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HPV 접종을 권하라

난임전문의 조정현 2024. 10. 1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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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이야기]
HPV(인유두종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난임을 예방하려면 남성도 HPV 백신주사를 맞는 것이 안전하다. [Gettyimage]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에서 정답을 내기란 힘들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우리 인생살이에서도 누구 탓을 하리오, 모든 것은 '내 탓이로소이다'라고 해야 마음이 편한 법이다.

그런데 내 탓이 아니라 네 탓(너의 탓)일지 모른다고 의심해야 하는 게 있다. 다름 아닌 HPV(인유두종바이러스·Human Papilloma Virus) 감염이다. 90% 이상이 성관계로 감염되기 때문이다. 손뼉이 부딪쳐야 소리가 나듯 통정(通情)을 해서 걸렸다면 나도 너도 유죄인 것이다.

HPV는 자궁경부암을 설명할 때 흔히 등장하는 바이러스다. 자궁경부암은 자궁경부에 생기는 악성 혹이다. 자궁경부의 속살(원주상피)과 겉살(편평상피)이 만나는 부분(SCJ)에서 시작되며, 원인이 HPV다.

일각에서는 구강성교로 HPV가 감염된다고 말한다.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는 법이 있으랴. 이런 이야기가 나올 만한 일이 있었다. 14년 전, 미국의 유명 배우 마이클 더글러스가 자신의 인후암이 구강성교에 의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HPV와 구강암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기에 그런 말을 했을까. 결론을 짓자면 HPV는 일반 성생활은 물론 항문 성교나 구강성교를 통해서도 감염될 수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생식기나 구강 쪽에 종기나 종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파필로마바이러스(Papilloma virus)다. 파필로마라는 우리 몸에 생기는 뾰루지, 종기, 사마귀를 뜻한다. 일반적인 종기처럼 통증, 열감, 부종, 고름, 피지가 없고 천천히 자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 바이러스는 일반 성병균(STD) 그룹 안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HPV(인유두종바이러스)는 단 한 번의 성관계로도 감염될 수 있다. [Gettyimage]

성기사마귀부터 암까지 유발

자궁경부암의 원인인 HPV는 파필로마 바이러스군(群)에 속한다. HPV에 감염되면 단순히 성기콘딜로마(성기사마귀)나 호흡기, 항문, 성기 주변에 병변만 일으키는 게 아니다. 종양(암)으로까지 악화하는 원인이 된다. HPV 중에서도 고위험군인 발암성 인유두종바이러스가 자궁경부암과 연관성이 높지만, 조기진단이 어렵고 걸려도 대부분 자연치료가 된다. 하지만 면역력이 떨어져 감염이 지속될 경우 심각한 생식기 내 질환(자궁경부암)이 발생할 수 있다.

자궁경부암이 의심될 때는 질 확대경으로 SCJ(Squamo Columnar Junction·편평상피와 원주상피의 경계로, 암이 자주 발생하는 부위)를 관찰해봐야 한다. 필요하면 조직을 떼어내 세포 검사를 하게 된다. 자궁경부암은 SCJ에서 시작해 피부를 뚫고 피하로 내려가기까지 10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보는데, 독한 놈은 2~3년 내에 침습되기도 한다.

자궁경부 근처에는 혈관과 임파선이 매우 많다. 자궁경부암이 무서운 것은 순식간에 파급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자궁 안에 생기는 자궁내막암은 자궁경부암에 비하면 발생빈도도 낮지만 파급 정도도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1980년대 말까지 한국 여성 암 발생 순위 1위가 자궁경부암이었고, 암 사망 발생률도 최상위에 속했다. 조기진단과 치료가 이루어지고 HPV 백신이 상용화하고서야 병 발생이 최저로 떨어질 수 있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천연두 백신을 통해 천연두가 사라지게 된 것과 같은 결말을 볼 것으로 기대된다.

문제는 HPV가 오로지 성관계로만 감염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문란한 성생활을 떠올려서는 안 된다. 단 한 번의 성 접촉(질, 구강, 항문 섹스)으로도 감염될 수 있다. 공중화장실 변기를 사용하다가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도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

남성 난임의 원인 되기도

최근 저출산 문제 해결의 방안으로 HPV 백신접종을 남녀 모두에게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왜냐하면, 남성의 난임 원인 중에 HPV 감염률이 2배 이상 높게 나왔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 남성이 HPV에 감염된 경우 정자의 질과 운동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왔다. HPV에 감염된 커플은 가임력이 떨어지거나 유산될 위험이 높았다. 실제로 이탈리아의 임상시험 결과를 보면 HPV를 접종한 그룹(70명)에서는 29명(30명 임신)이 출산했지만, 비접종 그룹(70명)에서는 4명(11명 임신)만 출산했다고 한다.

남성도 HPV에 감염돼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HPV에 감염되면 정자 운동성 감소와 항정자항체 증가로 인해 난임이 될 수 있다. 물론 HPV 백신주사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겠지만 여성처럼 남성도 HPV 백신을 맞는다면 많은 부분 발생을 예방하고, 나아가 배우자에게도 경부암 발생률을 떨어뜨릴 수 있다.

남성 또한 HPV 감염으로 인한 암 발병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HPV가 여성에게는 자궁경부암·질암·외음부암 등을 발병케 하지만, 남성에게도 인후암·음경암·항문관암도 유발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매년 HPV 감염으로 인한 암 발병 사례 10건 중 약 4건(1만5000명 이상)이 남성에게서 발생한다는 통계만 봐도 알 수 있다.

정부가 국가예방접종사업(NIP)에 HPV 백신의 남학생(청소년) 포함 여부를 검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질병관리청이 HPV 백신 대상을 남녀 청소년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담은 내년도 예산안을 기획재정부에 제출하기로 했다는데, 제발 시행되기를 바란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2000년대 초부터 모든 청소년에게 HPV 백신접종을 시작했다. 그 결과 16~21세의 감염률이 8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늦어도 한참 늦었다. 지금이라도 청소년(남성)에게 HPV 백신접종을 실시해야 한다.

HPV 백신의 최적 접종 시기는 11~12세로 보고 있다. 아직 성생활 전이자 HPV에 노출되기 전인 이때 접종하면 아주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백신이 영구면역이 될 수는 없다. 과거에는 영구면역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유아 시기 홍역 백신을 맞고 10여 년 후 홍역에 재감염될 수 있듯이, HPV 백신 효과도 10년 정도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따라서 HPV 백신을 10년마다 재접종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통계상 HPV 예방접종을 했을 경우 암 위험을 최대 56%(여성은 36%)까지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 모든 예방접종이 그러하듯 HPV 예방접종도 HPV에 노출되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지, HPV 감염됐거나 HPV로 인한 질병이 있을 경우에는 치료가 어렵다.

천연두 첫 접종을 시작했던 지석영 선생을 떠올려 본다. 서양식 천연두 백신인 '우두접종법(우두법)'을 조선에 최초로 보급한 위대한 일을 하신 분이다. 당시 창궐한 천연두가 이 백신으로 사라졌고, 백신은 여기까지 발전해 오고 있다.
조정현
●연세대 의대 졸업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난임전문의 조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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