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최만순의 약이 되는 K-푸드...약선 쌈밥 이야기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이에 연합뉴스 K컬처 팀은 독자 제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 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 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한국약선요리 창시자.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쌈을 싸서 먹는 것은 우리네의 오랜 전통이다.
얼마나 쌈을 즐기는지 꼭 먹어야 하는 날도 있다. 정월대보름의 복 쌈이다.
건강과 행복 풍년을 기원하는 커다란 의식이다.
마치 미국 추수감사절날 칠면조요리를 먹는 것과 같다.
지난 2022년, 영국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활약하는 손흥민 선수가 유튜브 채널 '영국남자'에 출연해 자신의 득점왕 수상을 위해 헌신했던 에릭 다이어, 위고 요리스, 피에르-에밀 호이비에르 등 동료를 불러 한국식으로 고기를 채소에 쌈을 싸먹기도 했다. 에릭 등 여러 동료는 금세 쌈 싸먹는 식사법을 익혀 해당 콘텐츠는 1천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쌈은 지금처럼 포장 용기가 발달하지 않은 시절에 음식을 보관하거나 이동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었다.
또한 쌈으로 싸지 않을 음식이 거의 드물었다.
일본의 경우 생선을 숙성시켜서 순수하게 회만 소스를 찍어 먹는다.
우리나라는 이와 다르게 살아있는 싱싱한 활어를 바로 잡아 회를 떠서 쌈으로 싸서 먹는다.
볼락의 추억
아주 오래전 일이다. 필자는 아내와 함께 휴가차 거제도를 방문했다. 거제에 사는 지인의 작은 통통배를 타고 앞바다에서 낚시했다.
아내는 처음 하는 낚시인데 줄만 넣으면 작은 볼락이 올라왔다.
지인은 싱싱한 볼락을 회로 썰었다. 필자는 으름 초장을 만들었다.
지인의 어머니가 담그신 된장에 고추장과 막걸리 식초를 준비하고 집 뒤 언덕에 잘 익은 으름이 있었다.
설탕 대신 으름의 씨를 제거한 과육을 넣고 만들었다. 쌈은 텃밭에서 넉넉히 뜯은 상추를 마당 샘에 씻어서 준비했다.
그리곤 맑은 가을날 마당 평상에서 손바닥에 상추를 두 장 깐 후 큼지막하게 썬 볼락을 올리고 그 위에 초장을 올려 쌈을 싸서 맛있게 먹었다.
지금도 그 맛을 생각하면 지금도 행복하다.
참고로 으름은 야생 목통의 열매로 '예지자'(預知子)로 불리며 익으면 맛이 아주 달다. 살충 효과가 뛰어나며 혈액의 순환을 도와준다.
음식의 지(地)
손자병법 제1 시계(始計)의 장(章)에 보면 '전력의 다섯 가지 조건'이 나오는데 그중 세 번째가 '지'(地)다.
음식에서 지(地)란 음식을 만들기에 앞서 재료가 어디에서 생산됐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작게는 동서남북 중 어디에서 생산됐는지. 크게는 지구 어디인지 헤아려야 할 일이다.
예전에는 작게만 생각했지만, 지금은 물류가 발달해 세계 어느 곳 물건도 마트에 가면 다 있다.
또한 자란 환경이 평야인지 산악인지 돌이 많은 땅인지 모래가 많은 땅인지 등등 모든 것에 재료가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우리 땅에서 나는 인삼은 성질이 약간 따뜻하며 평평하다. 화학성분은 거의 비슷한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나는 서양 삼은 성질이 아주 차다.
이것을 약선에서 도지약재(道地藥材). 혹은 지도약재(地道藥材)라 부른다.
'본초연의'(本草衍義)에 "도지약재는 임상효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했다. 그러므로 식의(食醫)들이 상황에 따라서 약이나 식재를 골라서 써야 하는 중요한 지표가 됐다.
보통 쌈으로 쓰는 나물은 상추, 콩잎, 취나물, 호박잎, 배추속대 등이 있으며 미역잎, 김 따위도 쓰인다.
나물은 날로 쓰는 것과 데쳐서 쓰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시의전서'(是議全書, 19세기 조선 말기 요리책으로 작자 미상)에 수록된 상추쌈, 곰취 쌈은 나물을 그대로 쓴 것이고 '고사십이집'(攷事十二集. 조선 후기 문신 서명응(徐命膺)이 집필하고 그의 손자 서유구가 편찬한 전통 생활 기술집)에 기록된 곰취쌈, 깻잎쌈은 잎을 삶거나 찐 것이다.
한국인의 남다른 상추 사랑
현재도 이 모든 것을 즐겨 쌈으로 사용하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상추다.
상추는 재배 역사는 매우 오래됐다. 기원전 4천500년경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 벽화에 작물로 기록됐으며, 기원전 550년에 페르시아 왕의 식탁에 올랐다는 기록도 있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도 중요한 채소로 재배했다. 중국에는 당나라 때인 713년의 문헌에 처음 등장한다. 한국에는 연대가 확실하지 않으나 6~7세기경 중국, 인도 등을 거쳐 전래했다고 전해진다.
중국의 문헌에는 고려의 상추가 질과 맛이 좋다는 기록이 있다. 오랜 역사만큼 품종도 다양하다.
잎의 색과 모양, 크기, 결구성, 줄기의 형태 등에 따라 나뉜다. 보통 결구상추, 버터 헤드 상추, 로메인, 잎 상추, 줄기 상추, 라틴 상추 등으로 분류된다.
외국에서는 이 6가지가 모두 생산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결구상추, 로메인 상추, 잎 상추 3가지 품종을 주로 재배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는 상추를 주로 육류와 곁들여 먹는 쌈 채소로 사용한다.
특히 돼지고기와 섭취할 때 콜레스테롤 축적을 억제해 동맥경화를 예방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볶아서 사용하기도 하며 일본에서는 살짝 데친 후 양념해서 먹기도 한다.
상추의 현대적인 영양은 다른 엽채류에 비해 철분과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다. 그러므로 체내 혈액 용량을 증가시키고 피를 맑게 하는 청혈작용을 하며 저혈압을 예방한다. 상추의 잎줄기를 꺾어보면 우윳빛의 액즙이 나오는데 이 액즙의 락투카리움(Lactucarium) 성분은 심신을 안정시켜 스트레스와 통증, 불면증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상추를 많이 먹으면 졸린다는 것도 이 성분의 신경 안정 작용에서 기인한 것이다. 물론 일시적 현상이다.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머리가 맑아지고 두통을 해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상추는 섬유질이 풍부해 장내 환경 개선과 변비 해소에 효과가 있다.
또한 상추의 풍부한 수분과 다량 함유된 비타민 A와 C는 피부를 윤기 있고 탄력 있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데도 도움을 준다. 엽산과 철분 또한 풍부하게 들어있어 임산부에게도 좋은 음식이다.
약선에서 상추는 그 맛이 달고 쓰며 성질은 냉하고 위와 소장으로 들어간다. 효능은 소변이 잘 나오고 인체에 쌓인 나쁜 독기를 해독하며 각종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해 면역력을 길러준다. 특히 간과 위에 도움이 된다.
또한 주로 사용하는 치료는 불면증과 비만, 시력 보호에도 쓰인다.
단, 냉한 체질, 위장병 환자, 소변을 참지 못하고 자주 보는 사람 등은 적게 먹어야 한다.
약선 쌈밥
약선을 응용한 쌈 중 먼저 산약 율무 쌈밥을 소개하고자 한다.
재료는 쌀 70g, 산약 20g, 율무 20g의 비율로 준비한다.
만드는 방법은 율무는 하룻저녁 냉수에 불려서 준비하고 쌀은 30분 불린다. 마는 껍질을 제거하고 알맞게 썰어 솥에 모두 넣고 약간의 소금 1g을 넣어서 밥을 한다.
그런 다음 상추와 쌈장을 곁들여 밥을 싸서 먹으면 된다. 그러면 가을에 거칠어지기 쉬운 피부를 탄력 있게 만들고 혈액과 체내에 쌓인 나쁜 지방을 제거해 비만을 예방한다.
두 번째로 소개할 쌈 약선은 조기 쌈밥이다. 재료는 조기 1마리, 시금치 100g, 쌀 100g, 생강 2g, 소금 약간이다.
만드는 방법은 쌀을 30분 정도 불리고 시금치를 깨끗이 손질하여 알맞게 자르고 솥에 편을 친 생강, 소금을 넣고 밥을 한다. 조기는 굽거나 간장에 졸여서 뼈를 발라 준비한다. 그리고 상추와 쌈장을 곁들여서 싸서 먹으면 된다.
그러면 혈액순환을 도와 몸 안에 나쁜 습기가 쌓여 발생하는 질병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똑같은 상추를 사용하더라도 햄버거가 수동적이라면 우리네 쌈은 능동적이다. 그러므로 각각 개인의 입맛에 따라서 혹은 그날 느끼는 기운에 따라서 고기와 상추, 쌈장, 깻잎, 마늘, 고추, 새우젓, 밥 등을 곁들여 조절할 수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재료와 함께 쌈을 싸서 먹음으로써 하나의 약선을 만들어 낸다.
마음이 요구하는 대로 배합하는 쌈은 몸의 불균형을 해소해준다.
몸속 깊은 곳부터 서서히 건강해지는 방법이다.
부작용의 위험도 없다. 그리고 맛까지 있으니 쭉 지속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쌈의 묘미다.
<정리 : 이세영·성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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