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중국萬窓] "하늘선 `비익조`, 땅에선 `연리지` 되리"… 영원한 사랑의 노래

2024. 10. 11. 06: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이별, 그리고 그리움은 인간의 영원한 감정으로 동서 고금의 문학이나 예술 작품의 주요 주제가 돼왔다. 연인이나 사랑하는 가족을 향한 애틋한 마음과 그리움, 이별을 노래한 작품은 울림을 준다. 가령 은은한 달빛이 내리비치는 밤 중국 당(唐)의 시인 노륜(盧綸)이 '흥선사뒤 연못에 붙여'라는 시에서 읊은 "달은 몇번이나 나무를 비추었고, 꽃은 몇번이나 사람을 만났을까"라는 구절을 만나면 바람이 살랑이는 가을날 사랑과 그리움, 이별의 감정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다.

◇고대 서민의 애환을 담은 시가집 시경

'시경'(詩經)은 중국 최초의 시가집이다. 311편의 고대 민요를 '풍'(風), '아'(雅), '송'(頌)의 3부로 나눠 실었다. 이가운데 6편은 제명(題名)만 있어 가사가 있는 것은 305편이다. '풍'은 서민의 노래로 위나라 정나라 등 15개 제후국의 민요를 담고 있다. '아'는 천자국 주나라 지역의 가락으로 조회(朝會)나 연향(宴饗) 때 연주하는 노래이며, '송'은 선현을 기리는 춤곡이다. 공자는 시경에 실린 삼백편의 시를 한마디로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思無邪·사무사)라고 했다. 남송의 대유학자인 주희(朱熹)는 시경에 실린 많은 시들을 군주를 향한 일편단심으로 풀었지만, 백성들의 희로애락 등 진솔한 감정을 담은 시들도 적지 않다. 시경 맨 첫 시가 주남(周南)의 '관저'(關雎)다. 관저는 물수리라는 새다.

關雎(관저·물수리)

關關雎鳩, 在河之洲 (관관저구, 재하지주 ·구룩구룩 물수리, 강가 섬에서 우네)

窈窕淑女, 君子好逑 (요조숙녀, 군자호구·요조숙녀는 군자의 좋은 짝이라네)

參差荇菜, 左右流之 (삼치행채, 좌우류지·올망졸망 마름풀을 이리저리 헤치며 찾아)

窈窕淑女, 寤寐求之 (요조숙녀, 오매구지·요조숙녀 자나깨나 구하네)

정숙하고 아름다운 아가씨로 인해 젊은 사내가 마음을 졸이는 장면이 연상된다.

한대(漢代)의 민가(민간의 노래)인' 상야'(上邪)는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내용으로, 연인을 향한 마음이 강철같다.

上邪(상야·하늘이시여)

我欲與君相知, 長命無絶衰 (아욕여군상지, 장명무절쇠·내 그대를 알고부터, 영원토록 사랑 변치 않기를 바라노네)

山無陵, 江水爲竭 (산무릉, 강수위갈·산이 닳아 평지가 되고, 강물이 모두 마르고)

冬雷震, 夏雨雪(동뇌진, 하우설·겨울에 천둥과 번개가 우르릉거리고, 여름에 비와 눈이 날리며)

天地合, 乃敢與君絶(천지합, 내감여군절·저 하늘과 땅이 합쳐진다면 내 감히 그대와 헤어지리다)

산줄기가 없어지고 강물이 다 마를때, 겨울에 여름처럼 천둥이 치고 여름에 겨울처럼 눈보라가 칠때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하늘과 땅이 합쳐지는 게 불가능한 것처럼 연인과 결코 헤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장한가'(長恨歌)는 당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 ~ 846년)가 지은 명시다. 현종(玄宗)과 양귀비의 사랑이 소재로, 120행 840자로 된 장편 서사시(敍事詩)이기도 하다. 장한가는 크게 세부문으로 이뤄져 있다. 처음은 총애를 받던 양귀비가 '안록산의 난'으로 죽는 장면, 둘째는 양귀비를 잃고난 후 현종의 쓸쓸한 생활, 마지막은 죽어 선녀가 된 양귀비와 다시 만나는 장면이다. 다음은 장한가의 한 대목으로 지금도 회자되는 명구다.

在天願作比翼鳥 (재천원작비익조·하늘에선 비익조 되고)

在地願爲連理枝 (재지원위연리지·땅에서는 연리지 되리라)

天長地久有時盡 (천장지구유시진·하늘과 땅의 오래됨도 끝날 날 있겠지만)

此恨綿綿無絶期 (차한면면무절기·아루지 못한 사랑의 한 그칠 날 없어라)

비익조(比翼鳥)는 암수가 각각 눈 하나와 날개 하나만 있어 짝을 지어야만 날 수 있다는 전설의 새다. 비익은 날개를 나란히 한다는 뜻으로, 가까운 연인이나 친구를 비유한다. 연리지(連理枝)는 뿌리는 다른 두 나무의 줄기나 가지가 연결돼 하나가 된 나무다.

남송의 우국 시인 신기질(辛棄疾)이 '청옥안·원석'(靑玉案·元夕)에서 노래한 "인파속 그대 백번 천번 찾다가, 무심코 고개 돌려보니 그대 그곳에 있었네, 희미한 등불 아래"(衆裏尋他千百度, 驀然回首, 那人却在, 燈花爛珊處·중리심타천백도, 맥연회수,나인각재, 등화란산처) 라는 구절이나, 북송의 시인 유영(柳永)의 '접련화'(蝶戀花) 속 "옷 띠가 점점 느슨해지더라도 후회하지 않으리, 그대 향한 그리움에 초췌해지더라도"(衣帶漸寬終不悔, 爲伊消得人憔悴·의대점관종불회,위이소득인초췌)도 그리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리움은 사랑과 동전의 양면 관계다. 1200년전 당나라 여류 시인 설도(薛濤, 768년? ~ 832년) 시의 한 구절을 보자. '봄날의 소망'(春望詞·춘망사)이라는 오언절구다.

春望詞(춘망사·봄날의 소망)

攬結草同心 (람결초동심·풀 뜯어 마음을 하나로 매듭 지어)

將以遺知音 (장이유지음·임에게 보내려 마음먹다가)

春愁正斷絶 (춘수정단절·사무친 그리움 잦아들 때에)

春鳥復哀吟 (춘조부애음·봄새들이 다시 구슬피 우네)

風花日將老 (풍화일장로·꽃잎은 바람에 나날이 시들어가고)

佳期猶渺渺 (가기유묘묘·만날 기약 아직 아득하기만 한데)

不結同心人 (불결동심인·마음을 함께 한 님과는 맺어지지 못한 채)

空結同心草 (공결동심초·공연히 풀매듭만 짓고 있네)

임을 향한 그리움을 이처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사천(四川·쓰촨)성 성도(成都·청두)에 살던 설도는 자가 홍도(洪度)로, 지금의 시안(西安)인 장안(長安) 사람이다. 500여 수의 시를 썼다고 전해지지만 현재 남아 있는 건 90수 정도다. 설도는 두보의 초당으로 유명한 성도의 서쪽 교외에 있는 완화계 근처에서 살았다. 양질의 종이가 생산되는 곳이었다. 설도는 심홍색 종이를 만들게 해 이를 이용, 명사들과 시를 주고 받았는데 이 종이가 바로 유명한 '설도전'(薛濤箋) 또는 '완화전'(浣花箋)이다.

요석(樂石) 김성태가 작곡한 우리 가곡 '동심초'(同心草)의 노랫말이 바로 설도의 이 시에서 나왔다. 우리 근대 시인인 안서(岸曙) 김억(金億)이 작사한 동심초 가사는 원작보다 더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가슴을 절절하게 만든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혹시 들어보지 못했다면 꼭 한번 듣기를 권한다.

'춘망사' 못지 않게 그리움과 이별을 노래한 우리 옛 한시가 있다. 고려 예종, 인종 때의 문신인 정지상(鄭知常)의 '송인'(送人)이다.

송인(送人·임을 보내며)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비 갠 뒤 긴 언덕에 풀빛 짙어오니)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임을 남포로 떠나보내니 슬픈 노래 나오네)

大洞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대동강 물은 언제 마르리)

別淚年年添綠派(별루년년첨록파·해마다 이별의 눈물을 보태는데)

"문장이 경지에 이르면 별다른 기발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적절할 뿐이고, 인품이 경지에 이르면 별다른 특이함이 있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울 뿐"이라는 채근담(菜根譚)의 말이 꼭 들어맞는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

중국의 시에는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읊은 작품들이 특히 많다. 아마도 땅이 넓어 왕래가 쉽지 않은 옛날 한번 고향을 떠나면 다시 돌아가기 어려웠기 때문이리라. 생계를 위해 타지를 떠돌거나 군역으로 변방의 전쟁터를 전전하면서 고향의 산천과 가족들을 애타게 부르는 시들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각각 시선(詩仙)과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당의 이백(李白)과 두보(杜甫)는 다음의 명시를 남겼다.

靜夜思(정야사·고요한 밤에 그리워하다) 이백

床前明月光 (상전명월광·침상 머리 맡의 밝은 달빛)

疑是地上霜 (의시지상상·땅에 내린 서리인가 했네)

擧頭望明月 (거두망명월·고개 들어 달을 보다)

低頭思故鄕 (저두사고향·고향 생각에 고개 떨구네)

마당에 늦가을의 서리처럼 달빛이 밝은 밤, 달을 바라보며 고향을 그리는 시인의 마음이 애를 끓는다.

絶句(절구) 두보

江碧鳥逾白 (강벽조유백·강물 푸르니 새 더욱 희고)

山靑花欲然 (산청화욕연·산빛 푸르니 꽃 더욱 붉네)

今春看又過 (금춘간우과·올 봄도 또 눈 앞에 지나가니)

何日是歸年 (하일시귀년·어느 날이 돌아갈 해일런고)

인생이 간난고초였던 두보의 고향 생각하는 마음이 절절하다.

◇낯선 변방에서 가족을 그리워하다

변새(邊塞)는 저 먼 국경의 요새다. 변새시는 전쟁터의 우울하고 스산한 분위기와 전쟁에 지친 고통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당 왕지환(王之渙)의 '양주사'(凉州詞)는 밴새시의 걸작으로 꼽힌다.

양주사(凉州詞·양주의 노래)

黃河遠上白雲間(황하원상백운간·황하는 멀리 흰 구름 사이로 흐르고)

一片孤城萬인山(일편고성만인산·한 조각 외로운 성 만 길 산 위에 섰네)

羌笛何須怨楊柳(강적하수원양류·변방의 애절한 피리소리 어찌 버들가지을 원망하리요)

春風不度玉門關(춘풍부도옥문관·봄바람도 옥문관을 넘지 못하는 것을)

양주는 오늘날 감숙성(甘肅省·간쑤성) 무위(武威·우웨이) 지역이며, 옥문관은 둔황시 서북쪽으로 100km 정도 떨어진 만리장성의 서쪽의 끝이다. 당나라 당시 이별할때 버들(柳柳)을 꺽어주는 풍습이 있었다. 버들 류(柳) 자가 머물 유(留) 자와 발음이 같아 떠나지 말고 남아있어 주라는 뜻을 담고 있다. 고향을 떠나 먼 변방에서 군역을 치르는 남편이나 아들이 고향과 가족을 그리는 마음을 담고 있다.

"秦時明月漢時關(진시명월한시관·진나라 때의 달, 한나라 때의 관문) 萬里長征人未還(만리장정인미환·만 리의 먼 길 떠난 사람 돌아오지 않았네) 但使龍城飛將在(단사룡성비장재·다만 용성에 날랜 장군만 있다면) 不敎胡馬度陰山(불교호마도음산·오랑캐 말 음산을 넘어오지 못하게 할 텐데)"을 노래한 당 왕창령(王昌齡)의 '출새'( 出塞)도 유명 변새시로 꼽힌다. 강현철 논설실장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