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광장] 세종과 한글

최태영 기자 2024. 10. 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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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지 순례' 자연스런 도시 브랜딩 사례
세종시 대표 도시 브랜드로 '한글' 주목
도시에 문화적·정신적 동질성 부여 충분
최태영 세종취재본부장

한때 재미없는 도시로 대전이 거론된 적이 있다. 먹거리, 살거리, 놀거리, 볼거리 등 '할 게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대전이 '빵잼도시'란 별칭이 붙었다. 급기야 최근 '빵지순례'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빵 사러 대전을 찾는다는 얘기다.

이런 도시 마케팅이 이뤄지기까지 성심당이라는 대표 향토 제과제빵 브랜드가 이룬 역할이 크다는 걸 모르는 시민들은 없다. 도시 브랜드나 마케팅이란 게 억지로 만들어도 쉽지 않은 노릇인데, 오랜 역사를 지닌 이 토종 기업은 이제 대전과 떼 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군산(이성당), 대구(삼송빵집), 부산(옵스) 등 전국 4대 빵 토종 브랜드 중에서도 유독 대전의 빵잼 도시 이미지가 강한 건 성심당의 독보적인 성장세가 가져 온 영향도 크다.

한국전쟁 이후 대전에 정착한 함경도 출신 창업주 고(故) 임길순·한순덕 부부가 1956년 대전역 앞 천막집에서 찐빵을 팔던 때부터 시작했으니, 성심당은 올해 딱 2년이 모자란 70년 역사를 지닌다. 1949년 대전부가 대전시로 개칭한 것과 비교하면 대전시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2세 경영인인 임영진 현 회장은 '우리의 삶으로 주위를 더 이롭게 하는 것'이란 선친의 바램을 기업 경영철학으로 승화해 성장시킨 공도 크다. 임 회장을 만나러 대전을 찾는 정치인이나 관료, 기업인들도 많다. 대통령에다 교황까지 찾을 정도로 도시 브랜딩 기여도가 큰 셈이다.

지난 8일 여행 리서치 전문기관인 컨슈머인사이트가 발표한 올해 국내 여름휴가 여행 종합만족도 조사에선 전국 16개 광역시도 중 대전이 첫 10위권에 진입해 눈길을 끌었다. 성심당의 인기에 힘입은 빵지순례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여행의 콘텐츠가 자연에서 도시 문화로 옮겨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할 정도다.

도시브랜드는 그 도시만의 디자인, 명칭, 상징물 또는 이런 것들의 결합체다. 도시 브랜딩의 목적은 도시가 가진 가치를 발굴해 도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타 도시와의 차별화를 꾀하는데 있다.

흔히 프랑스의 파리를 생각하면 에펠탑에서 여유를 만끽하는 파리지앵과 예술적인 분위기가 떠오른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를 생각하면 가우디의 독특한 건축물과 열정 가득한 분위기가 떠오른다.

특정 도시를 생각하면 왜 각기 다른 이미지가 떠오를까. 그 바탕엔 도시 브랜딩이 있다. 이는 도시마다 가진 독특한 매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세종시는 그동안 '행정수도' 이미지가 줄곧 강조돼 왔다. 행정수도, 행정도시, 기업도시 등등 많은 분산과 분열, 혼란이라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인문학자였던 고(故) 남경태 선생은 "분산은 차이를 낳고, 통합은 동질성을 낳는다. 차이만 있고, 동질성이 없다면 같은 문명이나 문화권을 형성할 수 없다"고 했다.

분열과 분산을 거듭해 왔던 세종시 탄생의 근저에 최소한의 통합성을 부여한 요소는 두 가지다. 하나는 국토균형발전이고, 다른 하나는 수도권 집중 해소다. 세종시가 역사적·현실적 동질성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이유다.

여기에 최근 또 하나의 도시 브랜딩이 진행 중이다. 바로 세종시에 문화적·정신적 동질성을 부여해 줄 '한글'이다. K팝, 영화, 드라마 등 K콘텐츠의 성장, K식품과 K뷰티 등 한류 바람과 함께 한국어 학습 열기마저 뜨거워지고 있는 마당에 세종대왕의 묘호에서 딴 도시답게 '한글 도시'라는 마케팅을 할 수 있는 근거도 갖췄다.

올해 12회째로 가장 큰 시민 축제인 '세종축제'의 이번 테마는 세종대왕의 '한글', 장영실의 '과학', 박연의 '음악'이다. 올해로 578돌을 맞는 한글날에 맞춰 시와 문화관광재단이 내건 도시 슬로건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가 문화강국, 기술강국의 반열에 오른 게 우리 민족의 한글 때문이란 해석에 토를 다는 이도 없다. 이제 한글은 단순한 문자 체계를 넘어 문화를 보존하고, 소통을 돕는 강력한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세종시가 보여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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