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 창에 부딪혀 죽은 새 4000마리...올해의 조류 사진가상
8개 부문 2만3000편 작품 경쟁
매년 봄과 가을이면 북미에서 13억 마리가 넘는 새들이 집과 건물 창문에 부딪혀 죽는다. 바로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 조류 충돌)’ 사고다. 유리에 반사된 빛을 하늘로 착각해 그대로 날아가다 부딪히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캐나다 토론토에선 30년 넘게 자원봉사자들이 매일 아침 버드 스트라이크로 땅에 떨어진 새를 수거해 추모 행사에서 공개하고 있다.
세계 최대 조류 사진전인 ‘올해의 조류 사진가상(Bird Photographer of the Year·BPOTY)’은 지난달 24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수거된 새 4000마리의 사체들을 카메라에 담은 자연 다큐멘터리 작가 패트리샤 호모닐로를 올해의 조류 사진작가로 선정했다. 호모닐로 작가는 “많은 사람들이 이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아 건물 창에 조류 안전 유리를 설치하도록 경각심을 촉구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고 말했다.
8회째를 맞은 이 상은 새를 주제로 인간이 환경에 미치는 비극적인 영향과 환경 보존의 중요성을 알리는 목적으로 열리고 있다. 올해는 전 세계에서 2만3000편이 출품돼 최고의 새 초상화, 환경 속의 새, 새의 행동, 비행 중인 새, 흑백, 도시 새, 보존, 동영상 등 8개 분야에서 경쟁했다. 올해의 조류 사진가에 선정된 호모닐로 작가는 보존 부문 금상도 차지했다. 수상 작품들은 공식 홈페이지(www.birdpoty.com)에 공개됐으며 미국 프린스턴대 출판부에서 만든 도록에 실렸다.
◇숲의 최고 포식자를 먹는 자연의 청소부
독수리는 야생에서 최고 포식자이면서도 동물의 사체를 해결하는 청소부 역할을 한다. ‘새의 행동’ 부문에서 금상을 받은 미국 작가 너새니얼 펙은 2023년 3월 미 동부 웨스트버지니아에서 흑곰의 사체를 먹고 있는 대머리 독수리의 모습을 렌즈에 담아 ‘자연의 청소부(Scavenger)’로 이름을 지었다. 작가는 곰 사체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사체를 먹는 동물을 관찰하기 위해 카메라를 설치하고 6개월간 기다렸다고 한다.
은상은 송골매 새끼가 사냥 연습 삼아 나비를 쫓는 모습을 담은 미국의 작가 잭 지에게 돌아갔다. 사진 속 새끼 송골매는 아직은 날아가는 새를 잡을 만큼의 실력을 갖추지 못했고 먹이도 어미에게 의존했다. 하지만 펄럭이며 나는 나비를 쫓아다니며 1주일 만에 사냥 실력이 일취월장했다고 작가는 전했다.
동상은 2023년 1월 대서양 포클랜드 제도 앞바다에서 남방 바다사자가 물속에서 마젤란 펭귄을 공격하는 순간을 포착한 노르웨이 작가 톰 샨디의 작품 ‘공격’이 받았다.
미국의 사진작가 앨런 머피는 ‘최고의 새 초상화’ 분야에서 최고상인 금상을 받았다. 작가는 알래스카에 머무는 동안 숙소인 호텔 옆에 모여든 회색왕관 장밋빛핀치새의 우아한 모습을 렌즈에 담았다. 배경의 분홍색은 멀리 선착장에 정박한 배들이 흐릿하게 나타난 것이다.
영국 작가 새무엘 스톤은 한국에선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혹고니 두 마리가 안개 낀 아침 햇살 아래 호수를 헤엄치는 모습을 겹쳐서 탐미적으로 담아낸 ‘스완셉션(Swanception)’이란 작품으로 ‘최고의 새 초상화’ 부문 은상을 받았다.
핀란드 작가 마르쿠스 바레스부오는 겨울의 끝 무렵 이른 아침 부추밭에서 뜨거운 숨결을 뿜어내며 짝짓기 경쟁을 하는 수컷 멧닭의 모습을 담은 작품으로 동상을 받았다.
◇하늘과 바닷속 누비는 새들의 우아한 비행
공중에서 빠르게 날갯짓을 하는 새를 순간 포착한 사진은 자연과 기술의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비행 중인 새’ 부문에선 인도 작가 허미스 하리다스는 일출 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알 쿠드라 호수에서 후투티가 날개를 부드럽게 펼치며 우아하게 날아오르는 모습을 담은 ‘새벽의 속삭임’이란 작품으로 금상을 받았다.
오디새로도 불리는 후투티는 여름철 한반도를 찾는 철새로 알려져 있다. 작가는 이 새가 먹이를 잡을 때마다 매번 같은 방향으로 날아간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아내고 해가 뜨기 전 미리 자리를 잡고 있다가 일출을 배경으로 날아오르는 후투티의 실루엣을 포착했다.
프랑스 작가 니컬라스 그로팔은 멸종위기종인 오색방울새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 ‘천상의 우아한 비행’으로 이 분야 은상을 받았다. 작가는 플래시가 촬영의 마지막 순간에 터져 동적 움직임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인 ‘후막동조’ 촬영기술로 한겨울 씨앗을 먹기 위해 찾아온 오색방울새의 우아하고 섬세한 모습을 포착했다.
동상을 받은 쿠웨이트 작가 술리만 알라티키는 미국 캘리포니아 반도와 멕시코 본토 사이에 자리잡은 코르테즈해에서 특이한 외모로 유명한 갈색얼가니새가 바다 위에서 쉬다가 이륙하려는 순간의 모습을 담았다. 작가는 새들로부터 약 10m 떨어진 물속에 머물다가 새의 움직임을 살펴보며 천천히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이 순간을 포착했다.
북방가넷은 북대서양에서 가장 큰 바닷새로, 수심 22m까지 잠수할 정도로 수영 실력이 능숙하다. 한때 약 2만5000마리로 추정되던 이 새들은 조류독감의 확산으로 개체 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 환경 부문에서 금상을 받은 미국 작가 캣 저우는 영국 셰틀랜드에서 화창한 날 바다에 뛰어든 북방가넷 세 마리를 물속에서 포착했다.
스위스 사진작가 레비 피체는 남대서양 포클랜드 제도에서 젠투펭귄이 사냥을 마치고 마치 서핑을 하듯 파도를 타고 돌아가는 순간을 포착해 은상을 받았다. 젠투펭귄은 한동안 조명에 쓰니는 기름이나 식량으로 사용하기 위해 사냥을 당하면서 서식지가 급속히 파괴됐다.
덴마크의 작가 요나스 베이어는 남국해에서 비둘기바다제비들이 열심히 무언가를 잡아먹는 모습을 촬영한 작품으로 동상을 받았다. 작가는 대형 수중 카메라를 들고 가까이 다가갔는데도 새들이 먹이 먹기에 너무 바빠서 제 주변을 신경 쓰지 않은 모습에 놀랐다고 했다.
◇예술적인 영감과 웃음을 주는 새들
호주 작가 데이비드 스토우는 시드니 폴리오세팔루스 습지에서 먹이를 먹으려고 물속으로 들어간 흰머리논병아리가 노처럼 생긴 발로 물을 차는 모습을 포착한 사진으로 흑백사진 부문 금상을 받았다. 작가는 습지 위에서 아래 쪽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는데 약간의 상상력을 더하면 새와 물결의 조합이 하마 머리처럼 보인다고 해서 ‘하마 인상(Hippo Impression)’으로 이름을 붙였다.
은상을 받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사진작가 윌리엄 스틸은 아프리카 보츠와나 오카방고 델타 지역에서 달 일부가 지구 그림자에 가리는 반월식이 진행되는 동안 죽은 나무 꼭대기에서 둥지를 틀 곳을 찾는 왜가리의 모습을 담았다.
미국 작가 스파키 스텐서스는 창문을 통해 사진을 찍지 않는다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금기를 깼다. 그는 미네소타주 칼튼 카운티에서 거실 창문 너머 눈밭에 서있는 야생 칠면조의 모습을 담은 작품으로 동상을 받았다.
인간에게 웃음과 위안을 주는 새들은 자연에서 종종 발견된다. 미국의 사진작가 나디아 하크는 남극 아델리 지역에서 남편과 10살짜리 아들과 앉아있다가 해빙 위에 있던 아델리 펭귄 무리에서우스꽝스런 행동을 발견했다. 이 코미디 부문의 금상작은 펭귄들이 현대무용을 하는 것처럼 이동용 썰매인 터보건을 타고 미끄러지며 내려오는 모습을 렌즈에 담았다.
코미디 사진 부문 은상 수상자인 미국 사진작가 로버트 글렉너는 플로리다주 클리어워터의 한 인구 밀집 지역에서 북미귀신소쩍새 한 마리가 죽은 야자나무에 뚫린 구멍에서 얼굴을 내미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둥지짓기 시즌에 이들 부엉이는 종종 나무에 생긴 구멍을 둥지로 사용한다.
동상을 받은 영국 작가 캐리 콜리어는 3월 어느 어두운 저녁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비샌즈 자연보호구역에서 사파리 투어를 마치고 캠프로 돌아오는 도중 헬멧때까치들이 차량 전조등 빛을 받으며 길게 도열한 모습을 담았다.
◇새들의 치열한 생존 투쟁
도시 새들은 인간과 생활권을 나눠 쓰는 중요한 이웃이 되고 있다. 도시에 잘 적응한 새들은 시골새보다 번식력이 강하고 기회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폴란드 작가 그르제고르즈 드우고쉬는 작품 ‘위험한 여정’에서 새끼들을 먹이가 많은 강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미 구샌더(비오리)의 모습을 담아 ‘도시 새’ 부문 금상을 받았다.
이 어미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를 가로지르는 비스툴라강에서 1km 떨어진 공원에서 알을 낳았다. 새끼들을 먹이가 풍부한 강까지 이동시키려면 지하 통로와 6차선 고속도로를 건너야 하는데 지하 통로 대신 작은 도로를 경로로 선택했다.
은상을 받은 헝가리 사진작가 볼디사르 슈슈츠는 헝가리 페츠시의 한 고층 아파트 테라스에 설치된 상자를 보금자리 삼아 사는 황조롱이의 모습을 담았다. 황조롱이는 최근 먹이가 풍부한 도시에 둥지를 틀 수 있는 고층 건물이 늘면서 점점 도시로 몰리고 있다.
체코 사진작가 토마스 그림은 어느 겨울 독일 베를린의 텔레비전타워에서 사는 까마귀들의 모습을 담아 동상을 받았다. 까마귀는 조류 가운데 가장 지능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억력과 학습능력이 뛰어나다.
호주 사진가 청 강은 인도네시아의 섬 발리의 한 새 거래 시장에서 다른 새장에 갇힌 채 서로를 마주보는 앵무새 한 쌍의 모습을 담았다. 보존 부문 은상을 받은 이 작품은 인간의 즐거움과 소유욕으로 포로 신세가 된 야생 조류의 모습을 통해 조류 거래 시장의 가혹한 현실을 꼬집었다.
동상을 받은 미국 작가 조슈아 갤리키는 영국 스코틀랜드 노스섬에서 낚싯줄에 걸려 죽어가는 북방가넷과 주변을 떠나지 않은 동료 가넷의 모습을 담았다.
◇미래의 조류 사진가들
2024년 올해의 젊은 새 사진가(Young Bird Photographer of the Year 2024)에는 스페인에 사는 14세 소년 작가 안드레스 루이스 도밍게스 블랑코에게 돌아갔다. 그는 스페인 남부의 한 숲에서 떡갈나무를 타고 내려오는 동고비를 창의적인 각도로 촬영한 작품으로 수상했다.
독일에 사는 청소년 에밀 바그너는 젊은 조류 사진가상 15~17세 분야에서 금상을 받았다. ‘인간과 자연, 그리고 개’라는 작품은 발트해와 마주한 독일 메클렌부르크의 한 해변에서 물떼새 일종인 개꿩에 다가서는 사람과 새의 존재를 미처 알아채지 못한 견공의 모습을 담았다.
미래 조류 사진가를 위한 11세 이하 상도 마련됐다. 독일의 율리안 멘들라는 독일 바트 부하우의 페데르제에 호수에서 물고기 사냥에 나선 새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 호수는 유럽에서 수많은 철새들의 월동지로 유명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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