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 작가의 길…노벨문학상 한강과 작품 세계

정자연 기자 2024. 10. 11.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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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이 한국 작가 최초로 10일 노벨 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지난 2005년 11월 문학사상사 주관으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상문학상 시상식에서 수상자인 한강 씨가 작가인 아버지 한승원 씨와 함께하고 있다. 소설 '아제아제바라아제' 등을 쓴 작가 한승원 씨는 딸의 수상에 앞서 1988년 '해변의 길손' 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성취한 한국 작가 한강에게 수여한다. 작가 한강은 자신의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직면하면서, 각 작품에서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 작가 한강은 육체와 영혼,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시간) 한국 작가 한강을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하며 밝힌 핵심 사유다.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54)은 수상자 발표 후 노벨상 측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매우 놀랍고 영광스럽다. 그저 감사하다”고 거듭 말했다.

인터뷰에서 한강은 한국인 최초로 문학상을 받게 된 데 대해 "어릴 때부터 책과 함께 자랐고 한국 문학과 함께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며 "한국 문학 독자들과 동료 작가들에게 좋은 소식이 됐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가장 큰 영감을 받은 작가가 누구냐는 질문에는 "내가 어릴 때 옛 작가들은 집단적인 존재였다"면서 "그들은 인생의 의미를 탐색하고, 때로는 길을 잃고, 때로는 단호하다. 그들의 모든 노력과 힘이 내 영감이 됐다"고 했다.

한강. 연합뉴스 제공

▮“저절로 주어진 게 아닌 삶…가구 대신 책으로 둘러싸인 집”

한국 최초, 아시아 첫 여성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에게 문학의 길은 필연과 같았다.

소설가 한강은 1970년 11월 광주의 변두리, 기찻길 옆 셋집에서 태어났다. ‘몽고반점’으로 2005년 이상문학상을 받았을 때 쓴 ‘문학적 자서전’ 등을 보면 한강을 임신 중이던 어머니는 장티푸스에 걸려 끼니마다 약을 한 움큼씩 먹었고, 한강은 세상 빛을 보지 못할 뻔했다.

한강은 이를 두고 “나에게 삶이란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 세계는 아슬아슬한 신기루처럼, 혹은 얇은 막처럼, 캄캄한 어둠 속에서 떠오른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라고 밝혔다.

한강은 어릴 적부터 가구 대신 책으로 채워진 집에서 자랐다.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은 1939년 전남 장흥 태생으로 1968년 등단해 장편소설 ‘아제아제바라아제’ ‘초의’ ‘달개미꽃 엄마’ 시집 ‘열애일기’ 등을 펴냈다.

한강의 부친 한승원씨는 과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릴 때부터 책을 읽고 어두운 방에서 몽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 영어를 잘해서 영문과에 가라고 했는데, 굳이 소설을 쓰겠다며 국문과를 선택하더니 연세대 국문과에 수석 합격했다”고 말했다.

한강은 2005년 이상문학상, 2010년 동리·목월문학상, 2015년 황순원문학상 등을 받았는데, 아버지도 1988년 ‘해변의 길손’으로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덕분에 ‘이상문학상 부녀(父女) 수상’ 기록도 갖고 있다.

▮보편적인 죽음과 폭력, 서정적 문체로…

한강의 작품세계는 죽음과 폭력 등 보편적인 인간 문제를 시적이고 서정적인 문체로 풀어내는 독창성으로 압축된다.

국제적으로 처음 큰 반향을 일으킨 소설 ‘채식주의자’는 주인공 영혜가 음식 섭취의 규범에 복종하기를 거부했을 때 벌어지는 폭력적인 결과를 그려냈다. 맨부커상 선정위원회는 당시 “불안하고 난감하면서도 아름다운 작품”이라며 “현대 한국에 관한 소설이자 수치와 욕망,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갇힌 한 육체가 다른 갇힌 육체를 이해하려는 우리 모두의 불안정한 시도들에 관한 소설”이라고 수상 사유를 밝혔다.

1980년 광주 5·18을 다룬 장편 ‘소년이 온다’와 제주 4·3을 형상화한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상흔이 개인에게 파고든 이야기로 그려냈다.

두 책은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소년이 온다 중)를 끝없이 물으며 “이 다음이 없을 수도 있다”(작별하지 않는다 중)란 절실함으로 작가가 펴낸 책이기도 하다.

특히 한강에게 광주는 특별하다. 생태적 고향인 동시에 정신적 고향이기도 하다. 그의 소설의 원류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강은 초기작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인간의 폭력성과 그에 따른 상처와 사랑, 삶의 비극에 천착해왔다. 이 같은 작품세계가 형성된 계기가 광주민주화운동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인생을 바꿔 놓았다”고 밝힌 바 있다.

한강은 서울로 이사한 뒤 부친으로부터 1980년 5월 광주에서 학살된 이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첩을 접하게 된다. 그는 “열세 살 때 본 그 사진첩은 내가 인간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된 비밀스러운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때부터 간직해 온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세 번째 장편 ‘채식주의자’부터 탐구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대표작 ‘소년이 온다’는 광주민주화운동이 직접적인 배경으로 등장한다. 15세 소년 동호의 죽음을 중심으로 당시 광주에서 숨죽이며 고통받았던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하나씩 펼쳐지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 어루만진다. 

그의 수상 경력을 보면 천천히, 하지만 끝없이 치열하게 자신의 세계를 펼쳐내며 대중과 소통하는 작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소설문학상(1991)을 시작으로 문화관광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2000), 이상문학상 대상(2005), 황순원문학상(2005), 맨부커 국제상(2016), 말라파르테문학상(2017), 김유정문학상(2018), 산클레멘테문학상(2019), 대산문학상(2022), 메디치외국문학상(2023), 그리고 2024년 노벨문학상에 이른다.

소설가 한강이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한강 작가의 책이 진열돼 있다.한림원은 한강의 작품 세계를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표현하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연합뉴스 제공

▮문학 변방에서…“천천히, 계속 더 쓸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인 모두가 오래도록 염원한 일이기도 했다.

한국 작가들은 2000년대 중반부터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가장 많이 거론되고 수상자로 점쳐졌던 인물은 고은 시인이다. 도박사이트에서도 유력한 수상자로 점쳐졌던 고은 시인의 자택엔 노벨문학상 발표 날이면 기자들이 몰려가 있곤 했다.

언론의 관심만큼 국민적 관심과 기대가 컸다. 노벨문학상에 다른 작가가 호명되고 나서야 기자들은 자택 앞에서 물러났다. 한국 문화가 세계적인 위상을 떨침에도 왜 노벨문학상은 쓴잔을 들이키는지 등에 대한 아쉬운 여론이 뒤따르곤 했다.

황석영 작가 역시 ‘철도원 삼대’(2020)로 노벨문학상 수상의 기대감을 키웠다. 한반도 백 년의 역사를 관통하며 여러 세대에 걸친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은 강력한 서사의 힘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의 가능성이 제기됐다.

한강의 수상은 선배 문학가들에 비해 주목도가 떨어진 상황에서 수상한 들려온 낭보로 언어의 한계로 노벨상과 세계 변방에 불과했던 한국문학이 세계문학 주류로 당당히 편입될 계기가 됐다는 평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에도 그의 문학 세계를 천천히 함께 사유하고 기대해도 좋을 듯 하다. 한강의 공식 누리집에 적힌 작가의 한 마디다. “천천히, 계속 더 쓸 것이다.”

정자연 기자 jjy84@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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