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소설주의자, 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작가의 30년 [사람IN]

임지영 기자 2024. 10. 11.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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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뒤 사람들이 한강 작가(54)에게 노벨문학상에 대해 자주 물었다.

10대 후반 도스토옙스키를 비롯한 러시아 문학에 매료되었던 한강 작가는 1993년,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 외 4편을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한강 작가의 대표작으로 기억하는 여섯 번째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를 배경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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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이 주목한 이 주의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 이야기에서 여운을 음미해보세요.
ⓒ시사IN 이명익

2016년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뒤 사람들이 한강 작가(54)에게 노벨문학상에 대해 자주 물었다. 같은 해 〈흰〉을 출간한 직후 마련된 기자간담회에서도 그 질문이 나왔다. 작가는 말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글을 쓸 때 독자도 생각하지 않을 때가 있다. 이 소설을 완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과 아마 완성할 수 있을 거야 같은 일말의 바람 사이에서 흔들리며 쓴다. 글 쓰는 사람한테는 그냥 글 쓰라고 하면 좋겠다. 노벨상은 책이 완성된 후 아주 먼 미래에 나오는 결과다.”

아주 먼 미래는 아니었다. 10월10일, 스웨덴 한림원이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 작가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선정 이유로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는 점을 들었다. 스웨덴 한림원 노벨문학상 위원회의 매츠 말름 종신위원장이 수상 소식을 전하기 위해 작가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아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막 마친,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아시아 여성 작가로는 최초이며,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은 고 김대중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1970년 전남 광주시(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난 한강 작가는 어릴 때부터 책에 둘러싸여 지냈다. 가난한 소설가였던 아버지 한승원 작가가 집을 가구 대신 책으로 가득 채웠다. 집안 풍경은 정리를 미뤄둔 헌책방처럼 무질서했다. 10대 후반 도스토옙스키를 비롯한 러시아 문학에 매료되었던 한강 작가는 1993년,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 외 4편을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잡지 〈샘터〉에서 기자로 일할 때였다.

이후 〈여수의 사랑〉 〈검은 사슴〉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등의 소설과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발표했다. 서울예술대학에서 12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문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한강 작가 작품의 특징으로 시적인 울림과 서정성 짙은 문장이 꼽힌다. 고영직 문학평론가는 ‘어둠의 상태에 놓인 인물들의 부서진 내면을 응시하며 빛의 세계로 이끌어내려는 작가 특유의 문학적 윤리’가 한강 소설의 미학이라고 설명했다.

많은 이들이 한강 작가의 대표작으로 기억하는 여섯 번째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를 배경으로 한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지 않고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고 느꼈다고 밝히기도 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이 작품에 대해 “신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오늘날 산문의 혁신을 일궈냈다”라고 평가했다.

한강 작가가 해외에서 상을 받을 때마다 ‘한국인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맨부커상 수상 이후 〈소년이 온다〉와 짝을 이루는 작품이자 제주 4·3항쟁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 문학상’ 외국문학상을 받았다. 줄곧 인간의 폭력성을 화두로 삼은 한강 작가는 소설을 쓴다는 이유로 ‘그들’의 상처를 다시 열고 싶지 않아 주로 증언을 읽는 방식으로 취재를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메디치 문학상 수상 이후 연 기자간담회에서 작가는 “상을 받은 순간보다 소설을 완성한 순간이 가장 기뻤다”라고 말했다. 쓰는 동안에는 독자도 생각하지 않는 철저한 ‘소설주의자’가 데뷔 30년, 한국 문학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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