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아닌 식용물질에 내 몸은 오늘도 속는다[북리뷰]

신재우 기자 2024. 10. 1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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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가공식품
크리스 반 툴레켄 지음│김성훈 옮김│웅진지식하우스
인공감미료·색소·구아검 등
작물 변성시켜 첨가물과 결합
4주간 초가공식품 섭취 실험
변비·불면 등 부작용 나타나
신체 자기 조절력 잃게 하고
자극적 입맛에 ‘중독’ 위험
게티이미지뱅크

음식은 우리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인류의 발전 속에 식문화는 변화의 중심에 있었고 ‘프랜차이즈’부터 ‘파인 다이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진 외식업도 그 증거다. 더 맛좋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향한 인간의 관심은 커져만 가는데 어째서인지 비만과 충치 환자는 줄지 않는다. 이는 맛에 대한 추구와 함께 식품 산업이 가장 신경 쓴 부분인 가공 방식에 있기 때문이다. 유통기한은 넉넉하게, 유통은 용이하게 만들기 위해 식품 공학은 끊임없이 노력했고 가공식품을 넘어 이제는 ‘초가공식품’까지 등장했다. 그리고 영국의 감염병 전문의이자 책의 저자인 크리스 반 툴레켄은 식품 공학의 정점에서 탄생한 초가공식품에 “음식이 아닌 산업적으로 생산된 식용 물질”이라는 충격적인 진단을 내린다.

그렇다면 책에서 말하는 초가공식품의 기준은 무엇인가. 저자는 식품의 성분표를 확인해서 적혀 있는 원재료 중에 단 하나라도 평범한 주방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성분이라면 그 식품은 ‘초가공식품’이라고 말한다. 지금 당장 우리가 사용하는 식품을 뒤집어 성분표를 확인해보면 초가공식품이 아닌 것을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식품에 흔히 쓰이는 인공감미료부터 색소, 변성 옥수수 전분, 대두 레시틴, 구아검까지 연구실에서 탄생한 다양한 성분이 햄버거와 피자, 빵과 음료수에 필수처럼 들어간다. 피하기도 어려운 이러한 초가공식품에 대해 저자가 500쪽이 넘도록 열변을 토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건강보다 수익성에 초점이 맞춰진 상품은 우리의 본능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책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본래 필요한 영양분을 조절해서 먹는 자기조절 능력이 있다. 마치 소를 비롯한 초식동물이 풀을 먹기 위해 해독 메커니즘을 진화시켰듯이 인간은 필요한 영양소를 정확하게 섭취하고 균일한 체지방을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이 때문에 원시 인류는 수렵·채집인 시절에도 여성은 21%, 남성은 14%의 체지방률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 바로 가공이다. 옥수수, 콩 같은 작물을 기름, 단백질, 전분과 같은 더 작은 성분으로 분해해서 그 성분을 화학적으로 변성한 다음 다시 첨가물과 결합해 성형, 압출, 압력 같은 기술을 이용해 조립하는 과정에서 우리 몸은 이 “식용 물질”에 대해 파악하는 것을 포기했다. 특히 지금의 과학이 식품을 만드는 과정은 고도화돼 석탄에서 생기는 부산물로 버터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이니 우리 몸이 지금 식도를 타고 들어오는 것이 석탄인지 버터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초가공식품의 진짜 위험은 ‘중독성’에 있다.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초가공식품은 심지어 중독적이기까지 하다. 단순히 자극적인 맛뿐만 아니라 이 압축된 음식은 섬유구조가 분해돼 매우 부드럽고 건조하다. 초가공식품은 우리가 진짜 음식을 씹고 삼킬 때 느끼는 ‘피로함’이나 ‘포만감’을 주지 않고 소화 시스템을 속인다. 그 결과는 우리가 익히 겪어봤을 소화불량과 충치, 그리고 비만이다.

책을 쓰기 전, 저자는 4주간 식단의 80%를 초가공식품으로 채우는 자체 실험을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체중은 7㎏이 늘었고 소화불량, 변비, 치열이 생겼으며 집중력이 저하되고 잠을 깊게 자지 못했다. 특히 그의 식욕 호르몬이 완전히 엉망이 돼 포만감 신호를 보내는 호르몬은 거의 반응하지 않고 배고픔 호르몬은 식사 직후에도 치솟는 초가공식품 중독 상태가 됐다.

책에는 우리의 통념을 뒤집는 주장도 등장한다. 바로 영양분과 칼로리가 사실 건강한 음식 섭취의 핵심이 아니라는 점이다. 만약 단순히 음식에 들어간 영양분과 칼로리만 따졌다면 편의점에서 파는 냉동 피자와 정통 이탈리아 음식점에서 먹는 피자는 다를 바가 없다. 영양 면에서 두 피자는 칼로리, 소금, 지방, 설탕의 양이 거의 같다. 그럼에도 하나는 비만이나 식생활 관련 질병과 전혀 관련이 없는 전통 식품이고 다른 하나는 ‘패스트푸드’로 분류된다.

이제 먹는 행위는 인간에게 본능보다는 지적 행위에 가까워졌다. 우리는 칼로리를 꼼꼼하게 따지고 더 질 좋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는다. 물론 이러한 노력 속에도 초가공식품을 완전히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저자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칼로리가 낮다는 이유로 골라 마셨던 ‘제로’ 음료에 들어간 인공 감미료가 체중 증가와 당뇨병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썩지 않고 녹지 않는 음식을 마주할 때 한 번의 머뭇거림이 필요한 이유다. 건강을 위한 선택이 건강을 해치는 것보다 억울한 일은 없다. 544쪽, 2만3800원.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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