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고통 앞에 인간을 묻다… 변방인 한국어 문학, 세계 중심으로 진입

이광호 문학평론가·문학과지성사 대표 2024. 10. 11.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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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 문학평론가 기고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변방의 언어인 한국어 문학이 세계문학의 중심으로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다. 오랫동안 세계문학은 서구-남성-백인-거대 서사를 중심으로 움직여 왔다. 상대적으로 동양-여성-여성 언어는 비주류에 속했고, 더욱이 한국어는 세계 보편의 언어의 장에서 주변부에 속한 것이어서 ‘번역’이라는 어려운 매개의 과정이 필요했다. 한국어 문학을 세계문학의 보편 언어로 번역해낼 수 있는 유능한 번역자들의 출현은 이번 수상에 크게 기여한 부분이겠지만, 그런 번역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매력을 한국문학이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세계문학의 중심이 아시아의 여성 언어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최근 몇 년간의 중요한 흐름이었다. 아시아 여성은 지역적으로 그리고 젠더적으로 이중으로 주변화되어 있어서, 세계문학에서 아직 평가받지 못했던 인간과 역사에 대한 새로운 언어와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강 작가는 계간지 ‘문학과사회’를 통해 시인으로 문학에 첫발을 디뎠다. 한강 작가의 문학적 출발이 시 장르였다는 것은, 소설 작품 속에서도 드러나는 시적 상상력의 근원을 짐작하게 한다.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에 드러난 시적 감성은, 작가의 소설 문법에도 스며들어 있다. 상처와 사랑에 대한 정밀한 감수성을 보여준 ‘여수의 사랑’ 등 단편소설을 통해 작가는 소설의 영역에 진입했으며, ‘노랑무늬영원’에까지 이르는 작가의 뛰어난 단편들은 한국 단편 미학의 최전선에 있는 것이었다. 한강 작가의 지속적인 관심은 인간의 아름다움과 고통이었고, 남성 서사에서의 익숙한 소설적 화법을 넘어서는 글쓰기로 문학화되었다. 소설 ‘채식주의자’가 남성적인 제도적 폭력에 대한 식물성의 저항의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바람이 분다, 가라’는 미스터리한 서사를 통해 여성들의 사랑의 역사를 드러내고 있으며, ‘소년이 온다’는 그런 상상력이 광주라는 역사적 트라우마와 만나 한국소설에서 예외적인 고통의 언어를 보여주었다. 최근작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 고통의 언어가 제주라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현재적인 아픔으로 환기시키면서 문학적 애도의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낸다.

“세상은 왜 이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잔인한가. 상실과 고통 앞에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나”라는 한강 작가의 오래된 질문은, 이제 한국문학 안에서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보편성을 갖는 질문이 되었다. 이번 수상에는 그동안 한국 콘텐츠가 세계문학에서 보여준 매력과 한국의 여성문학이 세계문학에서 드러낸 역량과 성취들이 뒷받침 되었을 것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문학 그리고 한국문화가 대중문화 너머의 예술적 영역에서 동시대의 세계 무대에 서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중의 화법이 아닌 독창적인 언어로 구성된 한강의 문학은 한국문화가 고급 문화의 영역에서도 이미 세계적인 레벨에 도달해있음을 드러내준다. 한국문학에는 ‘노벨문학상 콤플렉스’라는 주변부 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결정적인 역사적 계기가 만들어졌다. 동시대 세계인의 주목 안에서 한국문학은 그 창의적 다양성을 폭발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제 ‘한강’이라는 익숙한 고유명사는 한국문학의 고유성이 동시대의 세계인과 연결되는 놀라운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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