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60년 전 문해력 논쟁을 보며

강지은 기자 2024. 10. 11. 00:1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글날인 지난 9일 자 본지 사회면에 2030 세대의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기사를 썼다. 조선닷컴 댓글은 예상대로였다. “한자를 모르면 반(半)문맹” “독서 부족이 가장 큰 원인” “휴대폰만 들고 있으니 머릿속에 생각이 있을 리 없어” 등등. 2000년생인 기자는 지난 2월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 4년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精讀)한 책이 얼마나 되는지 헤아려 봤다. 놀랍게도 10권도 되지 않았다. 요즘은 초·중·고와 대학에선 교과서 한 줄 읽지 않아도 시험에서 100점을 받을 수 있다. 요약 자료가 워낙 잘돼 있기 때문이다.

원전(原典)을 붙들고 있는 행위는 고득점에 도움이 안 되는 비효율적인 일로 치부된다. 기성세대는 2030 문해력 저하가 독서 부족 탓이라며 혀를 찬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에 10초 간격으로 도파민을 폭발시키는 온갖 자극적 콘텐츠가 널린 시대이니 책을 안 읽는 건 당연하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하지만 이런 이기(利器)들이 없었던 수십 년 전에도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나 만연체 문장으로 악명 높은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작품을 완독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1967년 3월 11일 자 조선일보 만물상은 “일류대학을 나왔다는 학사들의 취직시험 답안지를 보더라도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한문의 오자”라고 지적한다. 사랑(love)을 思郞이라고 쓰고 피투성이를 被投性이라고 썼다는 것이다. 만물상 필자는 “오늘의 대학생을 무식하다고 꾸짖기 전에 한자 교육의 난맥상부터 규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한다.

1962년 7월 17일 자 경향신문은 젊은 층의 독서가 ‘덤벙덤벙 읽는 간이식(簡易式)’이라며 “학생들이 책과는 담을 쌓고 지낸다”고 한탄한다. “장편보다는 단편을, 눈으로 읽기보다 귀로 들으려 한다”는 문장은 2024년 쇼츠 열풍을 내다본 듯하다. 입시에 매몰돼 제대로 된 독서 경험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조선 숙종실록(1684)에도 한 신하가 임금에게 “요즘 문관(文官)들이 문의(文義)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독서 공부가 전보다 줄었다”고 탄식하는 구절이 있다. 이 땅의 문해력 논란이 수백 년 전통임을 알 수 있다.

혼숙(混宿)을 ‘혼자 숙박’ 아니냐는 젊은 세대를 보며 기성세대는 “무식하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혼밥’ ‘혼술’은 이해해도 혼영(혼자 영화) 혼공(공부) 혼쇼(쇼핑) 혼행(여행)의 뜻을 아는 기성세대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한자어는 물론이고 순우리말이나 외래어까지 줄임말로 만드는 현상은 임란(임진왜란) 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육사(육군사관학교) 등 한국어 고유 특성이다. 엄연한 한국어 문해 전통을 계승하는 신세대 어휘에 대해 기성세대는 얼마나 문해력을 갖추고 있는지도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