실 이렇게 말하는 필자도 강의 시간에는 육담을 잘한다. 아이들이 졸거나 재미 없어 하는 표정을 지으면 아이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재미있는 얘기도 하고, 고전 문학에 나타난 얘기를 해 주면서 분위기를 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육담과 막말은 차이가 있다. 강의를 위한 육담과 정치판에서의 막말은 차원이 다르다.
예전에 KBS 카메라 기자로 활동한 친구가 있다. 당시에는 국회의원들에게 용돈도 꽤 받았다고 한다. 가능하면 한 번이라도 더 카메라에 얼굴을 비치는 것이 선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부고장’만 빼고 무조건 언론이 많이 노출되는 것이 좋다는 말도 있다. 그 친구에 의하면 졸고 있던 모 의원도 카메라만 그쪽으로 돌리면 벌떡 일어나서 소리를 지르고 정면을 향해 삿대질은 한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에게서 아름다운 말을 기대하기는 힘든 모양이다. ‘공업용 미싱’이라는 막말이 국회에서 나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통령을 ‘동물’에 비유하기도 하고, 국무위원을 아랫사람 대하듯이 막말하는 것은 비일비재하다. 국무위원이 되면 무조건 죄인이 되어야 하는 것 같다. 국회에서 제대로 된 의사표현한 경우는 시각장애인 의원의 장애인 복지에 관한 의견 뿐이었던 것 같다. 나머지 대부분의 경우는 폭언과 난투극, 고함과 욕설 등으로 얼룩져 있다. 요즘은 야당 대표의 단식으로 막말이 더 성한 것을 볼 수 있다. 주변에서 고함지르는 사람과, 단식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막말이 도를 넘고 있다.
이러한 막말의 정치는 국회만 그런 것도 아니다. 이대현(2023)의 연구에 의하면 국가에서 공표한 담화문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전쟁 용어가 등장한다고 했다. 예를 들면 ‘안전선’, ‘방역사령관’, ‘고군분투’, ‘공격’, ‘방패’, ‘싸움’, ‘견디-’, ‘승기’, ‘명예’ 등의 어휘가 등장한다. 이것은 모두 ‘코로나19는 전쟁이다’라는 개념적 은유의 체계 아래 주요한 어휘 기제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담화문에서도 전쟁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반증한다. 과거에도 ‘범죄와의 전쟁’이라든가, ‘00 소탕 작전’등과 같은 용어를 많이 사용한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얌전하던 사람도 여의도에만 가면 막말을 한다는 말이 생겼다. 이제는 정쟁이나 폭언보다는 영국의 여왕처럼 고상한 말로 정책을 논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나이만 많다고 해서 어른 대우를 받으려고 하면 오산이다. 젊은이들은 노인을 공경하기보다는 미래의 짐으로 여기는 경우도 많다.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와서 고위직에 있었다고 해도 나이가 많으면 그냥 사람들이 꺼린다. 대우하기 불편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노인들은 더욱 언어 생활에 조심해야 한다. 매사에 어른으로 신중하고 의미있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말이 많은 것보다는 유효한 단어 몇 마디만 하는 것이 효과적일 때가 많다. 그래서 나이 먹을수록 말 수를 줄여야 한다. 지갑은 열고 입은 닫는 것이 상수다.

[최태호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명예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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