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좋은데 찾아온 우울감…햇빛 쬐고 활동 늘려야 [ESC]
11월 환자 수 최다, 12·10월 순
멜라토닌 감소, 생활 리듬 깨져
잠·식욕 증가로 체중 늘 수도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온도와 습도가 적절해 바깥 활동을 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단풍이나 맑은 하늘 등 좋은 경치도 덩달아 기분을 유쾌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좋은 계절에 오히려 우울해지는 이들도 있다. 이른바 ‘계절성 우울증’을 겪는 이들이다. 이는 보통 가을에서 겨울에 우울증이 나타나거나 심해졌다가 이 기간이 지나면 증상이 개선되거나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물론 다른 양상, 즉 늦가을 이외의 계절에 심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계절성 우울증의 발생에는 햇빛을 받는 정도나 외부의 날씨 등 환경 탓도 있지만 개인적인 특성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체 환자 3명 중 2명이 여성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보면, 최근 5년 동안 한해 평균 약 92만명이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았다. 코로나19 유행 직전인 2019년에는 약 80만명에 이르던 환자 수가 최근 5년 동안 계속 증가해, 2023년에는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겨 약 105만명을 기록했다. 많은 다른 질환과는 달리 코로나19 유행 기간에도 환자 수가 늘어 세계적인 감염병 유행으로 전반적인 우울감이 더 커졌다는 추정도 나온다. 우울증 발생 및 악화에 관여할 수 있는 계절적인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 월별 환자 수를 집계해 본 결과, 2023년 기준 한달 환자 수는 평균 약 44만2천명이었다. 월마다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늦가을인 11월에는 약 45만5천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어 12월과 10월이 각각 약 45만3천, 45만2천명 순이었다. 초겨울이 지나면 환자 수는 크게 줄어 1월과 2월에는 약 3만5천명 가량이 적은 각각 41만8천명, 42만명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늦가을에 우울증이 발생하거나 악화되는 데에는 햇빛을 쬐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과 관련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햇빛을 쬐는 시간이 줄면 멜라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분비가 감소한다. 이 때문에 수면 패턴 등 생활 리듬이 깨져 우울증이 생기거나 악화한다. 평소 우울증이 없는 사람도 늦가을부터 멜라토닌 분비 양이 주는데, 마찬가지로 일시적으로 우울한 마음이 들지만 지속적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햇빛을 쬐는 시간 감소와 함께 낙엽이 떨어지는 등 주변 환경의 변화도 우울증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우울증 환자를 나이대별로 분석했을 때에는 20대부터 환자 수가 증가하기 시작해 20~40대에서 전체 환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여성의 경우에는 20대부터 크게 늘어난 환자 수가 50~60대까지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데에는 여성호르몬 수치가 급격히 낮아지는 완경(폐경)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별로는 전체 환자 3명 가운데 2명이 여성일 정도로 여성 환자 수가 많았다. 2023년 기준 여성 환자 수가 약 70만5천명인데 견줘 남성 환자 수는 이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34만2천명으로 집계됐다.
우울증의 주된 증상은 의욕 저하와 지속되는 우울감이다. 여기에 기억력 감퇴, 수면장애 등 다양한 정신 및 신체적 증상이 생겨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중요한 점은 우울감은 누구나 다 일시적으로 느끼는 것과는 다르며 몇 달 동안 지속된다는 점이다. 일부 환자들은 자신이 우울증인 것을 알지 못하며 일상생활 능력이 상당히 위축됐을 때에도 증상을 호소하지 못하기도 한다. 잠을 깊게 자지 못하고 자꾸 깨는 등 수면장애 증상도 우울증에서 흔히 나타난다. 우울증 환자 5명 가운데 4명이 이런 증상을 호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부 우울증 환자는 오히려 잠을 더 많이 자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도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자꾸 깨는 경향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식욕도 떨어져 몸무게가 줄어드는 경우도 많다. 하루 중에도 증상 변화가 나타나는데, 대체로 아침에 증상이 심했다가 오후가 되면 개선되는 양상을 보인다. 불안 증상도 우울증 환자 10명 가운데 9명에서 나타나는 흔한 증상이다. 집중력이나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증상도 상당수에서 나타날 수 있다. 우울증의 가장 심각한 합병증은 자살 생각이나 시도이며, 전체 환자 3명 가운데 2명이 자살 생각을, 10명 가운데 1명 이상이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계절성 우울증 역시 일반적인 우울증과 마찬가지의 증상을 보이는데, 다만 수면이나 식욕 측면에서는 비전형적인 특성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 즉 평소보다 잠을 더 많이 잔다거나 식욕이 증가해 몸무게가 늘 수 있다. 식욕은 특히 탄수화물 섭취에 다소 집착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생활 지장 땐 약물치료, 습관 교정 필요
우울증인지 잘 모르고 혼자 감당하려 하다가 일상생활이 망가지고 난 뒤에야 주변 사람들에게 이끌려 병원을 찾게 되는 경우도 많다. 관련 전문의들은 우울감이 지속돼 괴로움을 느끼거나 직장이나 학교 등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수준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진료를 받을 것을 권고한다. 진료를 통해 필요하다면 약물치료도 받아야 하며, 생활 습관을 교정해 우울증의 악화 가능성을 낮추고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약물치료는 말 그대로 우울 증상을 개선하는 항우울제를 쓴다. 항우울제는 작용 원리에 따라 종류가 매우 많다. 최근에는 부작용은 적으면서 치료 효과는 충분히 나타나는 약들이 많이 나와 있으므로 관련 전문의와 상담해 처방을 받으면 된다. 다만 약물치료는 일반적으로 그 효과가 빠르면 며칠만에도 나타나지만 수 주가 지난 뒤에야 비로소 효과가 확인되기도 한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대체로 최소 4~6주 정도는 약을 먹어봐야 그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증상 악화나 개선의 정도에 따라 약의 용량은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줄이거나 늘릴 수 있다. 증상이 개선된 뒤에도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약을 그대로 먹는 것이 필요하다. 대체로 6달 가량은 유지하도록 권장된다. 약물치료와 함께 심리상담 치료도 증상 개선과 재발 방지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울증 예방을 위한 생활습관이 의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조절하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좋게 유지해 사회적인 지지를 받는다면 도움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건강관리와 마찬가지로 금주, 금연 등이 권고되는데, 술이나 담배, 불법적 약물 등은 우울 증상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걷기 등과 같은 신체적 활동과 운동은 우울 증상을 감소시킨다. 걷기, 조깅이나 야외에서 하는 운동 종목 중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게 좋다. 계절성 우울증의 경우 특히 햇빛 받는 시간을 늘리되 밤에도 햇빛과 유사한 밝은 조명을 켜는 것이 좋다.
김양중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경북의 한 시골 마을에서 공중보건의로 일했다. 한겨레 의료전문기자로 재직하면서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위한 기사를 썼고,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의료 서비스 질 향상을 위한 업무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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