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대교 난간과 자살률 [슬기로운 기자생활]

임재희 기자 2024. 10. 1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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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란 무엇인가.

9년 전 첫발을 들였을 때 한 선배는 '문제를 드러내는 직업'이라고 했다.

현장을 찾은 기자들은 훈련받은 대로 한국의 높은 자살률과 안전을 연관 지어 문제를 찾았다.

안전과 바람 영향 등을 모두 고려한 결정이었다는 담당자의 설명에도 질문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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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여사가 지난달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서울 마포대교에서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 근무자와 함께 도보 순찰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임재희 | 이슈팀 기자

기자란 무엇인가. 9년 전 첫발을 들였을 때 한 선배는 ‘문제를 드러내는 직업’이라고 했다. 그러고선 나를 경찰서로 보냈다. 사건이나 사고를 쫓아다니게 했다. 찾았다면 왜, 어떻게 일어난 일인지 물었다.

2017년 안전모를 쓰고 서울 중구 ‘서울로7017’이 개방되기에 앞서 찾은 적이 있다. 차가 다니던 서울역 고가도로를 사람이 걷는 길로 바꾸는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서울시가 기자들에게 진행 상황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어느 기자가 물었다. “이 정도 난간이면 사람이 뛰어내릴 수도 있지 않나요?” 철로 위로는 3m 높이 난간이 있다지만, 다른 구간은 1.4m 강화유리 난간이 설치됐다. 현장을 찾은 기자들은 훈련받은 대로 한국의 높은 자살률과 안전을 연관 지어 문제를 찾았다.

안전과 바람 영향 등을 모두 고려한 결정이었다는 담당자의 설명에도 질문이 이어졌다. 그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되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난간을 얼마나 높이면 그만 살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을 막을 수 있을까요?”

7년도 지난 일이 떠오른 건 지난달 10일이었다.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서울 마포대교를 찾았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정치적인 해석을 담은 기사가 쏟아졌다. 보건의료와 복지 분야를 수년간 취재해온 내 눈에 들어온 건 김 여사가 했다는 말이다. 난간을 살핀 김 여사는 “자살 예방을 위해 난간을 높이는 등 조치를 했지만, 현장에 와보니 아직 미흡한 점이 많다”며 “한강대교의 사례처럼 구조물 설치 등 추가적인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다리 난간을 높이는 일은 자살 수단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만드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이제 난간 철사를 끊거나 벌리면 119구조대가 바로 출동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그런데 마포대교 난간을 살피는 모습을 보는 내내 7년 전 서울로7017에서 들었던 말이 맴돌았다. “난간을 높이면 그만 살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을 막을 수 있을까?”

지난달 사회부 이슈팀으로 옮기면서 한국에서 어떤 사람들이 그런 마음을 먹는지 기사들을 찾아봤다. 지난 5월 대구에선 언론에 알려진 것만 여덟번째 전세사기 피해자가 사망했다. 같은 달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전세사기특별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피해자들이 공공임대 주택에서 최장 20년 동안 주거 안정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특별법이 빛을 본 건 다시 국회를 거친 9월이었다.

대표적 자살 고위험군인 사회적 소수자는 어떤가. 세계보건기구(WHO)는 차별을 경험하는 성소수자 등을 자살 취약계층으로 분류한다. 그런데 차별금지법이 없는 한국에서 이들이 기댈 언덕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면 에이즈가 퍼진다는 등의 주장을 편 사람이다.

지난 9년간 나는 문제만 잔뜩 제기해놓은 기자가 아니었을까. 자살처럼 배경과 원인이 천차만별이어서 복잡한 문제라면 ‘사회적 접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기사를 끝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사이 자살률은 지난해 인구 10만명당 27.3명으로 2014년 이후 9년 만에 가장 높아졌다(통계청)고 한다. 9년 만에 다시 찾은 경찰서 앞. 문제를 드러내는 데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원인을 찾아 그 해법까지 찾아낼 수 있을까.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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