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공〉 흥행 요인은 중국 정부의 개입?

이상원 기자 2024. 10. 11.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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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제작사가 만든 RPG 게임 〈오공〉의 돌풍이 심상찮다. 막대한 제작비 때문에 게임 선진국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AAA 게임’ 분야에서도 중국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8월23일 중국 베이징에서 한 시민이 <검은 신화:오공> 홍보물 앞을 지나가고 있다. ⓒAP Photo

세계 게임업계가 술렁인다. 8월20일 출시된 〈검은 신화: 오공〉(이하 〈오공〉) 때문이다. 발매 사흘 만에 1000만 장 이상 팔렸고 한 달 만에 2000만 장을 돌파했다. 역대 출시된 게임 중 가장 빠른 추세다. 〈오공〉의 인기가 어디까지 이를지는 알 수 없다. 수억 장 이상 팔린 ‘역사적 명작’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보는 이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거둔 성적만 봐도 중국 게임의 역량을 괄목상대하기에는 충분하다.

〈오공〉은 중국 제작사 게임사이언스가 개발한 액션 RPG 게임이다. 〈서유기〉를 모티브로 삼았다.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손오공’은 여의봉과 도술을 이용해 각종 요괴를 무찌르게 된다. 상대하는 주요 두목은 81종이다. 〈서유기〉에서 삼장법사가 겪은 시련의 가짓수와 같다. 평단 반응도 좋다. 대중문화 평점 집계 웹사이트 ‘메타 크리틱’에서 〈오공〉은 평균 81점(100점 만점)을 받았다. ‘대체로 호의적’에 해당한다. 비평 88개 중 ‘부정적(negative)’이라고 평가한 것은 없다. 한 국내 게임업계 관계자는 “발매 전 엠바고가 걸려 주변 평가를 못 보는 상황에서 미리 플레이했는데도 정말 너무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기술적으로는 광원 효과를 매우 잘 썼고 여의봉을 이용한 다양한 게임 플레이도 마음에 들었다”라고 말했다.

중국은 이미 게임 강국이다. 특히 모바일 게임 부문에서는 수많은 히트작을 낸 바 있다. 〈오공〉에 새삼 이목이 쏠리는 까닭은 ‘AAA 게임’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AAA 게임은 블록버스터 영화에 비견된다.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게임계에서 두루 쓰이는 개념이다. 가장 큰 특징은 막대한 제작비다. 〈오공〉은 6년간 1000억원 이상 들였다고 알려져 있다. 대표적 AAA 게임인 〈그랜드 테프트 오토 5〉(2013)에는 3000억원가량,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2022)는 2000억원 이상 들어갔다. 들인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게임사는 AAA 게임의 가격을 높게 매긴다. 대체로 장당 5만~6만원 이상이고 10만원을 호가하는 게임도 있다.

AAA 게임은 단순히 ‘돈을 많이 들인 게임’이나 ‘비싼 게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게임사의 수준, 소재국의 역량, 나아가 게임이라는 장르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대표선수 구실을 한다. ‘영화 같은 게임’ ‘예술적 게임’이라고 평가받는 것 대다수가 AAA 게임이다. 막대한 제작비는 최첨단 그래픽 기술, 깊은 서사, 흡인력 있는 연출에 쓰인다. ‘좋은 AAA 게임’은 자본만 부어서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영화나 문학처럼 한 사회의 정신적 가치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매해 세계 게임 시상식을 휩쓸어온 AAA 게임은 장인정신과 이제껏 노하우를 갖춘 서구권·일본 개발사의 전유물이었다. 이 판에, 중국의 낯선 개발사가 만든 〈오공〉이 등장한 것이다.

〈오공〉이 한국 게임업계에 던진 질문

게임계 동향에 밝은 이들은 〈오공〉의 성공을 ‘깜짝 사건’이라고 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2020년 트레일러(예고편)를 공개한 이래 〈오공〉은 꾸준히 최대 기대작이었다”라고 입을 모은다. 중국 AAA 게임의 흥행이라는 ‘기현상’을 분석한 외신 기사도 일찌감치 나왔다. 미국 게임 웹진 〈폴리곤〉은 2022년 2월 ‘명품 중국 게임의 부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낸 적이 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오공〉은 중국 게임산업 변화의 한 단면이며, 놀랍게도 그 비결 중 하나는 중국 정부의 규제다.

〈폴리곤〉은 2018년께부터 중국 내에서 게임 판매 허가(일명 ‘판호’)를 받는 일이 점점 어려워졌다고 지적한다. 이 시기 한국 게임의 중국 진출이 어려워지자, 한국 내에서는 사드 배치에 따른 차별적 보복 조치, 이른바 한한령(限韓令)이 적용됐다는 설이 파다했다. 그러나 〈폴리곤〉 기사는 게임시장 조사업체 니코파트너스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중국 게임사 역시 “2018년 이전에는 자국 내에서 게임 판매 허가를 받기 쉬웠지만 이후에는 일정한 제한이 생겼다”라고 썼다. “가장 적합한 게임, 까다롭기로 유명한 (중국) 정부 규정을 통과하는 게임만 라이선스를 받는다.”

론칭할 수 있는 게임의 총량이 줄자 중국 게임사에는 두 가지 유인이 생겼다. 첫째, 해외 진출이다. 자국 내에서 사업하기 어려워졌으니 세계시장에서 가능성을 찾은 것. 서구권 게이머들은 그간 중국 내 주류였던 도박성 게임을 혐오하고 ‘작품성’에 주목한다. 그리고 PC나 모바일 게임 이상으로 콘솔(게임기) 게임에 열광한다. 둘째, 프로젝트 하나로 큰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했다. 해마다 게임 5개를 만들 수 있는 돈을 쥔 회사가 정부 규제 탓에 한 개밖에 판매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예년과 비슷한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개발비를 많이 들이되 그만한 이익을 얻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AAA 게임은 ‘세계적으로 선호받는 게임’과 ‘작품 하나당 거두는 이익이 큰 게임’ 두 조건 모두를 충족하는 해결책이었다. 마침 중국 게임업계는 마이크로소프트, EA 등 해외 AAA 게임 전문 기업의 일감을 받으면서 그들의 노하우까지 확보해둔 상태였다.

규제가 역설적으로 산업을 발전시키기도 한다는 주장은 한국 국내 게임계에서 인기가 없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 2022년 3·4월호에서, 중국의 게임 규제를 두고 “건전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려는 (중국) 당국 의도와 달리, 다양성과 참신함을 내세운 우수 중소기업조차 줄도산 위기에 직면한다면 (중략) 결국 소수의 대기업이 독식하는 구조로 변할 수 있다”라고 적었다. 지난 5월1일 정부가 ‘게임산업 진흥 종합계획’에서 콘솔 게임을 집중 양성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자 업계에서는 ‘콘솔 중심 AAA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인력과 기술을 확보한 기업은 일부 대기업뿐’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한국 게임이 너무 오랜 시간 체질 개선 요구를 받아왔고, ‘자정’이 어려워 보인다는 평가는 이용자 사이에서 파다하다.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도 사행성에 의존해 돈을 벌어들인 뒤 금세 게임 서비스를 종료하는 일이 되풀이됐다. 〈오공〉의 성공이 한국 게임업계 비판으로 이어진 배경이다.

물론 게임이 성공한 데에는 다른 요인들도 작용한다. 막대한 자본을 들인 〈오공〉만큼은 아니지만, 분명 새로운 유형의 국산 게임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게임 전문 매체 〈디스이즈게임〉의 김재석 기자는 ‘한국 게임업계는 아무런 준비를 못했고,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선수를 빼앗겼다’는 접근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오공〉을 호평하면서도 “〈P의 거짓〉 〈데이브 더 다이버〉 〈스텔라 블레이드〉 등 국내에서도 최근 좋은 게임이 여럿 나오고 있다. 중국은 이미 IT 강국이고 〈서유기〉 같은 소재를 가져다 쓰면 우리보다 잘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지난여름 중국에서 출시가 예정된 콘솔 게임들을 접한 그는, “중국 게임사들이 오랫동안 씨를 뿌렸고 이제 추수 단계라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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