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232] 물가가 늘어도 괜찮을까요

양해원 글지기 대표 2024. 10. 11.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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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표지판, 눈에 들어온 게 신통하다. ‘우회전 시 일단 멈춤.’ 내용이 문제가 아니다. 두세 살짜리 키 높이에, 신호 없는 횡단보도에서 고작 5미터쯤 떨어졌을까. 그것도 굽이진 길모퉁이 울타리다. 높이가 최소 1미터, 거리도 최소 10미터는 돼야 통하련만. 그러고 보니 높이와 거리에 들어맞는 ‘최저’ ‘최단’이 아닌 ‘최소’도 뜻이 통해 아리송한데…. 반대말 ‘최대’는 사뭇 다르다.

‘태풍 사올라가 중국 남부에 상륙할 때 중심 부근 최대 풍속은 초속 45m였다.’ 바람 속도를 말한 대목을 다시 쓰자면 ‘가장 큰 풍속은 초속 45m’인데. 빠르기를 크기로 나타내니 자연스러울 리가. ‘최고 풍속은’ 해야 말이 된다. ‘에베레스트산, 8만9000년간 최대 50m 높아져’도 그렇다. 산이 ‘높다/낮다’ 하듯 ‘최고 50m’가 어울린다.

시간이나 수량, 비율을 가리킬 때도 ‘최대’는 엉뚱하다. ‘미국 스쿨버스 운전자는 처음에 안전 교육을 최대 40시간 받는다.’ ‘취준생에게 기회를 더 주고자 계열사에 최대 3곳까지 지원할 수 있게 했다.’ ‘중국의 유럽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지난 6월 사상 최대인 11%까지 올랐다.’ ‘최장 40시간’ ‘최다 3곳’ ‘최고 11%’라 해야겠다. 짧고 적고 낮음을 말한다면 물론 ‘최단’ ‘최소’ ‘최저’가 알맞다.

그럼 수량이나 정도, 비율 따위가 달라짐은 올바로 표현할까. ‘극심한 가뭄으로 수확량이 감소한 국제 설탕 가격은 전년보다 55% 증가했다.’ 값이 증가하다니, 대체 어느 나라 말인가. ‘증가’는 설탕 수확량처럼 수량을 나타낼 때 쓰고, 가격(물가)에는 ‘상승/하락’을 써야 마땅하다. ‘올랐다/내렸다’ 하든지. ‘수확량이 감소한’을 ‘하락한/내린’ 한다면 말이 안 되지 않는가.

그 표지판, 얼마 전부터 아예 안 보였다. 광고막 하나가 얄궂게 그 자리를 덮은 것이다. 무용지물이라고 비웃기라도 하듯. 설마 고저(高低) 장단(長短), 증감(增減) 등락(騰落) 구별하기도 부질없는 일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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