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좀처럼 달변을 늘어놓지 않는다, 내면 깊은 곳에서 할 말을 꺼내 오느라…

박해현 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2024. 10. 11.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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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소설가 한강은…
박해현 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한강을 만나서 대화를 나눠본 지 오래됐다. 지난해 11월 중순에 얼굴을 본 뒤 지금껏 접촉한 일이 없다. 그때 한강은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메디치 문학상을 받고 마악 귀국한 참이었다. 문학동네 출판사가 마련한 기자 간담회를 끝낸 그녀가 출판사 사람들과 함께 카페에 갈 때 엉거주춤 따라가서 차 한 잔 나눌 수 있었다.

나는 그때 한강에게 “메디치 문학상을 받은 덕분에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 소설가들로는 밀란 쿤데라, 움베르토 에코, 폴 오스터를 꼽을 수 있다”면서 “특히 쿤데라는 조국 체코를 떠나 사실상 프랑스에 망명한 상태에서 이 상을 받은 뒤 세계적 작가로 부상했다”고 좀 장황하게 설을 풀었다. 한강이 거둔 쾌거를 한껏 축하해주면서 미래를 향한 기대감을 잔뜩 부풀렸던 것. 하지만 그녀는 가늘게 눈을 뜬 채 배시시 웃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펜을 들어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 ‘2023. 가을. 한강 드림’이라고 서명을 해준 것이 그녀 특유의 화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원래 그녀는 과묵하다. 게다가 은둔형이다. 지난해 가을 이후 필자가 접촉하려고 해도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녀는 전화번호를 가족 이외에는 철저하게 감춘 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답답한 김에 부친인 소설가 한승원 선생님에게 연락을 해서 “제발 따님의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세요”라고 읍소한 적이 있다. 한 선생님은 처음에는 알아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곧 이메일을 보내서는 “박 형, 죄송해요. 우리 아이가 제 말도 듣지 않네요”라면서 연락처를 알려줄 수 없다고 단언했다.

아무튼 시간을 소급해볼 때 한강을 마지막으로 인터뷰해 본 것은 지난 2008년이었다. 동인문학상 최종심 후보에 소설 ‘채식주의자’가 올랐기 때문이었다. 관례대로 최종심 후보 작가들을 한 명씩 인터뷰해야 했다. 카페에 앉아 그 소설의 착상에 대해서 물었다. 그녀는 “대학생 때 읽었던 이상(李箱)의 시작(詩作) 메모 중 ‘나는 인간만은 식물이라고 생각한다’는 문장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가 결국 식물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 말았다”고 답했다.

그때 한강은 여릿여릿한 자세로 천천히 신중하게 할 말을 골랐다. 소설을 쓰는 손가락이 유난히 가늘게 보였다. 소설 ‘채식주의자’의 문체가 높은 밀도를 보여주면서도 잘 읽힌다고 덕담을 건넸더니 이렇게 답했다. “손가락이 아파서 자판을 두드리지 못할 때 손으로 집필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손으로 쓰면 이야기가 건조해지고 군더더기가 없어진다.”

한강은 시인이기도 하지만 가수이기도 하다. 지난 2007년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를 출간하면서 직접 작사 작곡해서 부르기까지 한 노래를 CD 부록으로 내놓았다. 그 이야기를 꺼냈더니 한강은 수줍어하면서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감히 그런 일을 벌였는가 싶다”고 말했다. “그때는 길 가다가 흥얼거리면 노래가 나왔다. 원래 시를 썼으니까, 노래 만드는 일이 낯설지 않았다. 시에 그냥 멜로디를 붙이는 것과 같았다.”

내친김에 소설과 노래의 차이에 대해서 물었더니 그녀의 답이 이러했다. “소설은 많이 다듬어야 하지만, 노래는 순간의 목소리이기 때문에 다듬을 수 없다. 내 목소리를 듣다 보면, 내가 이런 사람이기도 하구나라는 느낌이 든다. 소설에 비해 노래가 더 개인적이다. 내 음성이 들어있으니까. 하지만 소설을 쓰다보면 내 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러나 노래는 오로지 ‘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녀의 노래 이야기는 시학(詩學)이기도 했다. 다시 시간을 지난해 가을로 되돌리면, 그녀가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해 내놓은 설명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녀는 “이 소설은 인간의 밤 아래로 내려가서 촛불을 밝히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녀가 좀처럼 달변을 늘어놓지 않는 것은 아마도 평소에도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내려가서 할 말을 꺼내 오느라 시간이 걸리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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