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에도 묵묵히… 존재만으로 위로돼준 宮”

장상민 기자 2024. 10. 1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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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묘사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온 소설가 김금희가 등단 후 처음으로 역사소설에 도전했다.

돌아오는 계절마다 새로운 단편으로 독자들을 찾아왔던 김 작가는 무려 4년 동안 청탁을 거절하며 집필에만 몰두한 끝에 장편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창비)를 펴냈다.

작품의 가장 중요한 배경이 된 창경궁 대온실에서 최근 만난 김 작가는 등단 전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던 시절 창덕궁과 창경궁에 관한 책을 만든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꺼내 놓으며 소설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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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온실 수리 보고서’낸 김금희
창경궁 대온실 보수공사 소재
4년만에 내놓은 장편 역사소설
“내가 붕괴될만큼 힘겹던 시절
궁 처마밑서 느낀 치유의 감각
독자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다”
김금희 작가는 이번 소설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남극에 가게 됐던 일화를 떠올리며 “유작이라는 심정으로 출판사에 결말을 일러주고 갔다”며 “그렇게라도 끝을 반드시 보여주고 싶었던 작품”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섬세한 묘사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온 소설가 김금희가 등단 후 처음으로 역사소설에 도전했다. 돌아오는 계절마다 새로운 단편으로 독자들을 찾아왔던 김 작가는 무려 4년 동안 청탁을 거절하며 집필에만 몰두한 끝에 장편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창비)를 펴냈다. 전작으로부터 4년 만이다.

소설의 주인공 ‘영두’는 석모도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창덕궁 옆 원서동에 위치한 ‘문자’ 할머니의 하숙집에서 중학교 시절을 보낸 경험을 간직한 인물이다. 소설에는 성인이 된 영두가 ‘창경궁 대온실’의 보수공사에 필요한 보고서를 작성하게 돼 유년 시절의 아픔이 아로새겨진 동네를 다시 찾게 되는 이야기가 담겼다.

작품의 가장 중요한 배경이 된 창경궁 대온실에서 최근 만난 김 작가는 등단 전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던 시절 창덕궁과 창경궁에 관한 책을 만든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꺼내 놓으며 소설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말했다. “빚쟁이들에게 쫓겨 집을 옮기게 된 때였죠. 모든 것이 붕괴되던 시절이었는데 일 때문에 찾은 창덕궁 처마 밑에서 비를 피했던 기억이 오래도록 남아 있어요. 사람들로 북적이던 궁궐이 빗소리에 잠겨 풀 냄새만 가득하더군요. 그때 느꼈던 치유와 위로의 감각이 저를 계속 살게 만들었고 이제는 모든 감동을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요.”

‘동궐’로 불렸던 창덕궁과 창경궁은 특유의 평화로운 분위기로 정쟁의 주무대가 됐던 경복궁에서의 생활에 지친 조선 임금들로부터 두루 사랑받았다. 그중에서도 김 작가는 창경궁 대온실에 주목했다. 나무가 사용된 대부분의 궁궐 건축물과 달리 대온실은 철골과 유리로 지어졌다. 이질적인 외양은 물론 일제의 만행을 상징하는 탓에 시대마다 존폐와 관련한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온실을 두고 김 작가는 ‘사람과 달리 자기만의 시간을 살고 있는 건물’이라고 말했다. “대온실은 시대의 변화를 겪은 사람들, 대온실을 만든 사람과 그곳에서 일했던 사람, 이후 남겨져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모두 알고 있을 것 같았다”는 김 작가의 말처럼 소설은 20세기 초 구한말을 살았던 문자 할머니와 현재를 살아가는 영두, 그리고 둘이 함께 살았던 1980년대라는 세 개의 시간 축을 넘나든다. 작가는 좀처럼 풀어낼 엄두가 나지 않던 엉킨 실타래를 쥐고 앉은 사람처럼 때로는 멈칫거리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은 채 묵은 기억을 끈기있게 추적해나간다.

소설을 인생을 통틀어 가장 넓은 시간대를 살피게 된 만큼 작가는 자료 조사에 매진했다. 굵직한 역사적 사건은 물론 등장 인물이 두루마기를 집어 드는 간단한 장면조차 당시 생활사를 샅샅이 뒤져서야 쓸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김 작가는 “현재 삶의 기준이 되는 것들이 사실 격변의 시기라고 불리는 20세기 초 근대에 만들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20세기 초 만들어져 낡아 버린 건물을 고치기 위해 근원부터 다시 살펴보는 일은 낡아서 망가진 시대와 사람들의 마음을 고치는 일과 닮아있다고 생각했어요.”

작가의 첫 역사소설이라는 점 외에도 책은 여러모로 그에게 기념비적 작품이다. ‘내면에 천착하는 소설가’라는 평가를 받아든 김 작가는 “사건 중심의 소설을 쓰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소설은 작중 배경을 일본과 한국, 심지어 북미대륙까지 넓혀가며 인물들이 겪는 사건들을 펼쳐 보인다.

또한 김 작가는 “장면으로 결말을 보여준 뒤 인물들의 삶을 궁금해하시는 독자들이 많은 것 같아 쓸 수 있는 최대한의 해피엔딩을 썼다”고 덧붙였다. “‘내 인생은 실패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죠.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 선별할 수 없기에 전체를 묻어둔 채 언젠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할 수 있게 되길 바라지만 삶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고요. 아픔을 다시 꺼내서 마주한 뒤에야 우리는 조금 다른 시간을 마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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